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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처핸접!” 구호가 떨어진다, 젊음이 요동친다 … 클럽, 문화를 넘어 이젠 산업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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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지난해 YG엔터테인먼트와 제일모직이 캐주얼 브랜드를 공동 설립했다. 더 눈길을 끈 건 브랜드 론칭 장소가 서울 강남클럽 ‘옥타곤’이었단 점이다. 요즘 클럽에선 패션쇼·모터쇼도 열린다. 더 이상 클럽은 은밀한 밤의 공간이 아니다. 젊고 자유롭고 트렌드를 만끽하는 이들이 최신 유행을 공유하는 장소다. 이곳의 주 음악은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Electronic dance music·EDM). 지난 6월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EDM 축제 울트라 뮤직페스티벌(UMF)에는 11만여 명이 찾아 성황을 이뤘다. EDM 클럽은 어떻게 젊음의 해방구로 자리 잡았나. 신사동 클럽 ‘신드롬’을 둘러싼 욕망의 사회학을 들여다봤다.

[세상 속으로] ‘젊은이들의 해방구’ 강남 EDM 클럽
바뀌는 클럽 중심 무대
92년 ‘발전소’ 문 연 뒤 홍대서 시작
강남시대 열리며 대형화·대중화
밤 10시부터 새벽까지 열광의 도가니

 심장박동이 빨라진다. 동공이 커진다. 발끝이 절로 움직인다. 지난 10일 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클럽 ‘신드롬’. 밤 12시를 앞둔 시각 DJ 부스 앞은 이미 발 디딜 틈이 없다. 적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 이상 기다려 들어온 클러버들이다. ‘신드롬’이 영업하는 목·금·토요일 밤마다 되풀이되는 풍경. 오늘은 특별 DJ로 걸그룹 AOA의 혜정이 나왔다. “초보니까 예쁘게 봐달라”는 소개말이 떨어지자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졌다. 헤드기어를 쓴 혜정이 살랑살랑 리듬을 타자 부스 앞의 남녀가 일제히 팔을 들어 화답했다. 누군가 외친다. “푸처핸접~!!!!”

 “손 머리 위로”라는 뜻의 영어(Put your hands up)를 익살맞게 발음한 클러버 행동강령이다. 클럽에서 DJ는 무당 같은 존재다. 주문(呪文)에 맞춰 신도들이 일제히 팔다리를 흔든다. 드럼 퍼포먼스, 스크래치 믹싱, 큐버튼 믹싱 등 디제잉 스킬(기술)이 EDM 굿판을 달군다.

 강한 전자음과 빠른 비트의 디지털 믹싱 음악. EDM을 ‘시끄러운 소음’ 정도로 치부한다면 트렌드를 모르는 것이다. 오죽하면 MBC ‘무한도전’ 박명수가 ‘국민 여가수’ 아이유를 EDM에 접신시키려 혼신을 다했겠는가. 둘의 합작곡 ‘레옹’은 EDM 믹싱으로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 덕분에 영동고속도로가요제가 한바탕 야외 클럽으로 변했다.

 클럽은 설 자유는 있지만 앉을 자유는 쉬 허락되지 않는다. 스테이지 주변에 배치된 테이블은 최소 기본 수십만원이다. 밤 10시에 시작된 클럽 열기는 보통 새벽 3~4시까지 이어진다. 아슬아슬한 옷차림으로 현란한 춤을 선보이는 이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평범하게 끼리끼리 논다. 춤추다 눈 맞으면 다음 차수로 이어지기도 한다.

◆클럽 앱 회원 60만 명 … 스타 마케팅으로 ‘물 관리’=“동선 배치가 중요합니다.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모이고 부딪히고 헤어지게 하는…. 우린 이걸 유선(流線)과 절선(切線)이라고 해요.”

 ‘신드롬’ 이강희(47) 대표에 따르면 클럽에서 우연은 필연의 결과다. 그는 사람들이 왜 클럽에 오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간파하고 있다. 그들은 즐기러 온다. 음악을, 춤을, 만남을. ‘CABANA’ ‘POOL A’ ‘HIP HOP’ 등 구역(zone) 분류나 연결 동선은 이를 염두에 둔 것이다.

 공간의 매력은 매력적인 사람들이 많을 때 풍성해진다. 이를 속된 말로 ‘물 관리’라고 한다. 이 대표는 “모델, 기획사 연습생, 단골 고객 등을 접촉해 매일 입장객 10% 정도가 ‘훈남훈녀’로 유지되게끔 한다”고 말했다.

 셀레브리티 마케팅도 중요하다. ‘신드롬’은 힐튼호텔 상속녀 패리스 힐튼이 내한했을 때 ‘힐튼이 다녀간 클럽’으로 입소문이 났다. 이 대표는 “호텔업과 관련해 입국한다는 정보를 듣고 접촉해 별도 개런티를 주고 데려왔다”고 말했다. ‘빅뱅’ 승리 등 아이돌 그룹 멤버들도 자주 들른다고 했다. “특별대우를 요구하진 않지만 아무래도 신경 써서 잘해주게 된다”고.

 예전엔 속칭 ‘삐끼’나 그 윗급인 MD들이 오프라인으로 사람들을 모았지만 요즘은 온라인·모바일이 대세다. 무료 입장권을 나눠주는 애플리케이션(앱) ‘클럽믹스’에 가입한 사람만 60만 명이다. 앱을 통해 클럽 동행을 구하거나 테이블 예약금을 분담할 클러버를 모으기도 한다.

 ◆EDM 유행하면서 홍대서 강남으로 축 이동=지난해 11월 서울 잠원동 리버사이드호텔의 재개관이 화제가 됐다. 1981년 호텔과 함께 출범한 ‘물 나이트클럽’이 33년 만에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현재 이 자리엔 애프터클럽(대낮까지 영업하는 클럽) ‘반투(VAN2)’가 들어섰다. 강남 밤 문화가 나이트클럽에서 클럽으로 세대 교체됐음을 알리는 사례다.

 줄리아나·월드팝스(월팝)·스튜디오80 등이 한 시절을 호령했다. 지금은 옥타곤·아레나 등 EDM 클럽이 강남의 밤을 접수했다. 나이트클럽(혹은 디스코텍)은 술 마시고 춤추는 것만큼 ‘부킹’이 중요했다. EDM 클럽 역시 만남의 공간이지만 이들을 매개하는 건 음악이다. 음악과 춤으로 서로의 ‘끼’를 확인한 뒤 자연스레 한데 어울린다.

 한국 클럽의 역사는 홍대 쪽에서 비롯됐다. 92년 4월 ‘발전소’ 개장을 효시로 본다. 록 바(rock bar)라는 콘셉트로 시작한 발전소는 빠르게 테크노 음악을 받아들였고 곧 EDM 성지가 됐다. 명월관·조커레드·MI·흐지부지·NB 등에서 힙합과 EDM이 경쟁했다. 2001년 시작된 ‘클럽 데이’(하룻밤에 여러 클럽을 다닐 수 있게 한 공동 비표 행사)가 매니어를 늘렸다.

 홍대에서 시작된 EDM 물결은 이태원을 타고 강남으로 넘어갔다. 류재현 ‘상상공장’ 대표는 “2012년 ‘클럽 데이’가 없어지고(현재는 부활) 강남 클럽들이 사실상 무료 입장으로 바뀐 게 분수령이 됐다”고 기억한다. 수천 명을 한데 수용하는 대형 나이트클럽이 속속 주류 음악을 바꿨다. EDM의 대형화·대중화다. 선호하는 DJ도 바뀌었다. 그 전까지 DJ의 외모·스타성이 주목받았다면 음악을 믹싱하고 분위기를 주도하는 EDM 세계에선 음악성이 부각된다. DJ를 따라 클럽을 바꿔 다니는 팬덤마저 생겨났다.

 이강희 대표가 처음 클럽 경영에 나선 건 2006년 ‘스팟’부터다. 자수성가한 가라오케 사장 출신인 그는 처음엔 비즈니스 차원으로만 접근했다. 몇 번 시행착오를 겪는 사이 빚이 수십억원대로 불었다. 자살 충동까지 겪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음악 트렌드도 잘 몰랐죠. 제대로 클럽을 해보자는 생각에 EDM을 연구하기 시작하니까 그제야 이것이 ‘문화’라는 게 보이더라고요.”

 ‘문화’란 시대와 욕망의 집합체다. 이 대표는 클러버들이 바라는 음악·동선·조명을 연구했다. 유학생·외국인들이 익숙한 파티 문화를 결합시켰다. 이렇게 내놓은 클럽 ‘홀릭’(당시 신사동)이 ‘대박’을 터뜨렸다. 전국에서 끼 좀 있다고 하는 이들이 몰려드는 명소가 됐다. ‘신드롬’은 2013년 말 문을 열었다. 이 대표는 “현재 입객 규모로는 강남 최대(하루 2000~3000명)”라고 말했다.

 ◆야외축제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으로 확장=현재 클럽 문화는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밀접히 연관돼 있다. 이강희 대표만 해도 ㈜드래곤플라잉 엔터테인먼트를 이끌면서 각종 페스티벌·파티 기획과 음반 레이블 등 사업을 벌인다. 클러버들의 라이프스타일을 겨냥해 패션·화장품 사업에도 투자했다. 박재형 기획팀장은 “야외 페스티벌의 경우 밤 10시쯤 축제가 끝난 뒤 더 놀고 싶은 사람들이 클럽으로 오게 된다”면서 “유흥과 여가의 큰 흐름을 기획하는 게 우선이고, 클럽은 그 안의 하부 단위”라고 말했다.

 요즘 강남 클럽의 큰손은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손님들이다. 이 대표는 “모 클럽에서 하룻밤에 7000만원을 쓴 중국인이 최고 기록이라고 들었다”고 했다. 이런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는 전략으로 ‘클럽 관광 자원화’ 얘기가 나온다. 강남구청(구청장 신연희)은 지난해 11월 ‘건전한 유흥문화 정착과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내세워 ‘명품 건전클럽’을 선정하기도 했다. ‘신드롬’ 등 10개 업소가 포함됐다.

 그러나 여전히 클럽이 필요악이란 시각도 있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외국인·동포·재벌3세 등의 약물 복용사건과 탈세 등 의혹 때문이다. 최근 홍대 클럽과 관련해 조례를 완화한 마포구청 방침에도 찬반이 엇갈린다. 홍대 클럽들이 일반음식점으로 시작해 춤추는 문화가 생긴 특수성을 감안한다고 해도 과한 혜택이라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관계자는 “유흥주점이면 30% 세금을 더 내는데 이걸 피하려고 변칙 영업한 것 아니냐”면서 “이젠 홍대에도 상업자본이 대세라서 형평성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클러버나 업주 모두 클럽문화가 과도기라는 건 인정한다. 프리랜서 DJ로 활동하는 A씨는 “기존엔 클럽들이 성적인 사진을 유포하는 등 자극적인 콘텐트로 손님을 끌어모으려 했지만 요즘은 해외 유명 DJ를 초빙하는 등 공연문화적인 성격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DJ 페스티벌 등 야외 행사 활성화를 통해 클럽의 ‘안과 밖’을 연결시키기도 한다.

강혜란 기자·김성훈 인턴기자 theother@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사진 설명

EDM 클럽의 꽃은 DJ다. 이들이 주도하는 강남의 밤은 깊어갈수록 흥겨워진다. 지난 10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클럽 ‘신드롬’에서 DJ가 컨트롤러를 다루며 음악을 믹스하고 있다(사진 1). 젊은 남녀로 가득한 플로어를 내려다보는 ‘신드롬’ 이강희 대표(사진 2. 현란한 조명의 신드롬 내부(사진 3)와 바깥에서 줄지어 입장을 기다리는 클러버들(사진 4).

[S BOX] 해외 유명 DJ 초청비 2시간에 5억 … 국내 톱 클래스는 ‘클론’ 구준엽

왼쪽부터 마크 론슨, DJ KOO(구준엽), DJ SODA, 캘빈 해리스, 데이비드 게타.

“우리는 샘플링 이후(post-sampling) 시대에 삽니다. 좋아하는 곡의 대목을 가져와 음악을 만듭니다. 그렇게 음악 진화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지난해 5월 세계적인 석학과 유명 인사들의 강연장인 TED에서 현역 DJ 겸 프로듀서가 연단에 섰다. 영국 출신으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한 마크 론슨(40)이다. 그는 디지털 디제잉을 통해 기존 음악이 어떻게 새로워지는지 시연해 박수갈채를 받았다. DJ의 달라진 위상과 영향력을 확인하는 장면이었다.

 일렉트로닉 댄스 뮤직(EDM) 문화에서 DJ는 단지 음악을 트는 디스크자키가 아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음원을 섞어 또 다른 음악을 만드는 프로듀서다. 나아가 축제와 파티를 주도하는 ‘문화 아이콘’으로 숭배받는다. 클럽 혹은 페스티벌의 초청 비용도 부르는 게 값일 정도다. ‘신드롬’ 이강희 대표는 “해외 유명 DJ를 부르려면 2시간에 5억원씩 줘야 한다. 데이비드 게타는 10억원을 불러 무산된 적 있다”고 말했다.

 지난 8월 경제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5년 세계 DJ 부호 순위에 따르면 1위는 영국 출신 캘빈 해리스(31). 보유자산이 6600만 달러(약 778억원)로 추정된다. 이 중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속옷 모델 등 음악 외 부수입만 약 1000만 달러에 이른다. 프랑스 출신인 게타(48)가 3700만 달러(약 436억원)로 2위다.

 국내에서도 DJ의 영향력이 날로 강화되고 있다. 웹매거진 ‘Party Luv’는 매월 DJ들의 음반 활동, 미디어 노출 횟수 등을 집계해 톱10을 발표하고 있다. 부동의 1위는 DJ KOO, ‘클론’의 구준엽이다. 연예인 중에 박명수(G-PARK)·춘자·류승범·유키스 출신 동호 등도 활발히 활동한다. 상위권 DJ들은 CF음악·게임음악·패션쇼 파티 등으로도 활동반경을 넓히는 추세다.

 DJ가 선망의 직업이 되긴 했어도 육성 시스템에는 허점이 많다. 대표적인 게 무급 견습 DJ다. 디제잉 교육 명목으로 모집한 뒤 클럽에서 잡일을 시키는 일종의 ‘열정페이’다. 10년 이상 활동해온 DJ ‘Serge Orvin’은 “DJ의 급여 체계 자체가 불안정한 데다 일부 스타 DJ에게만 쏠림 현상이 크다”며 “아직까지 ‘화류계 직업’으로 보는 편견이 중·장기적 DJ 육성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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