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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 애도객에 최루탄 쏜 터키 정부 … 시위대 수천 명 “에르도안은 살인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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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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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대규모 폭탄테러로 300여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한 가운데 11일 희생자들의 사진을 든 추모 인파가 거리 행진에 나섰다. 터키 정부는 3일간의 국가 애도기간을 선포했다. [앙카라 AP=뉴시스]

터키 폭탄 테러 이튿날인 11일(현지시간) 수도 앙카라 중심가에 수천 명의 반정부 시위대가 결집했다. 이들은 ‘살인자 에르도안(터키 대통령)’ ‘파시즘에 죽음을’ 등의 구호를 적은 피켓을 들었다. 시위대는 “정부에 이번 테러의 책임이 있다”고 주장했다.

친 정부 측도 “테러 못 막은 책임”
내달 1일 총선 앞두고 정국 요동

 테러 직후 현장에 있었던 가족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몰려든 시민들을 향해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하고 무력 진압을 한 것도 시위대의 분노를 자아냈다. AP·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은 이날 “반정부 시위대는 물론 친 정부 성향의 시민들도 도심 한복판의 테러를 막지 못한 정부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터키 정부는 이번 테러가 터키 내 이슬람국가(IS) 분파 조직의 소행이라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터키 일간 하베르튜르크는 이날 경찰 관계자를 인용해 지난 7월 남부 수루츠에서 발생한 자폭 테러의 범인 셰이흐 압두라흐만 알라고즈(20)의 형 유누스 엠레 알라고즈가 이번 테러에 연루됐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다음달 1일 조기 총선을 앞둔 터키의 내분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전망했다. 런던 컨설팅기관 테네오 인텔리전스의 울팡오 피콜리 전무는 “테러의 충격이 가라 앉더라도 터키 사회의 분열은 더욱 가속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쿠르드계 인민민주당(HDP)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의 책임론을 제기하며 정부를 압박했다. 일부 쿠르드계 시위대는 ‘총선 승리를 위해 정부가 벌인 자작극’이라며 음모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야당이 약진하는 상황에서 총선을 연기하거나 안보정국을 조성해 여당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정부 측의 음모가 있다는 것이다. 논란이 커지자 터키 당국은 이날 “11월 1일 총선은 예정대로 치러질 것이며 안전하게 선거를 치르기 위한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11년 간 총리를 지낸 에르도안 대통령은 지난해 측근 아흐메트 아부토울루에게 총리직을 물려주고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당선됐다. 올 6월 총선에서 과반수 의석을 확보해 대통령중심제 개헌을 한 뒤 장기 집권을 노렸다. 하지만 그가 이끄는 집권 정의개발당(AKP)은 전체 의석 550석 중 과반(276석)에 못 미친 258석을 얻는데 그쳤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다음달 조기 총선에서 과반 의석에 재도전하고 있지만 야당의 약진과 쿠르드족 분리주의 반군 쿠르드노동자당(PKK)과의 무장 충돌 심화로 고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동현 기자 offram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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