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손길승 전경련회장의 거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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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SK글로벌 사건으로 유죄선고를 받음으로써 손길승 전경련회장의 거취가 관심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그의 거취는 개인 차원을 넘어 전경련이 갖는 재계의 리더십, 향후 정.재계의 관계 등 여러 면에서 가볍게 결론지을 일은 결코 아니다.

전경련은 어제 여러 보도가 있지만 형(刑) 최종 확정 전에 孫회장의 중도 사퇴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와 함께 전경련 회장단이 계속 신임의 뜻을 보였고 이는 회장단회의에서도 걸러진 일임을 덧붙였다.

이에 반해 참여연대 등 시민단체는 유죄선고를 받은 이상 그가 기업경영에서는 물론 전경련 회장직도 물러나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전경련 회장 자리가 얼마나 철저한 도덕적 엄격성을 요구받아야 하느냐에는 논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孫회장은 어떻든 유죄판결로 개인의 명예와 공인으로서 상처를 입었다. 도덕적 결함이 있는 인사가 재계를 대표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흘려버릴 수만은 없게 된 것이다.

특히 그의 유죄판결의 근거가 분식회계라는 데서 "부(富)에 상응한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해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신뢰를 훼손했다"는 판결문의 지적은 孫회장에게 뼈아픈 경고일 것이다.

전경련의 현 입장은 총액출자제한제도, 집단소송제 도입 등 여러 과제에서 정부와의 갈등을 풀고 해결해 나가야 할 마당이다. 좋든 싫든 전경련 회장은 이에 앞장서온 얼굴이다.

그러나 재계 총수가 계속 재판에 묶여 있다면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을 수 없다. 전경련이 한국을 대표하는 경제단체가 된 것은 비교적 자율성을 지켜온 전통에 있다는 점도 다시 새겨볼 대목이다.

SK글로벌의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반대하는 외국계 주주 등의 끊임없는 문제제기도 孫회장에게는 짐이다. 전경련은 지금 어느 때보다 역할이 증대돼야 할 상황이다.

경제가 침체되고 불안한 상황에서 현 정권의 재벌개혁 추진에 따라 정.재계의 새로운 관계정립도 여전한 숙제다. 재계와 孫회장에게 이런 어려운 여건들을 고민하고 유임을 결정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