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위안부 1인당 1억 배상 … 일본에 정식 소송 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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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10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를 ‘조정’에서 ‘소송’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지난 2년간 조정을 시도해 왔지만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자 정식 재판을 통해 배상을 받겠다는 것이다.

할머니들의 손해배상 사건을 대리하고 있는 김강원(50·사진) 변호사는 16일 “이르면 이달 중 조정 재판부에 ‘조정 불성립’ 등으로 사건을 종결해 달라는 건의 서면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조정은 민사조정법에 따라 본안 소송으로 이행돼 민사 재판부에 배당된다. 김 변호사는 “이제는 정면 승부로 싸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손해배상 조정이 시작된 건 2013년 8월이었다. 2000년 초 법률 자문을 하면서 ‘나눔의 집’ 할머니들과 인연을 맺게 된 김 변호사는 2013년 8월 11일 이용녀 할머니가 세상을 떠난 날, 일본 정부로부터 손해배상을 받아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는 ‘나눔의 집’ 안신권 소장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국내 법원에서 일본을 상대로 한번 싸워보자”고 제안했다.

 김 변호사는 이틀 뒤 서울중앙지법에 “김군자 할머니 등 12명이 일제 강점기에 위안부로 강제동원됐다. 일본 정부가 1인당 1억원씩의 위자료를 지급하라”고 조정 신청을 냈다. 하지만 첫 조정이 열리기까지 1년10개월이 걸렸다. 법원에서 조정에 응할지를 묻는 요청서를 일본 정부에 보냈으나 세 차례나 반송됐다. 일본 정부는 헤이그 송달협약 13조를 들어 ‘한국 법원의 주권이 일본에까지 미치지 않는다’는 이유를 댔다. 결국 지난 6월과 7월 김 변호사만 두 차례 조정 기일에 참석함으로써 사실상 조정이 무산됐다.

 소송 전환 결정에 대해 김 변호사는 “조정은 일본이 응할지 여부를 확인해야 하지만 소송으로 가면 재판부가 소송 개시를 알리는 공시송달을 한다”며 “일본이 응하지 않더라도 원고 측만 참석한 채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김 변호사의 사무실 책상엔 국제법 관련 서적과 연구자료가 수북이 쌓여 있다. 재판 전략을 짜느라 골몰하고 있는 흔적이다. 현행 국제법은 특정 국가의 주권 행위에 대해 다른 나라가 잘못을 따질 수 없게 돼 있다.

 하지만 상황이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헌법재판소가 우리 국민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제한한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 2조 1항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을 연내에 결정하겠다고 최근 국감에서 밝혔다. 김 변호사는 “2012년 대법원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권을 인정한 만큼 헌법재판소 결정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 변호사는 “2년 전 조정에 나선 위안부 할머니는 12명이었지만 배춘희·김외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이젠 10명뿐”이라며 “재판 역시 시간과의 싸움”이라고 말했다. 그는 2년간 수임료도 받지 않고 소송에 매달리는 이유에 대해 “할머니들의 비원(悲怨)을 하루빨리 풀어드리고 싶다”고 답했다. “할머니들은 돌아가신 제 어머니와 연세가 비슷하다. 생전 그분들을 걱정했던 어머니의 유훈처럼 여겨진다”는 것이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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