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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셰시트? … 국경 열었다 속속 다시 통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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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15일 헝가리 남부 로즈케에서 국경 철조망을 점검하는 경찰들. 헝가리는 철조망을 훼손하는 난민을 추방하기로 했다. [AP=뉴시스]

헝가리가 15일(현지시간)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유럽 통합의 상징으로 이동의 자유가 보장된 26개 솅겐 국가들로 향하는 길목 국가로서 난민들이 몰려들자 이들을 저지할 초강력 이민법을 이날 발효한 데 이어 국경 수비에 군까지 투입할 근거를 마련한 것이다. 솅겐 지역 내에서도 국경 통제가 시작됐다. 독일의 조치에 따른 ‘도미노 효과’다. 그리스와 영국의 유럽연합(EU) 이탈을 칭하는 그렉시트·브렉시트에 이어 솅겐조약의 이탈을 의미하는 ‘셰시트’(Schexit·Schengen+exit)란 말까지 나올 정도다.

 헝가리에선 15일 0시부터 국경을 넘거나 철조망을 훼손하는 난민에 대해 추방 또는 구속할 수 있도록 강력한 통제 조치의 새 이민법이 발효됐다. 이로써 월경(越境)이 중범죄가 됐다. 세르비아로부터의 난민 유민을 막겠다는 것이다. 관련 법 위반자를 즉결 심판할 수 있도록 판사 30명을 상시 대기시켰다. 실제 이날 오전 10여 명을 검거했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EU의 이민자 관련 규정을 엄격히 지키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스트리아와 슬로바키아는 이미 14일 국경 통제 조치에 들어갔다. 전날 독일 정부가 “독일로 쏟아져 들어오는 난민 유입 사태를 막고 질서정연한 난민 수용 절차를 회복하겠다”며 임시 국경 통제 조치를 취한 걸 따라한 것이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날 헝가리와의 국경 지역에 군과 경찰을 파견해 검문을 실시했다. 그래도 이날 오후 한때 1시간 동안 1만8000명의 난민이 도착하는 일이 벌어졌다. 헝가리가 솅겐조약 밖 국가인 세르비아와의 국경을 통해 유입된 난민을 곧바로 오스트리아로 실어 보낸 때문이다. 슬로바키아 정부는 220명의 경찰을 추가 배치해 헝가리·오스트리아 국경에서 여권 검사를 시작했다.

 여기에 벨기에·네덜란드·폴란드·체코·핀란드도 유사 조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테오 프랑켄 벨기에 이민장관은 “독일의 입장을 이해한다. 솅겐조약은 국경 통제를 재도입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며 “우리는 아직 독일과는 다른 처지에 있지만 유사한 조치를 지금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네덜란드·핀란드는 국경 순찰을 강화했다.

 14일 열린 EU 내무장관 회의는 별 성과 없이 끝났다. EU 집행위원회가 제안한 12만 명 난민을 회원국들이 분산 수용하는 ‘난민 쿼터제’에 대해 “원칙엔 합의했다”고 했을 뿐이다. 난민을 자발적으로 수용하는 국가에게 난민 1인당 6000유로(약 80만원)의 지원금을 주기로 했다. 그러나 난민들을 어떻게 할당할지 결론을 내지 못했다. 폴란드·체코·슬로바키아 등 동유럽 국가들의 강력한 반발 때문이다. 내달 8일 재논의하기로 했는데 이 사이 동유럽 국가 등의 쿼터를 줄이는 쪽으로 조정될 가능성이 있다. 독일은 쿼터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국가에 대한 EU 지원금을 삭감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독일 내부도 시끄러워지고 있다. 올해 80만 명의 난민 신청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지만 한 달 만에 100만 명으로 늘려 잡아야 하는 등 난민 유입 속도가 예상 이상으로 빠르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 난민들을 상대하는 지방 정부들이 백기를 들었다. 난민들로부터 ‘천사’ ‘엄마’ 소리를 듣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도 압박을 받고 있다. 독일의 한 진보 언론은 “국경을 열었다가 닫았다. 누구도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예상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메르켈 총리가 계획이나 있는지 묻고 있다”고 썼다. 집권당 인사는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다”고 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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