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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편집국장 레터] 사이비 민족주의자

중앙선데이

입력

VIP 독자 여러분, 중앙SUNDAY 편집국장 남윤호입니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피습 사건으로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그런데도 칼을 휘두른 김기종은 자신을 마치 의로운 테러리스트처럼 여기는 듯합니다. 과거 주한 일본대사에게도 위해를 가하려 했던 걸 보면 독립운동가로서 무슨 ‘특공의거’라도 했다고 자부하는 모양입니다. 그는 리퍼트 대사를 찌른 뒤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주장했습니다. 그동안 재야에선 한미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하는 시위를 종종 벌였지만,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진 못했습니다. 그런 주장은 도저히 우리 사회의 아젠다로 부상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김기종은 거기서 무력감과 박탈감을 느낀 나머지 이번 사건을 일으켜 한미 군사훈련을 여론화시키려 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북한이 박수 칠 일을 한 것이지요.김기종이 진보(또는 종북) 단체에서 활동했다 해서 이번 사건을 보혁의 진영구도로 확장해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습니다. 극단적인 ‘자칭 민족주의자’가 진보로 분류되는 곳은 아마 대한민국이 유일할 겁니다. 애초에 그를 민족주의라는 카테고리로 분류하는 것부터 거부감을 줍니다. 민족주의자란 민족의 자긍심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이어야 할 텐데, 그는 외려 그 자긍심에 먹칠을 하지 않았습니까. 차라리 사이비 민족주의자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의 범행을 두고 국내 언론은 대부분 ‘테러’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미 국무부는 ‘폭력(violence)’이라고 했고, 주요 외신들은 ‘공격(attack)'이라고 보도했습니다. 물론 언론의 문법은 공식 용어나 학술적 표현과 다릅니다. 다만 처음부터 테러로 당연시하는 것은 이번 사건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포장하는 셈이 되진 않을까, 생각해 봤습니다. 특히 김기종에게 테러리스트라는 명칭은 마치 정의롭지 못한 체제를 공격한 저항자의 명예로운 훈장처럼 곡해될 우려도 있습니다. 테러, 또는 테러리즘이란 말은 워낙 흔하게 아무 데나 관용적으로 쓰이다 보니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깊이 따져볼 여유도 없었습니다. 고강도 폭력행위는 주체, 장소, 이유 불문하고 그냥 테러로 불리곤 하지 않았습니까. terror의 사전적인 의미는 공포입니다. 어원(語源)은 라틴어에서 찾을 수 있는데, 중세엔 진노하는 신 앞에서 피조물인 인간이 느끼는 죽음의 공포를 의미했다고 합니다. 요즘엔 종교적 뉘앙스는 싹 빠졌습니다. 프랑스에선 테러가 대혁명 직후인 1793~94년 자코뱅의 공포정치를 가리키던 고유명사(la Terreur)로 쓰였습니다. 당시 테러는 ‘집권세력이 자신의 적에게 행사하는 공적인 폭력’으로 통했습니다. 그러다 독재자 로베스피에르의 처형 이후 공포정치를 매도하는 말로 반전됐고, 19세기 제국주의 시절엔 피압박 민족이나 저항계급의 행동원리로 통하기도 했습니다. 『테러』(2010)라는 책을 쓴 공진성 조선대 교수는 테러를 이렇게 규정하더군요. ‘공포심을 퍼뜨릴 의도에서 행해지는 폭력’이라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테러는 공포 그 자체가 아니라, 공포심을 만들고 확산시키는 기술이나 행위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또 테러를 전략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테러리즘이라고 합니다. 두려움, 좌절감, 불안감 조성을 통해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는 폭력의 사용을 말하는 것이지요. 테러와 단순 폭력은 어떻게 다를까요. 뉴욕대의 사회학자 후안 코라디는 그 차이를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닌 이들에게 전달되는 메시지의 유무’로 설명합니다. 피해자를 본보기 삼아 ‘장차 너희들도 저렇게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조성함으로써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려는 게 테러라는 것입니다. 테러는 적나라한 폭력 그 자체보다는 ‘공포심의 확산 의도를 깔고 있는 폭력’이라는 뜻이지요. 그럼 김기종은 과연 한미 양국의 국민과 정부를 공포로 몰아넣고, 분명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했습니까. 김기종의 주장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분들은 없습니다. 공포심을 느꼈다는 분도 아직 못 봤습니다. 혐오감을 표하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피해 당사자인 리퍼트는 어땠습니까. 피를 흘리긴 했지만 떨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블로그엔 수많은 격려의 댓글이 붙었습니다. 따라서 이번 사건에 굳이 테러라는 표현을 쓰자면 ‘테러리즘 없는 테러’ 아니면 ‘사이비 테러’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정확한 진상을 파악하려면 수사를 더 해봐야 할 겁니다. 배후세력의 유무, 대공 용의점 등에 수사의 초점이 맞춰진다고 합니다.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친 예단이나 과도한 흥분은 피해야 합니다. 필요 이상의 부산스러운 대응이야말로 김기종과 그 추종자들, 그리고 북한이 원하는 것일 테니까요. 금주 중앙SUNDAY는 전문가의 시점에서 반미의 계보를 짚어보고, 이번 사건의 전개 방향을 분석합니다. 지난주 중앙SUNDAY는 창간 8주년 기획의 첫 번째로 한국의 소프트파워를 대표하는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회장의 창조산업론을 게재했습니다. 이장우 한국경영학회장과의 대담 형식을 빌어 우리 문화산업의 앞날에 대한 비전을 살펴본 기사였습니다. 금주 두 번째 기획엔 경제학도라면 누구나 알 만한 그레고리 맨큐 하버드대 교수가 등장합니다. [관련기사] 큰 스타는 큰 시장서 나온다 중국인의 안방을 두드려라[창간 8주년 기획] 이수만·이장우의 창조산업론 [관련기사] “셀레브리티와 로봇의 시대, SM은 그런 세상을 준비한다” [중앙SUNDAY 창간 8주년 기획] 이수만 회장과 이장우 교수의 창조산업론박근혜 대통령의 중동 순방에 맞춰 SK텔레콤이 5일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에서 사우디텔레콤과 창조경제혁신센터 모델 수출을 위한 협약(MOU)을 체결했습니다. 지난주 중앙SUNDAY가 1면에 보도한 대로지요. 박근혜 정부가 역점 사업으로 추진해 온 창조경제 플랫폼이 처음 해외로 수출된 셈인데, 앞으로 어떤 구체적인 성과를 낼지 지켜보겠습니다. [관련기사] 한국 창조경제센터, 사우디에 첫 ‘수출’ICT 인프라 구축 등 도와 … 박 대통령 중동 순방 맞춰 MOU 체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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