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거리 로켓 대신 열병식 집중 … 아무래도 잘한 결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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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지난 2012년 4월 15일 김일성 주석 출생 100주년을 기념해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린 열병식에 참석해 주석단에 올라 군중의 환호에 답하고 있다. [중앙포토]

기다린 날이 왔다. 오늘은 (노동)당 창건 70주년이다. 열병식을 치를 (평양 김일성광장의) 주석단 위에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 전 세계가 날 주목하고 있다. 남조선의 박근혜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태평양 건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조선중앙TV로 중계되는 내 모습을 지켜볼 테지. 흐트러진 모습을 보일 순 없다.

[내러티브 리포트] 김정은의 속마음
SLBM 신무기로 위엄 과시할 것
2012년 쏜 광명성은 공중분해
외신까지 불렀는데 내 위신이…?
조부는 자주, 부친은 선군정치
내 차별화 포인트는 ‘애민 지도자’
오늘 김정은식 강성대국 출범날

 오늘을 기다려 온 이유가 있다. 아버지(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급서한 게 2011년 12월. 그 이후 처음으로 꺾어지는 해(5·10년 단위의 정주년, 북한은 특별한 해로 여긴다)에 맞이하는 당 창건 기념일이다. 내 시대가 본격 개막했다는 걸 대내외에 선전하기에 오늘만큼 적절한 날이 있을까. 지금까지의 70년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들어 왔지만 앞으로는 나, 김정은이 만들어 갈 것임을 천명할 기회다.

 아버지와 나는 다르다. 아버지는 선군(先軍)정치를 하며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모든 주요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나는 당 중앙군사위원회로 중심을 옮겼다. 지난 8월 20일 심야, 내가 소집했던 회의도 ‘당 중앙군사위 긴급확대회의’ 아닌가. 여기에서 남조선을 상대로 ‘완전무장 전시상태’에 돌입하라고 지시했다.

 당은 곧 국가다. 지난 4월 25일의 인민군 창건 83주년과 7월의 전승절(정전협정 체결일)과 달리 오늘에 힘을 실은 이유가 여기 있다. 할아버지가 강조했던 자주, 그리고 아버지의 선군을 계승해 내가 우리식 사회주의를 완성하겠다는 결의를 오늘 보일 것이다. 당 창건 70주년을 맞아 주민들을 상대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라고 지시한 사진전 이름이 ‘위대한 승리, 빛나는 계승의 70년’이다. 당 선전선동부도 ‘어머니 당’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여동생 여정이가 부부장을 맡아 잘하고 있다. 평양체육관에서 미술전을 하며 ‘어머니 당에 드리는 축원의 화폭’이라고 주제를 정한 것도 마음에 쏙 든다.

 나를 철없다고 무시했던 고모부 장성택이며, 내가 주재한 회의에서 인민무력부장이랍시고 졸았던 현영철도 처단했다. 노회한 군 간부들의 계급장을 뗐다 붙였다 했더니 이제 좀 영이 서는 것도 같다. 밖에선 이런 나를 보고 공포정치를 한다지만 인민들은 부패한 군·정 간부들을 처벌하는 내게 박수를 보낼 게다. 내 차별화 포인트는 ‘애민(愛民) 지도자’다. 은둔형이었던 아버지와 달리 나는 여성 조종사들과 팔짱을 끼고 사진도 찍고 현지지도에서 인민들을 만나도 경호원들에게 “막지 말라”고 지시하며 환히 웃어 줬다.

 오늘을 앞두고는 인민들에게 통 큰 혜택도 베풀었다. 생활비 100%에 달하는 특별 격려금을 지급한 건 당 창건 이후 처음이다. 경제 성과와 인민생활 향상을 강조해 온 맥락과 상통하는 조치였다. 뭐니뭐니해도 인민들의 배를 불리는 게 지도자다. 인민을 즐겁게 해 줄 행사도 대대적으로 마련했다. 남조선에서 ‘걸그룹’ 격이라고들 하는 모란봉악단도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 축하공연을 한다.

 장거리 로켓(북한은 인공위성이라 주장) 발사 대신 열병식에 집중하기로 한 건 아무래도 잘한 결정 같다. 2012년 4월 13일, 할아버지 생일 100주년을 이틀 앞두고 외신까지 다 불러 놨는데 광명성 3호가 맥없이 공중분해됐다. 8억5000만 달러(약 9872억원)도 아깝지만 내 위신도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열병식은 내가 심혈을 기울인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신무기를 맘껏 과시하면서 나도 위엄 있게 등장하는, 그야말로 꿩 먹고 알 먹기 행사다.

 어제는 류윈산(劉雲山)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 도착했다. 중국의 권력서열 5위니, 그만하면 됐다. 시 주석이 남조선을 먼저 방문한 건 괘씸하지만 나도 내년께엔 베이징(北京)에 가야 할 터. 외무성을 시켜 미국에 평화협정을 맺자고도 했다. 내 외교 롤모델은 할아버지가 주창했던 ‘등거리외교’다. 일단 8·25 합의로 남북관계 진전의 물꼬는 텄고, 열흘 후엔 금강산에서 이산가족 상봉도 치른다. 지난달에 국가우주개발국장과 원자력연구원장을 통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의 운은 띄워 놨다. 앞으로 미국이 어떻게 나오는지에 따라 이 카드를 활용할 것이다.

 남북관계는 일단 어느 정도 흐름을 만들었으니 이젠 류윈산 동무와 북·중 관계를 개선하고, 그 이후엔 일본과 미국으로 간다. 그래야 내가 꿈꾸는 김정은식 사회주의 강성대국이 가능하다. 이 모든 계획의 출발이 오늘, 당 창건 70주년 기념일이다. 이제 열병식에 참석하러 가야겠다. 아내 설주도 문밖에서 기다린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이 기사는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시점에서 구성한 기사입니다. 도움말 주신 분(가나다순)=고유환 동국대 북한학 교수, 남성욱 고려대 북한학 교수, 조성렬 북한연구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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