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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분석]정부, 노동개혁 입법안 단독 추진…노동계 압박 배수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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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11일 노동 개혁 입법안을 단독 추진하겠다고 나선 건 노동계를 압박하기 위한 배수진으로 풀이된다.

노동계와 경영계가 적극적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으면 정부 주도의 입법안을 밀어붙일 수밖에 없다는 경고 메시지다. 그렇다고 정부가 판을 깰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현재의 정치지형상 정부 주도 입법안은 국회를 통과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새누리당과 정부가 협의해 법안을 낸다고 해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조차 넘기가 버겁다.

환노위는 사실상 야당천하다. 위원장이 새정치민주연합의 김영주 의원이다. 위원 수(18명)는 겉보기엔 여야 동수로 구성돼 있다. 그러나 여당 소속인 이완구 의원이 의원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 여당이 한 명 적다는 얘기다. 야당은 노사정 대화가 시작될 때부터 “절대 통과 못 시킨다”고 공언했다. 노동계가 사인한 합의서가 있어도 야당의 반대를 이겨내기 힘든데, 이것마저 없으면 물리적으로 뚫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이 정부 발표가 나오자마자 “정부 정책에 자신 있으면 실행에 옮겨보라”는 성명을 낸 것도 이런 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정부로서도 여론이란 무기가 있다. 노동개혁에 대한 여론은 우호적이다. 경제를 살리고 미래세대에 일자리를 주기 위해선 노동개혁을 미룰 수 없다는 공감대가 폭넓게 형성돼있다. 때마침 터진 금호타이어, 현대중공업과 같은 대기업 노조의 파업도 노동개혁에 대한 우호 여론을 부채질했다. 청년 실업을 외면한 대기업 노조의 밥그릇 챙기기란 비판이 거세졌기 때문이다. 노동계로선 이런 여론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다만 정부도 노사정 대화에서 몇 차례 실책을 저질렀다.

최대 쟁점이 된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와 저성과자 해고와 관련된 지침 제정 문제를 노동개혁의 상징으로 만든 게 대표적이다. 8일 노사정 합의에 따라 열린 토론회에서 정부는 소위 따돌림의 대상이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정부를 제외한 모든 발제자와 토론자가 “지침은 안 된다. 중장기적으로 여론을 수렴하고 법리 검토를 거쳐 최종적으로 법제화를 통해 실현해야 한다”고 했다. 손쉬운 지침 제정으로 추진하려던 정부가 머쓱한 처지가 됐다. 노사정 대표가 합의한 공공부문 원포인트 협의체를 파기한 것도 기획재정부였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이 10일 협상에 임하는 정부의 태도를 강도 높게 비판하는 초유의 사태까지 빚어졌다.

결국 지금으로선 정부도 독자 행보가 어렵고 노동계나 경영계도 발을 뺄 수 없는 형국이다. 정부의 독자 입법안과 별개로 노사정이 12일 오후 5시부터 대표자회의를 재개하기로 한 건 이 때문이다. 노사정 대타협의 불씨는 아직 꺼지지 않은 셈이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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