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설날·추석엔 6만 이산가족 소원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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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추석에는 초대형 보름달인 ‘수퍼 문(super moon)’이 휘영청 뜬다고 한다. 평소보다 달과 지구 사이가 2만300km나 가까워져 생기는 현상이다. 수퍼 문을 함께 즐길 그리운 가족을 만나기 위한 민족 대이동이라는 연례 축제가 한창이다.

하지만 휴전선 철조망에 가로막혀 고향에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사람들이 있다. 실향민, 그 중에서도 6만 명이 넘는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와 그 가족들이다. 8·25 남북합의에 따라 이번에 만나기로 한 가족들도 추석 한 달이나 지난 다음달 20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나마 0.1% 남짓 되는 100가족만이 ‘로또 당첨 확률’을 뚫고 상봉이라는 행운을 잡았다.

1988년부터 우리 정부에 이산가족 상봉을 신청한 사람은 모두 13만 명에 이른다. 절반에 가까운 6만3000여 명은 헤어진 가족의 생사확인도 못하고 유명을 달리했다. 생존해 있는 상봉 신청자 중에서도 절반 이상이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인 81.9세를 넘겼다. 시간은 지금도 이산가족의 애타는 기다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째깍째깍 흐르고 있다.

오는 10월 20~26일 금강산에서 이뤄질 이산가족 상봉처럼 남북 각각 100명씩만 만난다면 순서가 돌아오지 않을 신청자가 거의 대부분일 것이다. 1년에 추석이나 설날 같은 명절에 한두 차례씩 꼬박꼬박 상봉이 이뤄져도 그렇다. 이산가족 상봉의 정례화와 대규모화가 제기되는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8월15일 광복 70주년 경축사에서 이산가족 6만 여 명 전체의 생사 확인을 북한 측에 제의한 바 있다. 우리는 북한 측에 다시 한 번 촉구한다. 이 제의를 즉각 수용하라고. 생사만이라도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 분단의 아픔을 달래주는 출발점이다.

북한 정권은 더 이상 이산가족 상봉을 협상카드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60년 넘게 생이별한 이산가족들의 눈에 더 이상 피눈물이 맺히게 해선 안될 것이다. 이들이 한꺼번에 모두 금강산이건, 서울이건, 평양이건, 한 군데나 또는 여러 곳에 나뉘어 동시에 상봉하도록 해야 하겠지만 그러지 못하는 현실의 벽이 안타깝기만 하다.

우리 정부는 북쪽만 탓할 게 아니라 더 늦기 전에 전향적으로 이산가족 문제를 해결할 특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생사확인에 이어 화상 상봉, 영상편지 또는 서신 교환, 교환방문, 상봉 정례화 등 단계적으로 혹은 일거에 풀 수 있는 ‘통큰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차제에 명분은 있으나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온 5·24 조치를 과감히 해제하고 금강산·개성 관광을 재개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했으면 한다.

물론 상대방이 있는 사안이라 일방적 양보는 어렵겠지만, 이를 핑계로 우물쭈물하다가는 기회를 놓쳐버리기 쉽다. 시간은 이산가족 편이 아니다. 남북한 정부는 이산가족 문제를 그들의 개인사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최근들어 북한이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전후로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 등 군사적 도발을 벌일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그 이후로 예정된 이번 이산가족 상봉이 무산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그 경우에도 개성공단 가동은 지속될 것인데, 이산가족 문제도 이런 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인도주의적 교류인 이산가족 상봉을 다른 현안과 연계시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다음달 3일은 독일통일 25주년이 되는 날이다. 서독은 ‘접근을 통한 변화(Wandel durch Annährung)’로 결국엔 통일을 달성했다. 이산가족 상봉은 바로 그런 해법의 대표 사례가 될 것이다. 내년 설날·추석엔 6만 이산가족이 모두 한꺼번에 상봉하는 소원을 성취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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