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야당에 많이 참아왔다” 박 대통령 호위무사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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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오후 4시48분. 5자회담장인 청와대 접견실 문을 열고 나오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청와대 5자회동의 결과가 그 표정 속에 그대로 담겨 있었다.

웃으며 시작해 냉랭하게 끝난 회동
김무성 “민생법안 33개월 발목
야당이 너무 하는 거 아니냐”
이종걸 “회동 내용 녹음해도 되나”
문재인 “대변인 배석 거부는 쪼잔”
대통령, 회동 뒤 “김 대표 애 쓰셨다?

 1시간48분 전인 오후 3시의 분위기는 달랐다. 박 대통령은 가장 늦게 입장하는 관례를 깨고 먼저 접견실에 도착했다. 문 대표가 도착하자 문 앞까지 나가 “안녕하셨어요. 어서 오십시오”라고 웃으며 악수를 청했다. 문 대표도 “반갑습니다”라며 웃었다.

 포토타임을 겸한 4분여의 환담에선 박 대통령 오른쪽에 문 대표가, 왼쪽에는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가 자리했다. 여당 지도부는 각각 두 사람의 바깥에 섰다. 박 대통령은 “두 대표님과 원내대표님들이 귓속말도 하고 아주 오랜 친구같이 인사도 나누시는데 실제로 사이가 좋으시냐”고 묻기도 했다.

 그러나 회동이 비공개로 전환되고 교과서 논쟁이 벌어지자 분위기가 돌변했다. 말을 아끼고 있던 김무성 대표는 “지금까지 많이 참아 왔는데…”라며 입을 열었다. “국정 역사 교과서는 친일 미화, 독재 미화”라는 문 대표와 이 원내대표의 말이 끝나자마자였다. 새누리당 김 대표는 “아직 집필진 구성도 안 됐는데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고 했다. 문 대표가 친일사관 논란을 빚은 교학사 교과서를 언급하자 “그건 국정교과서가 아니다. 국정교과서를 만들어 그런 걸 다 없애자는 게 아니냐”며 “걱정되면 집필진 구성에 참여하고 국사편찬위원회에 맡기자”고 했다.

 김 대표는 다른 사안에서도 마치 박 대통령의 ‘호위무사’처럼 나섰다. 그는 “대통령 임기가 5년인데 대통령이 그 짧은 임기 중에 경제 한번 살리겠다고 법 몇 개 하자는데 어떻게 33개월 동안 발목을 잡고 안 해줄 수 있느냐. 이거 너무한 거 아니냐”고 했다. 박 대통령이 처리를 요구하고 있는 관광진흥법안을 설명하기 위해 서울시내 호텔이 부족하다는 지도까지 준비했다. 회동 직후 박 대통령은 청와대 관계자에게 “오늘 김 대표가 참 애를 많이 써 주셨다”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원유철 원내대표도 ‘신박(新朴)’의 면모를 보였다. 야당 지도부가 박 대통령을 압박할 때는 “정치권에서 논의할 사안이지 대통령 있는 데서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식으로 막아섰다.

 문 대표는 ‘디테일’을 과시했다. 현행 교과서가 좌편향됐다는 주장에 대해선 조목조목 사례를 들어 반박했다. 박 대통령과 김 대표에게 “정말 언제 읽어본 교과서로 그런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교과서를 다시 한번 읽어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두툼한 서류뭉치를 들고 회동에 임했다. 당초 새누리당에선 ‘돌출 발언’을 할지 모른다고 예상했지만 말을 아꼈다. 박 대통령이 회동이 끝난 뒤 “실제로 만나보니 이렇게 좋아 보이시고 멋지신데…”라고 했을 정도였다. 박 대통령은 그러면서 “말씀은 참 세게 하시더라고요”라며 웃었다고 한다.

 이 원내대표는 대변인을 배석시키지 않기로 한 회담장에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과 현기환 청와대 정무수석이 배석한 걸 보자 “우리도 기록하게 해달라. 아니면 휴대전화로 녹음이라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청와대 측이 반대하자 “그럼 기록한 거라도 넘겨 달라”고 했다. 이마저 거절 당하자 그는 대화 내용을 직접 꼼꼼히 적었다. 그러곤 A4 용지 10여 장의 스크립트까지 만들어 국회로 돌아와 ‘깨알 브리핑’을 했다. 그는 “손이 아프도록 적었다. 메모에 너무 신경을 써 토론에 참여할 기회가 적었다”고 했다.

 박 대통령은 주로 들었지만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선 의견을 강하게 제시했다. “청년 일자리를 꼭 만들어달라”고 할 땐 평소보다 높은 톤이었다고 한다. 청와대와 새정치연합은 대변인 배석 문제를 놓고 회동 4시간 전까지 신경전을 벌였다. 문 대표는 기자들에게 “청와대가 너무 쪼잔하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회담장에서 문 대표가 대변인 배석을 요청하자 “한 자 한 자 따지는 게 아니지 않으냐”고 거절했다.

강태화·김경희·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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