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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중정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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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장사란 사람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해야 잘 되는 법이다. 그래서 중심가에는 가게들이 촘촘히 들어서게 된다.

정당도 비슷하다. 사람이 많은 데서 놀아야 표를 더 많이 얻을 수 있다. 변두리 옷가게가 성공해 명동 한복판으로 진출하듯 정당도 커질수록 유권자가 많이 몰려 있는 중심부로 나오게 된다. 극좌나 극우는 득표에 한계가 있다.

정치학에선 이를 '인중(引衆)정당'이라고 부른다. 대중을 모두 지지세력으로 끌어들이려는 정당이라는 뜻이다. 특정 이념에 기반을 두지 않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각계각층의 유권자에게 지지를 호소하는 정당이다. 그러다 보니 정책들이 서로 엇비슷해진다. 이를 영어로 'catch-all party'라고 한다.

이는 원래 제2차 세계대전 후 이념의 틀에서 벗어나 대중적 지지를 호소하게 된 서구의 정당을 가리키던 말이다. 특히 유럽에선 지지기반이 진보세력에 국한돼 있던 사회당이 지지층을 확대하려 노력했다. 또 소수 지도자 중심의 간부정당도 대중조직으로 탈바꿈하게 됐다. 저마다 보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였다. 사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엔 인중정당으로 갈 가능성이 늘 열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분열된 대중을 통합하는 역할을 한다는 시각도 있다. 반면 정책의 차별성이 없어진다는 점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반영해야 할 정당정치의 근본 취지를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다. 좋게 보면 범국민 정당이요, 나쁘게 말하면 '잡탕 정당'인 셈이다.

정책이 엇비슷하면 유권자는 인물을 보고 투표하게 된다. 이런 식의 투표가 오래가면 정당은 보스 중심의 계파 조직으로 전락하기 쉽다. 우리의 역대 정당이 대개 그런 식이었다. 그래서인지 국내에선 인중정당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가 더 많은 듯하다.

이념(또는 정책)정당이 인중정당으로 변질되는 것은 표에 대한 유혹이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유혹 앞에선 의연해지느냐, 유연해지느냐 둘 중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세력의 지지로 원내에 진출한 민주노동당엔 이번 재.보궐 선거가 '의연'과 '유연'의 첫 갈림길이 되는 셈이다. 정책정당을 표방하는 민노당이 원칙과 현실을 어떻게 양립시킬지 궁금하다.

남윤호 패밀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