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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리더십의 힘 …아기 공룡, 사자 무서운 줄 모른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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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23면

NC다이노스의 테임즈(오른쪽)가 팀 동료들과 하이파이브를 하고 있다. 2013년 1군에 뛰어든 NC는 김경문 감독의 리더십에 프런트의 지원까지 더해져 올시즌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사진 NC다이노스]

지난 3월 열린 엔씨소프트의 주주총회. 김택진(48) 대표이사 재선임 등의 안건이 원안대로 통과됐다. 그러나 몇몇 주주들은 연 200억원 정도를 쓰는 야구단(NC 다이노스) 운영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김 대표는 “회사의 가치를 재무적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 야구단을 통해 엔씨소프트가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회사 이미지를 바꾸고, 고객층을 넓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스포츠 시장이 크지 않은 한국에선 대기업이 프로야구를 독점해왔다. 정보기술(IT)기업 엔씨소프트가 2011년 야구단을 창단한 건 리스크가 큰 결정으로 보였다. 신생구단 NC는 맨땅에서 시작했다.

빠르게 성장하는 '공룡 군단'NC *2015년 성적은 9월 5일 기준

 NC는 2013년 1군 리그에 진입해 정규시즌 9개 구단 중 7위에 올랐다. 지난해엔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3위)했다. 올해는 한 단계 더 점프하고 있다. 5일 현재 2위(69승2무50패)인 NC는 4년 연속 우승팀 삼성을 맹렬한 기세로 추격 중이다. 불과 세 시즌 만에 NC는 상위권 전력을 갖췄고, 마케팅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스타는 겸양, 무명은 희망으로 '화학결합'NC의 외국인 타자 에릭 테임즈(29)는 지난달 19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말썽을 일으켰다. 1회 삼진을 당한 뒤 불만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은 것이다. 테임즈의 행동이 심상치 않자 김경문(57) NC 감독은 그를 곧바로 교체했다.


 이튿날 김 감독은 “외국인 선수의 어리광을 다 받아줄 순 없다. 선수에게 끌려 다니지 않겠다. 선수 한 명 정도 없어도 이길 수 있는 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테임즈는 박병호(29·넥센)와 타격 전 부문에서 선두를 다투고 있다. 평소 동료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이다. 그러나 김 감독은 작은 균열이 생기는 것도 용납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팀에선 성적이 좋은 외국인 선수는 천방지축이라도 눈감아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김 감독은 테임즈를 이틀 동안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징계를 내렸다. 기량이 뛰어나고, 문화적 차이가 있는 외국인 선수라도 팀을 최우선으로 여겨야 한다는 걸 강조했다. 김 감독이 ‘개인보다 팀이 먼저’라는 뜻인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메시지를 모두에게 밝힌 것이다. 테임즈는 자세를 고쳐 잡고 다시 열심히 뛰고 있다. 5일 현재 타율 1위(0.378), 홈런 2위(41개), 타점 2위(117개)에 올라 있다.


 김 감독에겐 다른 면도 있다. 신인급 선수나 비주전 선수에겐 따뜻하다. 열정을 갖고 노력한다면 웬만한 실수는 눈감아 준다. 땀을 뻘뻘 흘리는 유망주의 손을 꼭 잡고 “수고한다”며 다독인다. 두산 코치 시절에는 젊은 포수들에게 격려 편지를 쓴 적도 있다. 두산 감독이 된 뒤에는 “이 선수가 두산의 4번 타자, 한국야구를 대표할 선수가 될 것”이라고 취재진에게 소개한 적도 있다. 그의 말대로 성장한 선수가 김현수(27·두산)다.


 ‘하나의 팀’을 강조하는 김 감독은 스타 선수에겐 겸양과 희생을 요구하고, 무명 선수에겐 비전과 희망을 준다. 분명한 원칙과 강력한 실행력이 그의 선공후사 리더십을 더욱 선명하게 하고 있다.


 두산 시절 김현수에게 했던 것처럼 김 감독은 NC에서 나성범(26)을 키웠다. 2012년 김 감독의 권유로 투수에서 타자로 전향한 나성범은 지난해 타율 0.329, 홈런 30개를 기록했다. 올스타전에 출전했고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국가대표에 뽑히는 영광도 누렸다.


 김 감독은 스타가 된 나성범을 더 이상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느슨한 플레이가 나오면 바로 교체해 버린다. “나성범은 10~15년 야구를 할 선수다. 여기서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김 감독의 설명이다. 그는 선수를 한국인-외국인, 베테랑-유망주로 구분하지 않는다. 똑같은 유니폼을 입고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동료로 대한다.


 올 시즌 개막 전 NC는 4강 후보로도 꼽히지 못했다. 지난 겨울 선수보강이 없었고, NC의 외국인 보유한도가 4명에서 3명으로 줄어든 탓이었다. 그럼에도 NC 선수들은 계속 성장하고 있다. 아울러 새 얼굴이 끊임없이 등장하고 있다. NC는 이제 몇몇 선수에 의존하지 않는 팀이 됐다.


  온·오프서 팬 확보 …평균 관중 8000명 안착김 감독이 강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건 NC 구단(프런트)의 신뢰와 지원 덕분이다. 이태일 대표를 비롯한 NC 프런트는 신생 구단답지 않은 전문성과 독창성을 갖고 있다. 선수단 경영에 탁월한 김 감독을 NC의 초대 사령탑으로 영입한 것부터 중장기 플랜에 따른 것이었다. NC 구단은 김 감독과의 계약 종료를 1년 앞둔 2013년 말 재계약(3년 총액 17억원)을 먼저 제안했다. ‘김경문 체제’를 굳건히 하면서 감독에게 미리 힘을 실어준 것이다. 감독·프런트가 상호 존중하는 NC의 문화는 양측이 힘겨루기를 하는 다른 구단과 구별되는 점이다.


 NC는 시장이 작은 마산(통합 창원시)에서 뿌리를 내렸다. 롯데 자이언츠의 제2구장에서 “신생팀 창단은 프로야구 품질을 떨어뜨린다”는 기존 구단들의 우려를 이겨내고 NC는 역동적으로 성장했다.


 NC는 지역 야구원로를 초청하고, 특수학교에 야구용품을 지원하는 등 밀착 마케팅을 전개하며 기존의 ‘마산 아재(아저씨)’들을 끌어안았다. NC의 응원캐릭터 ‘단디’(단단히)와 ‘쎄리(때려)’도 시민들의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말 창원시민 500명과 지역 대학생 718명을 대상으로 ‘창원 하면 생각나는 브랜드’를 설문조사한 결과 NC 야구단이 1위(30.8%)에 꼽혔다.


 NC 야구단 페이스북에서 ‘좋아요’를 누른 팬이 11만 명을 돌파했다. 10개 구단 중 가장 많다. 온라인을 통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덕분에 젊은 팬과 여성 팬이 점점 늘고 있다.


 NC의 멋진 야구를 보기 위해 많은 온라인 팬들이 오프라인(야구장)으로 나오고 있다. 구단 역사가 짧은데도 NC의 관중은 경기당 평균 8000명을 오르내리고 있다. 김택진 대표는 2011년 야구단 창단을 선언하며 “게임에 빠져 있는 젊은이들을 탁 트인 그라운드로 데려오겠다. 우리는 게임회사이지만 젊은이들에게 호연지기를 가르쳐주고 싶다”고 말했다. 엔씨소프트의 사회적 가치를 NC 다이노스 구단이 구현하고 있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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