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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산업단지 30개 조성 … 청년·퇴직자 30만명 파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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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6 면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는 17개의 공동적 지향목표와 169개의 이행목표로 구성돼 있다. 사진은 지난달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UN2030지속가능발전어젠다와 한국’ 콘퍼런스. [사진 SDSN코리아]

1400만 명이 본 영화 ‘국제시장’에서 주인공 덕수(황정민 분)는 독일에 광부로 나간다. 깊고 어두운 탄광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며 덕수가 벌어 온 돈은 가족의 생계수단이자 경제 발전의 원동력이 됐다. 광복 70년, 덕수를 독일에 보냈던 한국은 선진국 대접을 받는 나라가 됐다. 지구촌 최빈국에서 외국의 도움과 수많은 덕수의 힘으로 배고픔에서 벗어난 한국은 이제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를 도울 수 있는 위치가 됐다. 동시에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청장년 실업 문제를 해소해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덕수는 배운 것, 가진 것 없고 나라도 가난해 광부가 됐지만 지금 우리에겐 능력과 기술을 갖추고도 일자리가 없는 청장년이 상당하다.

‘범아프리카 한국형 산업단지 구축 프로젝트’(이하 아프리카 공단). 한국이 그동안 쌓아 온 경험과 기술을 바탕으로 가난한 나라에 공단을 세워 ▶빈곤 퇴치 ▶시장 개척 ▶좋은 일자리 창출을 하자는 사업이다. 공단은 한국 정부 및 유엔·세계은행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지원 아래 국내 30대 대기업이 중소기업과 손잡고 추진한다.


사업을 추진하는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는 내년부터 2030년까지 공단을 단계적으로 조성한다는 목표다. 국내에 민관 합동기구를 만든 뒤 아프리카에 시범 공단을 세울 계획이다. 이어 국제사회의 참여를 유도해 ‘세계 기아퇴치 민간기구’(가칭)를 만들어 지구촌에 곳곳에 공단을 늘려 가겠다는 것이다.

2011년 11월 남아공 중부지역 쿠누에 있는 만델라 자택에서 만델라 전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누는 박광기 삼성전자 부사장. [사진 뉴패러다임미래연구소]

연구소 박광기(프로젝트 리더·삼성전자 부사장) 전문위원은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가 앞으로 유엔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구체적 시행사업의 하나로 채택되기를 희망한다. 이를 위해선 우리 정부가 국책사업으로 선정해 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사하라 이남 빈곤지역에서 우선 추진 연구소는 아프리카 기아 밀집지역에 공단 30개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사업은 3단계로 추진한다. 1단계는 극빈국에 생필품 공단을 세운다. 2단계는 개발도상국으로 대상을 확대, 생필품뿐 아니라 중화학제품도 만든다. 3단계는 국제사회의 본격적인 동참을 통해 지구촌 곳곳으로 공단을 늘려 간다는 것이다. 대기업은 전력 공급, 용수 처리, 산업폐기물 처리, 주거시설 구축 같은 인프라 조성을 담당한다. 중소기업은 가공식품·생활도구 같은 생필품을 만든다. 공단은 수출형이 아닌 자급자족형으로 한다. 현지인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의 자립심을 키우기 위해서다. 한국 농촌 발전의 원동력인 새마을운동도 접목한다.


공단이 성공적으로 조성되면 공단 한 개당 3만 명, 30개 공단에서 총 90만~100만 명을 고용할 수 있다. 박 전문위원은 “전체 인력의 30%는 기술자 및 현장 관리·마케팅 인력으로 한국에서 파견한다. 30개 공단을 모두 합치면 총 30만 명 수준”이라고 말했다. 시범 단지 후보로는 에티오피아·모잠비크·가나가 꼽힌다. 특히 에티오피아의 관심이 높다. 지난 4월 대구에서 열린 세계 물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을 찾은 물라투 테쇼메 에티오피아 대통령은 박 대표에게 생필품 공단을 세워 줄 것을 요청했다. 물라투 테쇼메 대통령은 “2016년에 시작되는 에티오피아 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과 연결시켜 유엔의 역할을 구체적으로 알려 주면 직접 유엔에 필요한 사항을 요청하겠다”고 했다.


아프리카 공단은 한국의 장점을 살린 효과적인 지원방식이다. 원조 대상국에서 공여국이 됐고 경공업부터 중화학공업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새마을운동으로 대표되는 빈곤 퇴치운동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 대표인 제프리 삭스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는 “한국의 경제 개발 경험을 전수해 기아 퇴치는 물론 경제 자립 토대를 조성할 수 있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쏟아져 나오는 베이비부머, 청장년에게 해외에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2000년대 7~8% 수준을 유지하던 청년 실업률은 올해 2월 11.1%로 뛰어 외환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6월 청년 실업률은 10.2%로 전체 실업률(4.1%)의 두 배 이상이다. 1955~63년에 태어난 베이비부머는 곧 은퇴해야 하는데 2모작 인생계획 수립이 쉽지 않다. 2010년 경제활동 인구조사 기준으로 베이비부머는 732만6000명이나 된다.


범정부적 사업 추진기구 필요 한상백 경희대 취업진로지원처 팀장은 “근무 환경이나 연봉이 적절하면 아프리카 공단 프로젝트는 일자리 갈증을 해결하는 매력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봉 한반도발전연구원 원장도 “양질의 해외 일자리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한국이 세계 곳곳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기회”라고 했다.


지구촌 70%를 차지하는 150여 개도국을 새로운 주력 시장으로 만들고 중소기업의 해외 진출을 확대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 중소기업중앙회 추문갑 실장은 “아프리카는 잠재적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이다. 한국에서는 사양산업이지만 현지에선 뜨는 산업이 될 수 있는 업종과 기술이 많다”며 “정부·대기업이 앞장서 준다면 중소기업은 환영하는 프로젝트”라고 말했다.


야심 찬 계획이나 넘어야 할 산이 만만치 않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 가능하겠느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교·원조·경제정책의 조화가 쉽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기업 이익과도 맞물려 있다. 중국 제품과도 싸워서 이겨야 한다.


개발원조 담당부서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업을 현실화하기 위해선 범정부적 기구 설립이 필요하다. 외교부 개별협력과 관계자는 “사업 규모가 크고 기업 경영과 연결돼 있어 특정 부처의 힘만으로는 힘들다”고 했다. 공단당 2000억~3000억원으로 예상되는 자금 조달도 과제다. 30개 공단이면 6조~9조원이 들어간다. 안정적으로 이익을 낼 수 있어야 기업들이 참여할 수 있다.


연구소 백현주 사무대표는 “공적개발원조(ODA) 자금, 대기업의 사회공헌 자금 등을 활용해 시범 공단을 시작하고 2~3년 내에 성공사례를 만들어 국제사회에 동참을 요구하면 이후 세계은행 개발자금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창조경제혁신센터처럼 삼성·SK·CJ 등 어느 한 곳이 정부 지원 아래 시범 사업을 하면 경쟁적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이진상 덕성여대 국제개발협력센터장은 “어느 때보다 일자리 창출, 시장 개척이 어려운 상황이다. 아프리카 공단에 대한 유엔과 한국 정부·대기업의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염태정 기자 yo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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