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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 3만 명 유전자 분석, 104개국 연구원 활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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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6호 4 면

가산디지털단지의 한 빌딩. 냉장고 모양의 흰색 기계 수십 대가 유리벽 너머로 늘어서 있다. 이따금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들이 모니터를 확인하러 온다.?언뜻 보기엔 평범한 연구실이지만 연간 3만 명의 유전자를 분석하는 이곳은 코스닥 상장 국내 바이오벤처 1호인 마크로젠이다.

마크로젠 연구진이 유전체 분석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최근 출시된 차세대 유전체 분석 장비(NGS)로 연간 3만 명의 유전체를 분석한다. [사진 마크로젠]

마크로젠의 핵심 사업은 유전자·유전체 분석 서비스다. 전 세계 유전자 연구진에 분석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엔 ‘유전자 분석 1000달러 시대’가 열리면서 대중화되고 있다. 글로벌 유전자 분석 서비스 시장은 2013년 19억8000만 달러에서 연평균 32% 증가해 2018년에는 74억6500만 달러로 급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2003년 30억 달러가 투입됐던 유전자 분석은 11년 새 300만분의 1로 가격이 줄었다. 바이오 분야에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동종 업계 기술 혁신, 가격 파괴 선도 마크로젠은 바이오 분야의 파괴적 혁신을 선도하다시피 했다. 32억 쌍에 달하는 염기서열 중 염기 1000쌍당 분석 비용이 15~20달러 수준이던 2002년, 마크로젠은 네이처지에 작은 광고 하나를 낸다. 분석 비용을 5달러로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이 주도하던 유전자 분석 시장에서 이 가격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러나 시약 용량을 줄이고 또 줄였다. 처음에는 2분의 1로, 다음에는 4분의 1로, 이어 8분의 1까지 줄였다. 같은 기계와 같은 시약을 사용하면서 이처럼 용량을 줄일 수 있었던 건 숙련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렸기 때문이다. 서정선 회장은 “삼성도 처음 반도체를 만들 땐 ‘기술 최적화(Optimization)’를 통해 따라잡지 않았느냐”며 “유전자 분석 불모지에서 선진국을 빠르게 따라잡기 위해선 기술을 최적화하는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반신반의하는 분위기였다. 서비스 개념으로 염기 20쌍을 공짜로 분석해 주겠다고 했다. 조금씩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저렴하면서도 종전과 똑같은 수준으로 완벽한 분석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2000년 상장 후에도 지지부진했던 매출과 이익이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


 2010년 같은 내용으로 광고를 한 번 더 했다. 이번엔 32억 쌍 염기서열 전체를 분석하는 데 들어가던 비용 6000달러를 1999달러로 낮췄다. 그리고 지난해, 미국 일루미나사는 드디어 1000달러에 유전자를 분석할 수 있는 기기를 출시했다. 이때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기기를 구입한 곳이 마크로젠이다. 현재 16기를 보유 중이고, 연말까지 4기를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기기를 보유하고 있다. 유전자 분석 건수는 이미 세계 최고 수준이다. 연간 3만 명의 유전자를 분석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104개국 1만4000여 명의 연구자가 마크로젠의 유전자 분석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를 통해 지난해 매출 518억원과 순이익 34억원을 기록했다.


아시아인 잘 걸리는 질병 치료 인프라 구축 마크로젠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다음 목표는 유전자 빅데이터를 이용한 정밀의학이다. ‘아시안 지놈(genome)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3년 내 아시아인 10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아시아인이 잘 걸리는 질병을 찾아내 최적의 유전자 치료와 약을 개발하기 위한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이다.


 의학의 패러다임은 정밀의학으로 넘어가고 있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올 2월 ‘정밀의학계획’을 발표했다. 내년까지 2억2000만 달러를 투입한다. 정밀의학은 진단부터 치료에 이르는 모든 서비스를 환자 맞춤형으로 제공한다. 환자 개인의 유전·환경·생활습관이 고려된다. 예컨대 혈액응고제는 개인 민감도가 매우 중요하다. 외부로 흐르는 혈액을 응고시키기도 하지만 민감도가 지나치게 높으면 몸속 혈액이 굳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항암제를 비롯한 각종 의약품 역시 인종·성별·나이에 따라 치료 효과가 다르다.


 마크로젠이 아시안 지놈 프로젝트를 천명한 것도 이 때문이다. 서양인이 개발한, 서양인 유전자에 맞는 치료제가 아시아인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른다. 아시아인 10만 명의 유전자 정보를 확보하고, 개인에 맞는 정밀하고 정확한 치료법을 도출한다. 현재까지 확보한 유전자 정보는 1만 명 수준. 나머지 9만 명의 유전자 정보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중국·몽골의 연구기관 및 대학과 업무협약을 맺고 확보하고 있다. 10만 명에 달하는 빅데이터를 구축하면 미국 정부의 정밀의학계획에 버금가는 성과를 낼 수 있을 거란 전망이다. 이를 위해 마크로젠은 37PB(페타바이트, 1PB=1000TB=100만GB)에 달하는 서버를 구축하고 있다. 웬만한 IT업체에 견줄 만한 수준이다.


?서정선 회장은 “정밀의학은 의학의 미래”라며 “미국을 중심으로 주요 선진국은 정밀의학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한국에도 큰 기회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인프라는 그 어느 나라보다 훌륭하게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회적 인식은 부족하다. 관심과 투자가 늘어야 정밀의학을 이끌어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진구 기자 kim.jin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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