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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으로 본 혐의] 박지원씨가 150억 먼저 요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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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대북 송금 의혹 사건이 정치권 뇌물 사건으로 비화할 움직임이다.

지난 정부 실세이자 김대중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지원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현대 측에서 1백50억원을 받은 혐의가 특검 수사에서 불거졌기 때문이다.

현대가 그에게 준 돈이 이보다 더 많아 4백억원을 넘으며, 이 돈이 당시 여권 실세 K씨를 통해 여권 내로 흘러갔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의혹이 일파만파로 번질 내용이다.

돈의 규모는 추후 밝혀질 것이지만 朴씨에게 일단 1백50억원이 건네졌고, 사채시장에서 세탁 과정을 거쳤다는 점을 특검팀은 朴씨에 대한 구속영장에서 못박았다.

추후 수사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과 대북 사업을 빌미로 당시 여권 핵심부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챙겼다는 대형 스캔들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지 않은 상황이다. 특검팀이 18일 朴씨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에는 朴씨의 역할과 혐의가 상세히 적혀 있다. 다음은 영장에 기록된 朴씨의 혐의.

◇"호텔 술집에서 CD 건네"= 朴씨는 1999년 말께부터 정몽헌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에게서 여러 차례에 걸쳐 현대에서 시행 중인 금강산 관광 사업과 관련한 카지노.면세점 설치 등에 대한 협조 요청을 받았다는 것이다.

朴씨는 북측과 싱가포르.중국 등지에서 열린 정상회담 예비 접촉 막바지인 2000년 4월 초 서울 P호텔의 한 객실에서 무기 거래상 金모씨를 만났다. 朴씨는 이 자리에서 "鄭회장에게 남북 정상회담 준비 비용 명목으로 1백50억원을 지원해 달라고 전해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金씨는 朴씨의 메시지를 鄭회장에게 전했고, 鄭회장은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에게 1백50억원을 주라고 지시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李전회장이 1억원짜리 양도성 예금증서(CD) 1백50장을 조성했다는 게 특검팀 설명이다.

李씨는 4월 중순 오후 9시30분쯤 이 호텔에 있는 T술집의 룸에서 "금강산 관광 사업의 카지노.면세점 설치와 현대의 대북 사업 전반에 관해 협조해 달라"는 취지를 전하며 CD 뭉치를 朴씨에게 줬다고 특검은 밝혔다.

◇대출 압력=현대상선이 정상회담 직전 북한에 보낼 돈을 마련하기 위해 산업은행에서 4천억원을 대출받는 과정에서도 朴씨가 압력을 행사한 것으로 특검팀은 밝혔다.

특검팀은 "朴씨가 2000년 5월 중순 서울 롯데호텔 객실에서 鄭회장에게서 대북 경제 사업을 추진하며 북한에 수억달러를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현대 계열사의 재정 악화로 돈을 마련하는 게 불가능하니 금융 지원이 이뤄지도록 정부 차원에서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를 승낙했다"고 영장에 적었다.

당시 현대는 금강산 관광 사업과 관련, 매년 1천억원 이상의 적자가 쌓이고 제2금융권에서는 현대 채권을 회수하기 시작해 재정 상태가 매우 심각했다는 것이다. 이후 朴씨가 이기호 전 청와대 경제수석에게 현대에 대한 지원을 요청한 것이 사실상 대출 압력이었던 것으로 특검팀은 보고 있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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