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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닉스 "활로는 해외생산 확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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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미 상무부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44.71%의 상계관세를 부과키로 최종 판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18일 오전 하이닉스 이천공장.

공장 곳곳에는 '정직성실, 가치창조, 도전정신, 개인존중''수율(웨이퍼당 양질의 반도체 소자를 얻는 비율)을 1백%로 올리자'는 내용을 담은 팻말이 붙어 있다.

3교대 근무를 하고 있는 이 회사 직원들은 지난 4월 이미 예비 판정을 받아서인지 큰 동요 없이 작업에 몰두하고 있다. 이 공장 3개 라인의 가동률은 1백%에 달한다고 한다.

하이닉스는 최근 ▶정직성실▶가치창조 등을 '하이닉스 4대 가치'로 선포하고 이를 전직원에게 교육키로 했다. 직원들의 강한 정신력만이 기업 생존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한 직원은 "미국이 너무 힘으로 밀어붙이려 하고 있다"면서 "한때 하이닉스를 인수하기 위해 양해각서(MOU)까지 교환했던 마이크론이 하이닉스를 제소한 것은 비신사적인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하이닉스의 대미 직접 수출이 사실상 막히게 되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하이닉스의 독자생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 것은 사실이다.

◇ 대미 수출 사실상 막혀=지난해 하이닉스의 대미 D램 직수출은 1억2천만달러에 달한다. 하이닉스의 전체 미국 수출물량의 25% 수준이다.

그러나 고율의 상계관세를 내고 미국으로 직접 수출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하이닉스는 44.71%의 상계관세가 부과되면 매달 1천8백만달러가량을 예치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하이닉스는 이미 지난해 1조9천4백78억원의 적자를 낸데 이어 올 1분기에도 1조4백7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4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 한 것이다. 또한 이번 판정이 지난 4월 예비판정에서 33%의 잠정관세를 부과한 EU의 최종 판정(8월 24일)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크다.

이 경우 양쪽 지역에 대한 예치금 규모는 하이닉스 재정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에 따르면 하이닉스는 지난 4월 미 상무부의 예비판정 이후 대미 직수출을 거의 중단한 상태로 일부 '불요불급한' 품목만 조금씩 수출하고 있다.

산자부 관계자는 "이번 하이닉스에 대한 고율의 상계관세 부과로 인해 국내 업체의 피해규모는 지난해 대미 D램 수출액 37억3천만달러를 기준으로 볼 때 1억달러 이내가 될 전망"이라고 말했다.

◇WTO 제소와 수출 다변화=정부는 우선 24일로 예정된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 공청회에 참석, 하이닉스에 대한 채권은행의 출자전환과 회사채 신속인수 등은 철저히 상업적인 목적으로 이뤄진 것임을 명확히 알릴 계획이다.

이와 함께 세계무역기구(WTO)에 미 정부를 이달말께 제소키로 했다. 이 경우 두 나라는 60일 동안 양자협상을 벌이며, 이곳에서도 합의에 실패하면 패널(법원)을 설치, 약 12~15개월간 분쟁해결 절차를 밟는다.

하이닉스는 미국 현지공장의 생산물량을 최대한 늘리고, 싱가포르.홍콩.중국 등 상계관세가 없는 지역으로 수출을 늘릴 계획이다. 최근 1억달러를 투입한 미국 오리건주 유진공장의 생산물량을 50% 가량 늘리고 IBM.HP 등 미국 PC업체와 긴밀히 협조해 지역별 물량을 조절키로 했다.

하이닉스 관계자는 "이미 IBM 등 고정 거래선들과 동남아 지역의 현지공장으로 수출선을 바꾸는 협의를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미국, 왜 강경한가=미 행정부가 하이닉스반도체에 대해 높은 상계관세를 물리겠다는 것은 적극적으로 자국 기업(마이크론)의 이익을 보호하는 보수적인 공화당 정권의 색채와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반도체 생산 세계 3위권인 하이닉스의 미국 수출이 사실상 차단될 경우 2위인 마이크론의 입지는 호전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하이닉스를 겨냥해 이 같은 강수를 두더라도 세계 1위인 삼성전자는 여전히 잘 나갈 것이므로 한국 측 반발을 어느 정도 누그러뜨릴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현재 마이크론은 9분기 연속 적자를 내고 있는 상태다.

뉴욕=심상복 특파원,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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