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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에 선 제1야당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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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31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 대한 재신임 투표는 일단 연기했다. 문 대표는 오늘부터 당원과 국민 여론조사를 해, 어느 한 쪽에서라도 불신임을 받으면 물러나겠다고 했다. 개혁안을 통과시키기 위한 배수진이었다.


투표를 했다면 문 대표의 말대로 혁신과 단결이 이뤄지고, 기강이 설 수 있었을까. 글쎄다. 많은 중진들은 투표에 반대했다. 어제 저녁 어렵게 재신임투표를 연기하기로 했다. 혁신안을 통과시킬 중앙위원회는 예정대로 16일 열기로 했다.


도대체 누구 말이 옳은 건가. 문 대표는 기득권을 지키려고 탈당, 분당을 이야기하며 당을 흔든다고 비난했다. 반대측에서는 문 대표의 친노파가 독식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누가 옳으냐고 묻는 것은 부질없다. 정치에는 정답이 없다. 한 쪽이 이긴다고 다른 쪽이 반드시 지라는 법이 없다. 함께 이길 수도, 함께 질 수도 있는 게 정치다.1987년 김영삼·김대중 양김이 서로 대통령 후보가 되겠다고 양보하지 않을 때다. 재야세력이 심판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당시 재야세력은 정치권과 달리 희생과 헌신의 양심세력으로 인정받았다. 문익환·계훈제·백기완 등 재야의 중심인물들이 포진한 민통련이 두 사람을 불러 면접시험을 쳤다.


결론은 뻔했다. 민통련의 노선은 김대중과 더 가까웠다. 민통련은 김대중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후보 단일화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했다. 오히려 재야의 순수성만 훼손되고, 민통련이 사분오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양김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지역’은 그렇게 끈질기고, 위험한 것이다. 지금 다시 그 잘못을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닌가.


첫 단추를 잘못 꿰었다. 왜 혁신을 하는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한 당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다. 그런데 새정치연합은 그 국민을 잊어버렸다.


선거 참패는 잠시나마 충격을 줬다. 2014년 7·30 재·보선. 11대4로 졌다. 민주당과 새정치연합이 합당한지 3개월만이다. 컨벤션 효과가 남아 있을 때다. 국정원 선거개입, 비선 논란, 세월호 참사로 박근혜 정부는 죽을 쑤고 있었다. 그런데도 참패했다.


올초 4·29 재·보선에서 또 다시 참패했다. 3대0이다. 2·8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한지 불과 3개월만이다. 광주 서구을에서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당선된 것은 더 큰 충격이었다. 새정치연합 입장에서는 4대0이다. 신당론이 증폭됐다. 7·30 재·보선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전남 순천-곡성에서 당선된 데 이어 새정치연합의 뿌리가 흔들렸다.


그러나 반성은 잠시였다. 7·30 때는 안철수·김한길 대표가 물러나고 비대위를 만들었다. 7·30 이후에는 혁신위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바로 계파간 알력이 노골화됐다. 내년 총선을 향한 지분다툼이다. 정부·여당의 실패에서 반사이익을 챙기지 못한 지도부의 잘못이 크다. 하지만 왜 국민이 외면했는지를 찾아, 반성하고, 고치지 못하면 대표만 바꾼다고 끝날 일이 아니다.


문 대표는 한명숙 전 총리의 금품수수를 ‘정치적 판결’이라며 감쌌다. 한 전 총리의 여동생이 사용한 수표를 포함해 1, 2, 3심이 모두, 특히 대법관 전원이 유죄를 인정한 부분까지 정치탄압으로 몰아붙일 수는 없다. 그렇다면 국민 앞에 사과부터 했어야 한다. 윤후덕 의원의 딸 취업청탁 의혹은 당규상 징계 시효가 지났다고 없는 일로 덮었다. 의원의 윤리가 하루 차이로 면죄부가 주어지는 그런 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무엇을 개혁하겠다는 건지 국민은 의아할 수밖에 없다. 당장 드러난 비리도 감싸는데 앞으로 무엇이 달라질 것이라 기대한단 말인가. 자기 계파 감싸기에 매달리니 물갈이, 개혁 공천이 결국은 반대파 숙청 음모가 아니냐고 의심하는 것도 나무랄 수 없게 된다. 이달 초 리얼미터 조사를 보면 새정치연합 지지도는 새누리당의 거의 반토막이다. 10번에 걸쳐 혁신안을 쏟아냈지만 감동이 없었다는 얘기다.


내년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임기 5년 중 3년이 지난 시점이다. 정상적이라면 중간평가가 핵심쟁점이 될 수밖에 없다. 대형사고도 많았고, 뚜렷한 실적을 보여준 것도 없다. 야당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그런데 여론의 관심은 오히려 야당의 분당설, 신당설에 쏠려 있다.


야당 지지자들도 3파전을 걱정한다. 야당이 분열하면 보나마나 참패라는 것이다. 전략도 보이지 않고, 개혁을 향한 진심도 느낄 수 없다. 그런데도 모두 지는 투표에 매달려 있다. 절망 속에서 리더십이 발휘될 때 더 빛난다는 말에나 기대를 걸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대기자 jink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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