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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피바다 시리아 내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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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29면

유럽연합(EU) 국가들이 16만의 난민을 받기로 했다. 세 살배기 시리아 난민 어린이 아일란 쿠르디의 가여운 죽음이 계기다. 하지만 이는 새 발의 피 수준이다. 1700만 시리아 국민 중 400만이 난민 신세이기 때문이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 8월29일 현재 등록된 시리아 난민만 408만8078명에 이른다. 등록 난민은 국경을 맞댄 터키에 193만8999명(추정 213만 명 이상), 레바논에 118만5241명(119만), 요르단에 62만9245명(140만)이 각각 있다.


인구가 450만도 안 되는 레바논이 118만의 난민을 품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요르단은 숫제 난민의 나라가 되고 있다. 2013년 인구가 646만이었는데 지금은 800만 이상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70만~100만 명의 이라크 난민이 정착했다. 상당수가 종교 박해를 피해 옮긴 아시리아인 등 동방기독교도들이다. 여기에 시리아 난민까지 들어왔다.


사실 요르단은 난민에 관한 한 역사적 경험이 있다. 유엔난민구제사업기구(UNRWA)에 따르면 이 나라에는 200만 명의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자가 거주한다. 사실상 국민 셋 중 하나다. 이스라엘에 국토를 빼앗기면서 이주했다. 요르단은 이들을 품었다. 국적까지 부여했다. 이번에 방한한 압둘라 2세 요르단 국왕의 부인인 라이나 왕비도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이다. 라이나 왕비는 국민 통합의 상징이다. 쿠웨이트에서 태어나 중등학교를 마치고 이집트 카이로의 아메리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뒤 시티뱅크와 애플 요르단 지사 등에서 일했다. 아랍 세계 여기저기를 떠도는 부평초 같은 팔레스타인 난민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더욱 비극인 것은 고국에 계속 머물고 있는 시리아 국민이다. 지난 6월 시리아인권관측기구(SOHR)에 따르면 2011년 시작된 내전으로 지금까지 사망자가 23만~32만 명으로 추정된다. 유엔은 지난 1월 시리아 내전 희생자가 22만 명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집을 잃고 국내에서 헤매는 주민이 760만 명이라는 것이 UNHCR의 추정이다. 우리 시대의 지옥이다.


시리아 내전은 인류 역사상 가장 복잡한 전쟁이기도 하다. 크게 봐도 5각 전쟁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의 정부군과 민병대가 한 축이다. 이들에 맞서는 반군이 또 다른 축이다. 여기에 소수민족으로 독자 노선을 추구하는 쿠르드족이 제3의 축이다. 혼란을 틈타 활개치는 알카에다를 비롯한 이슬람극단주의 무장조직이 제4의 세력이다. 잔혹하기로 악명 높은 이슬람국가(IS)가 제5의 집단이다. 이들 모두가 각각 다른 무리와 서로 증오하며 격렬하게 싸우고 있다. 게다가 각각의 축도 분열 중이다. 내부적으로 서로 다른 정당이나 무장조직끼리 반목한다. 주요 조직만 200여 개, 소수조직을 포함하면 2000개가 넘는 조직과 파벌이 서로 싸운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학살극이다.


이렇다 보니 온갖 잔혹 살상무기가 판을 친다. 대표적인 것이 통폭탄이다. 폭탄과 못, 기름이 가득 든 통인데 헬기 등으로 떨어뜨리면 30분~1시간쯤 지난 뒤 터진다. 불발탄인가 싶어 사람이 접근할 때 폭발한다. 몸에 튄 인이나 기름은 물로도, 흙으로도 끌 수 없다. 산 채로 살이 탄다. 주로 호기심 많은 어린이가 희생된다. 누구의 주목도 받지 못한 채 죽어간다. 이런 잔혹한 비극을 끝내지 않고는 난민사태를 해결할 수 없다. 21세기 피바다를 어떻게 끝낼 것인가. 인류는 시험대에 섰다.


채인택 ?


중앙일보 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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