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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정재의 시시각각

구조조정 선생뎐 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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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정재
논설위원

내가 선생을 여기 소개한 건 6년 전이다. 그때도 선생은 오래 잊혔었다. 선생의 호는 개기(改企). 주로 기업을 바꿔 놓는다 해서 그리 불렸다. 세간에선 파기(破企)라 낮춰 부르기도 했다. 만지는 회사마다 망치고 깨뜨린다 하여 붙여진 별명이나, 모함일 따름이다.

 선생은 주로 세상이 어려워지면 나타나 힘을 썼다. 이 땅에선 17년 전 외환위기 때가 절정이었다. 대마절대불사로 불리던 5대 재벌의 하나인 대우를 해체했고, 나라 망하기 전엔 끄떡없다던 시중은행 두 개도 칼질했다. 한 번 휘둘러 3년 새 은행원 4만여 명을 퇴출시킨 선생의 ‘인력 감축’ 초식은 지금껏 강호의 전설로 남았다. 은행원 열 중 넷이 직장을 떠났다. 그때 얻은 이름이 피도 눈물도 없다 하여 ‘철혈선생’이나 선생은 개의치 않았다. 어찌 사람을 살리는 일에 비난을 두려워하랴. 선생의 칼질로 환부가 도려내지자 한국 경제의 새살이 돋고 생명이 살아났다. 선생은 “다만 너무 늦어 환자를 살려내지 못할까를 두려워할 뿐”이라며 홀연했다.

 혹자는 선생을 전설의 명의 화타·편작에 빗댔다. 선생의 권능을 진작 알고 영접한 이들은 다 무병장수, 부귀영화를 누렸다. 밖으로는 방송·금융을 팔아치운 GE, 세계 1위 사업부를 분사한 듀폰, 주력 사업까지 정리한 다우케미칼이 있다. 안에선 두산그룹이 유명하다. 창업 99주년을 맞은 1995년 선생의 칼질을 자청했다. 기존 사업을 깡그리 팔고 중후장대로 바꿔 탔다. 덕분에 외환위기의 외풍 앞에 독야청청했다. 요즘 가장 ‘핫한 기업’으로 떠오른 아모레퍼시픽도 선생의 진가를 일찍 깨우친 덕을 봤다. 91년 태평양증권을 시작으로 6년간 9개의 계열사를 정리했다. 외환위기 한파가 정점이던 98년 다른 이들이 추풍낙엽 쓰러질 때 아모레는 15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이때의 실탄과 가벼워진 몸집이 대륙을 감동시킨 ‘K뷰티’ 신화탄생의 밑천이 됐다.

 과거의 영화는 그저 과거일 뿐. 그 후 17년. 칼은 녹슬고 칼집은 낡았다. 이제 와서 다시 선생의 이름을 외치는 이들이 많아졌으나 다 부질없다. 선생의 칼질이 효험 있는 바를 모르는 이 없으되, 그 아픔을 견디기 싫은 게 인지상정이라. 앞에선 선생의 신통력을 팔고 뒤로는 선생 없는 세상을 꿈꾼다. 썩고 문드러질수록 선생의 손길을 거부하기 일쑤라. 요즘 한창 파업 중인 대기업 노조 하는 양을 한번 보자.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삼호중공업의 조선 3사는 어제 공동 파업했다. 올해 사상 최대 적자를 내고 업황은 최악이지만 선생의 칼질은 거부하겠다는 뜻이다. 한칼에 분사·합병·매각까지 자유자재인 선생의 실력을 잘 아는 까닭이다. 다만 선생의 인력감축 초식은 일부 받아들였는데, 시늉내기에 다름 아니다. 생산직은 죄다 빠지고 사무직만 400~1000여 명 포함됐다. 그러니 ‘펜보다 센 용접봉’이란 비아냥이 나오는 것이다.

 선생의 칼질은 비유하자면 정원의 잡초 베기와 같다. 한번 베냈다고 끝이 아니다. 잡초는 시간이 지나면 또 자란다. 한두 번 미루다 보면 온통 잡초밭이 된다. 그땐 날고 긴다는 선생이라도 한칼에 해결할 방법이 없다. 시간도 더 걸리고 고통도 크다. 선생의 칼질이 주기적으로 두고두고 필요한 이유다. 선생의 칼이 잠들어 있던 17년, 세상은 좀비 기업으로 가득 찼다. 한 외국 컨설팅 회사는 국내 상장사의 11%인 170곳이 언제 망해도 이상하지 않은 좀비 기업이라고 진단했다. 미국(7%), 일본(2%)보다 월등히 많은 숫자다.

 어디 좀비 기업뿐이랴. 선생의 칼질이 필요한 곳은 도처에 널렸다. 부채비율이 40%를 넘게 된 나라 살림이 그렇고, 몇 년째 겉도는 노동개혁이 그렇다. 이 정부도 벌써 반환점을 돌았다. 이제야 선생의 이름을 목 놓아 부르기는 하나 진정성이 있는지는 도무지 알 수 없다. 한 나라의 미래는 선생에 대한 대접에 따라 갈린다. 선진국이 된 나라는 다 선생을 알아보고 제때 쓴 결과다. 지금 우리는 선생을 얼마나 대접하고 있나. 내 귀엔 헌 칼집에서 녹슬어가는 선생의 큰 한숨 소리만 들릴 뿐이다.

이정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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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6일자 [중앙시평] 구조조정 선생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