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리털 파카 챙겨간 남, 평양술 준비한 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막내 동생 김형익(67)씨가 북쪽에 사는 큰형 김형환(83)씨에게 사진 한 장을 건넸다. 사진 속에는 형환씨의 어머니 묘비가 담겨 있었다. 묘비에는 어머니 이름 옆에 형환씨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평생 장남을 가슴에 품고 산 어머니의 유언이었다. 형환씨는 동생들을 대신해 의용군으로 간 후 소식이 끊겼다. 형익씨는 “이번에 만나면 (다시 만난다는) 기약도 없는데…”라며 눈물을 흘렸다.

혈육의 정 담은 선물 보따리
방한복·약품·라면·초코파이 인기
무게 30㎏, 현금은 1500달러까지

 상봉 둘째 날인 21일 이산가족들은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이산가족들이 준비한 선물에는 고향과 가족이 담겨 있었다.

 남쪽에선 추운 북쪽에 사는 가족들을 걱정해 내복과 점퍼 등 방한의류를 준비해 간 가족이 많았다. 북에 있는 삼촌 김종근(85)씨를 만난 김해수(64)씨는 “솜바지와 오리털 파카를 준비했는데 오래 떨어져 살아 사이즈를 몰라 맞을지 걱정”이라며 선물을 건넸다.

 북에 사는 사촌 누나 김태숙(81)씨를 만나러 간 김태호(79)씨도 옷가지와 내복을 선물로 준비했다. 태호씨는 이불을 꼭 선물로 주고 싶었지만 부피가 커 갖고 오지 못했다. 태숙씨의 어머니는 남한에서 딸을 끝내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며 “내 이불 버리지 말고 태숙이 만나면 줘라”라고 유언을 남겼다.

 북에 사는 사촌 강영숙(82·여)씨를 만나러 간 강정구(81)씨는 상주 곶감을 갖고 갔다. 정구씨는 “예부터 상주 하면 쌀·곶감·명주가 유명했다”며 “곶감을 먹으면 고향 생각이 절로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이 고령인 만큼 진통제·감기약·비타민제 등 의약품을 챙겨 가기도 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삼촌 정규현(88)씨를 만나러 간 정정애(47·여)씨는 두통약 등 의약품을 챙겨 약통마다 사용법을 적은 종이를 붙였다. 라면·초코파이·사탕 등도 인기 선물이었다.

 선물 가방 무게가 30㎏을 넘을 수 없어 이산가족들은 선물을 2~3개로 나눠 꼭꼭 눌러 담았다. 현금도 가능하지만 정부와 남북 적십자사는 미화 1500달러를 초과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고가 시계와 주류, 귀금속, 전기기기, 가죽 및 모피 제품 등은 선물로 줄 수 없다.

 북측 가족들은 하늘색 쇼핑백에 들쭉술·평양주 등 전통주와 원형식탁보, 스카프를 담았다. 북한 측에서 준비한 ‘공동선물’이었다. 별도로 조선농토산물 선물세트를 준비한 가족도 있었다.

금강산=공동취재단, 안효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