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脣亡齒寒 -순망치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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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27면

중국 춘추시대(春秋時代) 이야기다. 진(晋)나라 헌공(獻公)이 괵(?)나라를 치고자 했다. 그러나 괵으로 가기 위해선 우(虞)나라를 거쳐야 했다. 그래서 헌공은 신하인 순식(荀息)을 우나라에 파견했다. 빈 손으로 갈 리는 없다. 천하의 명마(名馬)와 진귀한 구슬을 우 임금에게 뇌물로 바치며 길을 빌려 달라는 청을 넣었다.


우 임금이 솔깃해 할 때 신하인 궁지기(宮之奇)가 진나라의 속셈을 간파하고 말렸다. “괵나라는 우나라의 울타리입니다. 괵이 망하면 우 또한 망하게 됩니다. 속담에 이르기를 ‘덧방나무(輔)와 수레(車)는 서로가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輔車相依 脣亡齒寒)’고 한 말이 바로 우와 괵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러나 뇌물에 혹한 우나라 임금의 귀에 이 같은 간언(諫言)이 들어올 리 없었다. 이에 궁지기는 나라가 곧 망할 것이라 보고 가족을 데리고 다른 나라로 떠났다. 과연 진나라는 괵으로 쳐들어가 이를 자기의 땅으로 삼은 뒤 돌아오는 길에는 우나라마저 기습 공격해 멸망시키고 말았다. 뇌물로 줬던 명마와 구슬을 되찾은 것은 물론이다. 여기서 보거상의의 보(輔)는 수레의 짐 싣는 용량을 늘리기 위해 수레바퀴 양쪽 가장자리에 덧댄 나무를 나타내고 거(車)는 수레의 몸통에 해당한다. 즉 보와 거는 서로의 이해관계가 밀접하게 연결돼 있는 것이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순망치한(脣亡齒寒) 역시 같은 뜻이다. 그리고 이 두 개의 성어를 합쳐 순치보거(脣齒輔車)란 말을 쓰기도 한다.


순망치한은 우리에겐 북한과 중국의 끈끈한 관계를 표현하는 말로 인식돼 왔다. 6.25 전쟁 때 수세에 몰린 북한을 살리기 위해 중국이 지원군을 파견하면서 순망치한 운운했던 까닭이다. 중국은 당시 북한을 도와 미군에 대항하는 것(抗美援朝)이 집을 보전하고 나라를 지키는 것(保家衛國)이라 했다. 그러나 이젠 북중 관계를 더 이상 순망치한의 관계라 부르기 어려울 것 같다. 이 달초 중국의 천안문(天安門) 광장에서 열렸던 열병식에 박근혜 대통령이 귀빈 대접을 받고 참석해 과거 김일성의 자리를 차지한 반면 북한 대표는 말석으로 밀려난 게 이 같은 변화를 대변한다. 마치 세월의 흐름에 따라 빛이 바래가는 북중 관계의 현주소를 보는 듯하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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