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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사·철 강해야 비즈니스에 필요한 ‘내 이야기’ 만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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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3호 21면

양원석 대표는 “대만은 우리보다 3배, 미국은 우리보다 4.5배 더 많이 책을 읽는다”며 “정부와 출판계가 함께 유통구조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김춘식 기자

출판업은 수출한국의 마지막 프런티어다. ‘출판업은 단군 이래 항상 불황이다’는 말도 있지만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 첨단 산업만 우리의 미래를 책임지는 것은 아니다. 출판업은 재래식이면서도 첨단 산업이다. 톨킨의 『반지의 제왕』은 1억5000만부, 『어린 왕자』는 1억4000만부가 팔렸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알에이치코리아(RHK)의 양원석 대표. 해외 출판계에서는 한국 하면 그를 떠올린다. 그가 1995년 세운 에릭양에이전시(현 EYA)는 1년에 번역돼 나오는 2만 4000종 중에서 4000~5000종 정도를 도맡아한다. 외서 베스트셀러 중 EYA가 차지하는 비중은 70%정도다.


-성공 비결이 무엇인가.“서로 신뢰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 오전에 입금되는 돈은 오후에 해외로 송금했다. 유혹을 떨치기가 힘들었지만 그렇게 했다. 두 번째는 최신 정보를 계속 확보해 끌고 가는 것이다. 10여년 동안 1년 중 출장을 180일 다녔다.”


-한국 출판업의 취약점은.“미국·유럽연합·일본 등지에서는 기획자들이 사회에 맞는 트렌드를 끌고 간다. 한국은 트렌드 만들기 기능이 좀 약하다. 서구형으로 바꾸려면 작가들이 에이전시를 활용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한국 작가들은 원고가 많이 밀려 있다. ‘원고 빚쟁이’ 상태다. 생활고 때문에 여러 출판사와 계약을 맺고 선인세를 받아 그렇게 된 것이다. 악순환을 끊을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하다. 산업 차원에서 관리해야 한다.”


-한국 출판계의 강점이 있다면.“3대 장점이 있다. 첫째, 외국 콘텐트를 한국화하고 재창조하는 능력이 뛰어나다. 둘째, 콘텐트 제작 속도가 빠르다. 물론 이에 따른 약점은 정보 검증을 놓치는 경우가 꽤 있다는 점이다. 재작년에 한국의 아동 교육 만화가 동남아 지역에서 열풍을 일으켰다. 지금은 침체기다. 내용에 검증이 안된 부분이 있다는 의견이 태국·인도네시아 등 현지 편집 과정에서 제기돼 ‘한국책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셋째, 디자인 감각이 뛰어나다. 그래서 한국은 동남아시아·중동·중앙아시아의 콘텐트 기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우리 소설도 경쟁력이 있는지.“개인적으로는 힘들다고 본다. 일단 현지어로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이 많지 않다. 또 번역으로 끝나는 게 아니고 편집자 라인업도 필요하다. 한국 문학은 사회 비판의식이 강하다. 우리 소설은 좀 무겁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전 세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나비가 춤추는 듯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계에서는 일단 등단을 해야 하는 것도 문제다.”


-대만으로 유학 간 이유는.“부친이 만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셨기 때문에 ‘중국을 준비하라’고 항상 강조하셨다. 대만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좋은 선택이었다. 그 때 출판업에 종사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고 당시에는 정치사학 쪽에 관심이 있었다. 무역에도 관심이 있었는데 얼추 비슷하게 됐다. 출판업도 일종의 무역이다. 우연찮게 에이전시 사업을 하는 일본인과 선배를 만나 발을 들여놓게 됐다.”


-문·사·철 전공을 배경으로 최고경영자가 됐는데 경영·관리는 어떻게 배웠는지.“공부보다는 외국 에이전트들, 업계 선배들에게 배웠다. 외국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노력했다. 엇박자도 많이 났다. 1995년에 주5일 근무제를 도입해 토요일에는 쉬었다.”


-문·사·철과 책을 보는 안목은 일치하는가.“문·사·철이 책을 고르는 안목과 직결된다. 그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는 많지 않다.”


-회사 경영에서 어려운 점은.“사람 관리가 가장 어렵다. 일을 배우려면 2~3년, 전문가급은 5년 정도 훈련이 필요한데, 일에 익숙해지면 연봉을 더 받고 다른 회사로 옮긴다. 출판계에서 한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인력은 많지 않다. 또 출판업이 적성에 맞아야 하는데 신입사원들은 책상에서 오래 앉아 있는 것을 힘들어 한다. 한 6개월은 거의 ‘미친다’. 대체적으로 편집·기획자는 외향적인 성격이, 전통적인 편집은 내성적인 성격이 맞는 것 같다.”


-많은 CEO가 우리나라 대학교육에 대한 불만을 이야기 하는데.“출판업의 경우도 대학에서 배운 것은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


-회사의 비전 무엇인가.“한국 콘텐트를 영어 등 현지 언어로 바꿔 수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미국 회사의 자산만 일부 인수했다. 한류 프로그램을 가공해 외국에 수출할 포인트를 찾고 있다. 또 디지털 콘텐트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런닝맨’ ’무한도전’ 등 예능 프로그램이 동남아에서 각광 받고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매개로 자국의 문화를 서로 소개하는 과정에서 수익모델이 창출될 수 있다.”


-해외 진출을 위해 아예 해외에 출판사를 차리면 어떨까.“각국 노동시장의 특징이 다르다. 준비를 많이 해야 한다. 일본의 경우 월 3만~4만 엔 상당의 통근열차 표를 줘야 한다. 유럽 쪽은 더 힘들다. 해외 시장 진출은 머니 게임인데, 스케일이 다르다. 한국에서는 2000부 찍으면 되지만, 미국에 가서 제대로 책을 분배하려면 최소한 6000~7000부는 찍어야 한다. 외국에 출판사를 차려 진출하려면 본국에 상당한 재력이 있지 않으면 힘들다. 기업문화도 다르다. 미국 출판사 직원은 7시에 출근해 3시에 퇴근한다. 선인세 관념도 다르다. 미국의 거대 출판사와 경쟁하는 게 힘들고 틈새시장에서 경쟁한다고 해도 잘할 수 있는 분야가 현재로서는 영어교육·만화책 정도다. 대규모 자본이 형성돼야 한다. 국내에서 연매출 1000억원 규모의 회사가 나오기 전에는 꿈을 꿀 수 없다.”


-출판은 창조경제의 핵심 아이템이 될 수 있지 않나.“공연·영화 등에만 신경 쓰고 있지만, 출판은 사실 창조경제의 근간이다. 출판을 국가에서 주시할 필요가 있다. 책에 부가가치세를 붙이고 그 일부를 출판진흥기금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도 이제는 민중계몽보다는 상업화에 눈을 돌릴 필요가 있다. 유통구조도 개선의 여지가 많다. 해외 수출 도서를 위한 번역료 지원도 필요하다.”


-출판사 사장을 꿈꾸는 중·고등학생이라면 무엇을 준비해야 하나.“모든 직업에 문·사·철 특히 역사 지식이 필요하다. 한국사·세계사 공부를 다양하게 해야 한다. 해외 출장 가서 보면 ‘내 이야기’ ‘우리나라 이야기’가 나와야 한다. 또 영어만으로는 이 세상을 사는 데 충분하지 않다. 중국어는 미래에 대한 투자다. 아직은 일본어가 지식 수용을 위한 통로가 되고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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