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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아일란이, 샤키가 살았더라면…. 세상을 바꾼 10명의 난민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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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유럽연합(EU) 국가로 입국한 난민 숫자는 9월 말 현재 71만 명을 넘어섰다. 쏟아지는 난민 행렬에 반 이민 정서가 각지에서 확산되는 추세다. 하지만 터키에서 시신으로 발견된 3살 아기 아일란 쿠르디가 살았더라면, 예멘에서 폭탄에 희생된 6살 파리드 샤키가 죽지 않았더라면 인류의 역사를 바꾼 인물이 되었을 지도 모른다.

CNN은 22일(현지시간)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10명의 난민들’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정치·과학·예술·스포츠 등 분야를 막론 하고 세계 최고의 인물들이다. 정치·경제적 박해를 피해 새로운 땅을 찾은 이들은 세계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1.미국프로농구(NBA) 올스타로 2번 선정된 마이애미 히트의 루올 뎅(30)은 수단 내전을 피해 탈출한 경우다. 세상에서 가장 키가 큰 민족인 딩카족 출신인 그는 5살 때 수단을 탈출해 이집트의 난민촌에서 생활하며 영국의 망명 허가를 기다렸다. 영국 국가대표로도 활약하는 그는 영국 브릭스톤 지역의 5파운드 화폐에도 새겨졌다.

2.흑인 슈퍼모델 1세대인 이만 모하메드 압둘마지드(60)는 소말리아 출신이다. 외교관의 딸로 태어난 그는 이집트와 케냐에서 학교를 다녔다. 케냐 나이로비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하던 그는 미국 사진작가 눈에 띄어 모델 일을 시작했고 슈퍼모델로 성공가도를 걸었다. 70년대 글램록의 선구자였던 데이비드 보위와 결혼했다.

3.매파의 대표 주자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국 국무장관도 이민자다. 체코(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 출신인 그는 마리야 야나 코르벨로바라는 이름이었지만 나치 독일의 침공이후 외교관인 아버지와 영국으로 망명했다. 전후 체코로 돌아갔지만 공산정권의 위협을 받아 미국으로 망명하고 이름을 매들린으로 고쳤다. 빌 클린턴 대통령 시기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을 지냈다.

4.알버트 아인슈타인(1879~1955)도 독일 출신이지만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 1916년 상대성이론을 발표했고 1921년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다. 1933년 미국 망명 이후에는 프린스턴 고등연구소 교수로 원자폭탄연구인 맨해튼 계획의 기초를 만들었다.

5.오스트리아 출신의 정신분석학자 지그문트 프로이트(1856~1939)도 이민자 출신이다.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 출신인 그는 일생의 대부분을 빈에서 보냈지만 나치의 권력 장악 후 유대계인 프로이트의 저서도 공개적으로 불에 태워졌다. 1938년 오스트리아가 합병된 후 나치가 가택 수색을 실시하자 영국 런던으로 망명했다. 이듬해 그는 사망했다.

6.‘레미제라블’의 저자인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1802~1885)는 20대에 『파리의 노트르담』같은 소설을 쓰며 작가의 지위를 쌓았다. 프랑스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한 그는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 이후 반정부 인사로 지목되어 벨기에로 망명했다. 프랑스 정부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던 그는 벨기에에서 추방되어 영국령 채널 제도 건지섬에 머무르며 『레 미제라블』같은 대표작을 썼다. 1870년 루이 나폴레옹 제정 몰락 후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국회의원에 당선됐지만 이후 파리 코뮌 수립으로 벨기에로 망명했다 다시 추방당해 영국령 채널제도에 머물렀다.

7.남아공의 대통령을 지낸 타보 음베키(73)는 넬슨 만델라 대통령을 도와 국정을 챙긴 실질적 지도자다. 남아프리카 공산당원을 지낸 그는 20살 때 고국을 떠나 27년간 망명생활을 했으며 구소련에서 군사활동을 받기도 했다. 1994년부터 남아공의 부통령을 지냈으며 넬슨 만델라 사임 후 1999년부터 대통령을 맡아 2008년까지 재임했다.

8.영화 ‘탄식의 천사’로 유명한 마를레네 디트리히(1901~1992)는 1920년대 독일에서 활약한 배우 겸 가수다. 그는 나치가 정권을 잡자 히틀러의 회유를 거절하고 미국으로 망명했다. 미국 시민으로 세계 2차대전 위문 공연에 나서 훈장을 수여받기도 했다. 브로드웨이에서 2차례 토니상을 수상했다.

9.신이 선물한 목소리를 지닌 프레디 머큐리(1946-1991)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잔지바르 섬 출신이다. 인도 파시교도의 후손으로 태어난 머큐리는 1964년 잔지바르에서 아랍인과 인도인을 박해하는 운동이 발생하자 이를 피해 영국으로 향했다. 그는 1970년 동료들과 함께 그룹 퀸(Queen)을 결성하고 리드보컬을 맡아 퀸을 최고의 그룹으로 만들었다. 이후 에이즈 합병 증세와 기관지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10.일곱번이나 그래미 상을 받은 글로리아 에스테판(58)은 쿠바 난민 출신이다. 쿠바 수도 아바나에서 태어난 그는 피델 카스트로의 공산혁명이 시작되자 가족과 함께 미국 플로리다로 넘어왔다. 그녀는 결혼식 축가를 부르는 일로 시작해 80~90년대 라틴팝의 여왕으로 군림하며 1억 장 이상의 음반을 판매했다.

지난달 유엔난민기구(UNHCR)는 이들 외에도 ‘새 삶을 개척하는 고난을 이겨낸 저명한 난민’ 136명을 선정해 발표했다. 전체주의에 반대한 한나 아렌트(1906∼1975)와 전쟁 사진 작가로 유명한 로버트 카파(1913~1954),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쓴 밀란 쿤데라(86), 2000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가오싱젠(高行健·75) 등도 난민 출신이다. UNHCR은 한국인으로는 ‘눈 먼 음성’과 소설 ‘딕테’를 남긴 차학경(1951∼1982)을 포함시켰다. 포스트 모던 미술가인 차학경은 부모님과 함께 어릴 적 미국으로 이민갔다.

정원엽 기자 wannab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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