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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北 지뢰에 발목 잘려도 국가가 책임지지 않다니

중앙일보

입력

한반도에는 군사적 긴장감이 상존한다. 정전협정 이후에도 북한은 500여 차례의 무력도발과 40만 건이 넘는 협정 위반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 젊은이들은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마다 않는다. 가족과 국민의 안전과 평화를 지키려 젊음을 희생하며 국가의 아들이 된다. 당연히 국가는 그런 장병들을 자식처럼 아끼고,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그런데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하사를 보면 과연 국가가 이런 책무를 다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그는 지난달 4일 북한군이 매설한 목함지뢰로 중상을 입었다. 그를 구하려던 김정원 하사의 오른쪽 발목도 잘려 나갔다. 두 하사는 국군수도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특히 하 하사는 상태가 심각해 분당 서울대병원으로 옮겨져 오른쪽 무릎 위와 왼쪽 무릎 아래 절단 수술을 받았다.
그 다음부터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입원 31일째인 이달 3일부터 진료비가 청구돼 하 하사가 자비로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원인은 획일적인 규정에 있다. 현행 군인연금법(제30조 5항)은 군인이 민간병원에서 치료받을 경우 진료비 지급기간을 기본 20일, 최대 30일까지로 제한하고 있다. 부상이나 회복 정도에 따라 지급기간을 탄력 적용해야 하는데 일률적으로 30일로 못박은 것이다. 한 달 안에 낫지 않으면 "알아서 치료하라"며 내팽개치는 격이다.

하 하사는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에 48년 만에 첫 희생된 국가의 아들이다. 그 파장은 또 얼마나 컸나. 11년 만의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 서부전선 포격전, 북측의 무력행사 엄포, 그리고 극적인 '8·25 남북 화해'까지. 그런 역사적 사건의 희생자에게 진료비를 스스로 해결하라 하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하 하사는 재활을 포함해 치료기간이 얼마나 더 걸릴지 모르는 상태다.

그 같은 장병이 한둘이겠는가. 지난해 6월 지뢰를 밟아 다친 곽모 중사도 민간병원 진료비 1700만원 중 700만원을, 자주포를 정비하다 다친 김모 중사도 1000만원을 직접 냈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국민들, 특히 젊은층이 분노하고 있다. DMZ를 수색하다 다리가 잘려도 일반 공무원보다도 못한 처우를 해주는 게 국가냐는 것이다. 공무원연급법상 공무원은 공무상 요양비용을 2년치까지 보전해 준다. 오죽하면 장병이 군견(軍犬)보다도 못 하다는 자조가 나오겠는가.
2002년 연평해전서 전사한 윤영하 소령과 박동혁 병장 얘기도 나온다. 당시 두 사람은 전사가 아닌 순직으로 처리돼 윤 소령은 6500만원, 박 병장은 3000만원의 보상을 받았다. 물론 그들이 보상을 바라고 싸운 건 아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기 위해 적과 싸우다 산화한 용사들을 섭섭하게 대우한다면 누가 충성을 하겠는가.

다급해진 국방부가 하 하사에게 예외적으로 진료비를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겠다곤 하나, 임시방편적 조치로는 곤란하다. 국가에 헌신하다 화(禍)를 당한 군인들에겐 최고의 예우를 해줘야 한다. 당장 전사자·부상자에 대한 보상·치료 규정부터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 전장에서 팔·다리를 잃으면 치료비 등을 무제한 대주는 미군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그러라고 국민이 세금을 내는 게 아닌가.

마침 새누리당 한기호 의원이 "치료 기간을 2년 범위로 확대하고 국가가 정당하게 보상해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며 군인연금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국회가 서둘러 통과시키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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