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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뉴스 인 뉴스 <281> 시진핑 주석 핵심 보좌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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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시진핑(習近平) 주석의 집권 1기가 반환점을 돌면서 향후 꾸려질 집권 2기 차세대 지도부에도 관심이 모인다. 사진은 2012년 시진핑 주석 당선 직후 국가박물관을 참관하고 있는 중국 핵심 지도층인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왼쪽부터 장가오리(張高麗) 상무부총리, 류윈산(劉雲山) 중앙서기처 서기,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시진핑 국가주석, 리커창(李克强) 총리, 위정성(兪正聲)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왕치산(王岐山) 중앙기율검사위 서기. [중앙포토]
신경진
국제부문·중국연구소 기자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집권 1기(2012년11월~2017년10월)가 반환점을 돌았다. 집권 2기 지도부 진용은 2017년 가을에 열릴 19차 당대회에서 결정된다. 당대회가 2년 앞으로 다가오면서 시진핑 사단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마오쩌둥(毛澤東)·덩샤오핑(鄧小平)을 잇는 카리스마형 지도자로 불리는 시진핑 주석의 핵심 보좌진을 소개한다.

◆천시(陳希·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60)

시진핑 주석과 칭화(淸華)대 화학공학과 동기동창이다. 기숙사 같은 방 위아래 침대를 사용했다. 1978년 공산당 입당 소개인 2명 중 한 명이 시 주석이었다. 졸업 후에는 칭화대에서 당무를 담당했다. 90년부터 2년간 미국 스탠퍼드대를 방문학자로 다녀왔다. 시 주석이 칭화대 인문사회학원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사상정치 교육 전공으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할 때 많은 도움을 줬다.

천시는 시 주석이 정치국 상무위원에 진입하면서 쾌속 승진을 시작했다. 2008년 11월 교육부 부부장 겸 당부서기로 차관급에 오르면서다. 2010년 10월에는 랴오닝(遼寧)성 부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2011년 5월에는 장관급인 중국과학자협회 당서기를 맡아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덩샤오핑의 딸 덩난(鄧楠)을 밀어낸 인사였다. 2013년 4월 천시는 고위직 인사를 총괄하는 중앙조직부 상무부부장에 임명됐다. 인사권은 권력자의 최대 무기다. 천시는 시 주석의 복심(腹心)이다. 시진핑 사단의 배양·육성·발탁의 임무를 천시가 맡게 된 이유다.

◆리수레이(李書磊·푸젠성 선전부장·51)

 1964년 태어났다. 14세에 베이징대 도서관학과에 입학했다. 21세에 문학석사학위를, 24세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신동(神童)이 별명이다. 88년 중앙당교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시 주석이 2007년 중앙당교 교장을 맡으면서 부교장에 발탁됐다. 이후 시 주석의 당건설 이론 분야의 보좌역과 정치비서 역할을 맡았다. 넓적다리·팔뚝과 같은 충신을 뜻하는 고굉지신(股肱之臣)으로 불린다. 2014년 초 리수레이는 푸젠(福建)성 상무위원 겸 선전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허베이(河北) 칭룽현 부서기, 시안(西安)시 부서기에 이은 세 번째 지방근무다. 발탁을 위한 배려다. 그해 3월 19일 푸젠성 당 기관지인 푸젠일보 1면에 1990년 시진핑이 지은 문학작품이 실렸다. 당(唐)대 명창이었던 염노(念奴)를 기리며 소동파(蘇東坡)가 만든 100자로 된 사문(詞文) 형식이었다. 모범 공산당원 자오위루(焦裕祿, 1922~64)를 추모한 ‘염노교-자오위루를 기리며(念奴嬌·追思焦裕祿)’란 제목의 작품이다. 리수레이는 4월 15일자 1면에 이 작품을 풀이한 ‘진심은 그지없이 오래간다(肝膽長如洗)’는 기명 평론을 실었다. 리수레이가 시진핑을 ‘염노교-쿤룬(昆崙)’이란 작품을 남긴 마오쩌둥과 같은 문학가 지도자 반열에 올린 칼럼이다.

◆딩쉐샹(丁薛祥·시진핑 판공실 주임·53)

 시 주석의 개인 비서실인 당총서기 시진핑 판공실 주임이다. 공산당 당무를 총괄하는 중앙판공청 부주임도 겸임한다. 53세의 차세대 다크호스다. 허베이(河北) 친황다오(秦皇島)시의 동북중형기계학원(현 옌산대·燕山大)을 졸업했다. 졸업 후 상하이재료연구소에 취직했다. 상하이시 과학위원회 부주임으로 정계에 진출했다. 2006년 상하이 조직부 부부장 겸 인사국장에서 시 부비서장 겸 판공청 주임으로 승진했다. 판공청 주임은 당조직의 비서를 말한다. 당 실무를 총괄하는 자리다. 2007년 3월 시진핑은 상하이 당서기에 부임했다. 축출된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당서기의 잔영을 지우는 임무가 맡겨졌다. 17차 당대회를 앞두고 그해 5월 새로운 상하이 상무위원 13명의 진용이 갖춰졌다. 시 주석이 기자회견서 한 명 한 명 소개했다. 딩쉐샹은 이 때 상하이 상무위원회에 새로 진출한 60년대생 젊은 피였다. 10월 위정성(兪正聲)이 상하이 당서기에 임명됐다. 딩쉐샹은 2013년 5월 시 주석이 중앙판공청으로 부를 때까지 위정성 치하의 상하이 당무를 관리했다. 같은해 12월말 칭펑(慶豊)만두집을 시 주석과 단둘이 방문하면서 문고리 권력임을 증명했다. 링지화(令計劃)의 중앙판공청 잔여 세력을 깔끔히 척결했다.

◆중사오쥔(鍾紹軍·중앙군사위 판공청 부주임·47)

 신비의 인물이다. 나이·학력·이력 확실한 것이 없다. 중국 검색포털 바이두(百度)에서 검색되는 뉴스가 전혀 없다. 47세. 이미 10년 이상 시진핑을 가까이서 보좌하고 있다. 저장(浙江)성 조직부 부부장을 지냈다. 시 주석을 따라 상하이 판공청 부주임을 거치며 베이징까지 함께하고 있다. 2002년 16차 당대회 후 시 주석이 저장성 당서기로 승진하면서 중사오쥔과 처음 만났다. 2007년 베이징에 올라온 중사오쥔은 2008년 칭화대 공공관리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았다. 후진타오(胡錦濤) 전 주석의 아들 후하이펑(胡海峰)이 박사 동기다. 2007년 12월 중사오쥔은 시진핑 판공실 주임 겸 중앙판공청 조사연구실 정치조 조장을 맡았다. 2012년 2월 시 주석은 국가부주석 신분으로 미국을 방문했다. 마지막 일정으로 로스앤젤레스에서 LA레이커스와 피닉스 선스의 미국 프로농구(NBA) 관람 자리가 마련됐다. 당시 관람석에 존 바이든 미국 부통령과 함께 앉은 시 주석 앞자리에서 휴대전화로 통화 중인 중사오쥔의 사진이 공개됐다. 2013년 6월 중국중앙방송(CC-TV) 메인뉴스인 신원롄보(新聞聯播)에 주취안(酒泉)위성발사센터를 방문한 시진핑 주석 옆에 대교(大校·대령과 준장사이의 계급) 군복 차림의 중사오쥔이 노출됐다.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판공실 주임 겸 중앙군사위 판공실 부주임을 겸하며 시 주석의 군부내 복심 역할을 수행 중이다.

◆주궈펑(朱國峰·외교담당 비서·42)

  중사오쥔과 마찬가지로 구체적인 정보는 알려지지 않았다. 2013년 4월 보아오(博鰲)포럼 중 시 주석과 줄리아 길라드 호주 총리의 정상회담장에 참석한 것이 거의 유일한 공개활동이었다. 서열을 중시하는 중국에서 당시 장관급과 같은 테이블에 앉았다. 1973년 광둥(廣東) 메이(梅)현에서 태어났다. 중국 인민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당 중앙판공청 비서국의 ‘비서공작’ 잡지사에서 근무했다. 비서국의 국장급 비서 출신이다. 중사오쥔이 직속 상관이다.

◆왕샤오훙(王小洪·베이징 공안국장·57)

 청(淸)대 구문제독(九門提督)이란 관직이 있었다. 베이징성의 아홉 문을 지키는 장수란 뜻이다. 지금은 수도 치안의 최고책임자로 베이징 공안국장을 일컫는다. 왕샤오훙(王小洪) 전 허난(河南)성 공안국장이 지난 3월 26일 베이징 공안국장에 전격적으로 임명됐다. 시 주석이 푸저우(福州)시 당서기였을 때 시 공안국장으로 호흡을 맞췄던 인물이다. 본인도 당일에야 인사 사실을 통보받았다고 시사주간지 ‘환구인물’에 밝혔을 정도로 전격 인사였다. 왕샤오훙은 허난성 공안국장 취임 3개월만인 2013년 11월 186개 룸을 보유한 정저우(鄭州)의 초호화 룸살롱 ‘황실 1호(皇家一號)’를 일망타진한 철완(鐵腕)이다. 당시 경찰 1000명을 동원해 종업원과 고객을 전원 연행해 화제가 됐다. 베이징 부임 이래 매춘 퇴치 작전에 돌입했다. 이미 위법시설 261곳을 적발해 68개 조직과 매춘 혐의자 600여 명을 처벌했다.

◆허이팅(何毅亭·중앙당교 부교장·63)

 시진핑 시대 이데올로기 분야의 핵심 인물이다. 2013년 『시진핑총서기중요연설학습』을 펴냈다. 8779만 당원의 필독서다. 2013년 9월 중앙당교 부교장에 취임했다. 취임 후 당교의 임무를 시 주석 발언을 “잘 번역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그 해 11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중앙 부장(장관)·지방 성장 학습반을 7차례 진행하며 고위직 정신교육을 도맡았다. 시 주석과 같은 산시(陝西)성이 고향이다. 베이징사범대 사학과를 졸업했다. 중앙판공청과 중앙정책연구실을 거쳤다. “항상 배우고, 항상 새로워지고, 항상 적용하며, 항상 혁신할 것(常學常新常用常新)”을 강조한다. 독실한 사회주의자로 마르크시즘을 신봉한다. 시 주석이 취임 후 당의 순결성을 강조하는 바탕에 허이팅이 있다. 왕후닝(王<6EEC>寧) 중앙정책연구실 주임의 뒤를 이을 이론가로 알려진다.

◆리시(李希·랴오닝 당서기·59)

 리시(李希) 랴오닝 당서기는 19기 정치국 진입이 유력하다. 간쑤(甘肅)성 량당(兩當)현 출신이다. 문화혁명 기간 고향에서 지식청년 활동을 거쳐, 란저우(蘭州) 서북사범학원에서 중문학을 전공했다. 간쑤성 선전부 비서처 간사 등으로 경력을 쌓았다. 2004년 산시성 당위원회 비서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옌안(延安)시 당서기를 지냈다. 칭화대 MBA 과정도 수료했다. 2011년 리시는 상하이 조직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2014년 랴오닝 성장을 거쳐 곧 당서기로 승진했다. 시진핑의 3대 이너서클인 비서방·산시방(陝西幇)·칭화방을 아우르는 인물이다.

◆19기 상무위원·정치국 인사

 시진핑 주석은 올해 인사 관련 두 가지 주요 지침을 내렸다. 첫째는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베이징서 열린 중앙통일전선공작회의다. 시 주석은 해외 유학파, 신매체 대표급 인물, 민간 기업가 세 그룹을 배양·선발·임용할 것을 지시했다. 엘리트 인사 풀을 넓히겠다는 의지 표시다. 둘째는 지난 6월 정치국 회의에서 밝힌 능상능하(能上能下) 규정 신설이다. 퇴직 연령에 이르지 않은 고위 인사도 직위를 박탈할 수 있고 파격 박탈도 가능한 길을 연 조치다. 두 조치는 19차 당대회 리더십 구성을 보다 역동적으로 바꿨다. 인사 규모가 커졌고 예측은 힘들어졌다.

 중국 리더십 연구의 권위자 리청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선임펠로는 최근 ‘차이나리더십모니터’에 발표한 논문에서 19기 정치국 상무위원 후보그룹으로 리잔수(栗戰書) 중앙판공청 주임, 자오러지(趙樂際) 중앙조직부장, 한정(韓正) 상하이 당서기를 꼽았다. 차기 정치국원에는 천시, 황쿤밍(黃坤明) 중앙선전부 부부장, 류허(劉鶴) 중앙재경영도소조 판공실 주임, 허리펑(何立峰) 국가발전개혁위원회 부주임, 장유샤(張又俠) 인민해방군 총장비부장, 차이잉팅(蔡英挺) 난징군구 사령원, 딩쉐샹, 리시, 허이팅의 진입이 유력하다고 예측했다.

자료 : Cheng Li, Xi Jinping’s Inner Circle(Part 5: The Mishu Cluster II), China Leadership Monitor, no.47(2015); 唐楚元·相江宇, 『習近平新軍』, 明鏡出版社,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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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국제부문·중국연구소 기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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