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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부어라, 마셔라 음주문화 더 이상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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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임재희
원광대 경영대 교수

지난해 정부는 국민건강 증진을 명분으로 담뱃세를 인상했다. 올 상반기에 소비자에게 실제 판매된 담배는 지난해보다 28.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초 정부가 기대한 34%에는 못 미치지만 상당한 성과다. 그런데 정부는 담배는 끊고 술은 권장하는 모양새다. 정부가 정말 국민 건강을 생각했다면 담뱃세 인상으로 뽑은 칼날을 주세법 개혁에도 휘둘러야 한다.

 술(20조원)은 담배(10조원)보다 사회·경제적 비용이 더 크다. 우리나라의 관대한 술 문화로 인해 고위험 음주 경험자 비율도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한국인은 연간 1인당 8.9L의 알코올을 마신다. 360mL 용량의 소주로 치면 123.6병에 해당하는 양이다. 성폭력·가정폭력 범죄로 검거된 10명 가운데 7명은 음주 상태다. 음주운전으로 매년 1000여 명의 사망자와 5만여 명의 부상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로 인한 사회적 손실비용은 6460억원이다. 이렇게 연간 20조원이 직·간접적으로 허무하게 소요되고 있다.

 암담한 음주 문화의 현주소를 놓고 무절제한 음주 습관을 가졌다고 국민들만 나무랄 수 없다. ‘왜 무절제한 음주 습관이 발생할 수 있는가’에 의문을 가져야 한다. 우리나라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음주 정책에 대해 통합지표를 개발해 비교한 결과 34개 국가 중 22위에 머물렀다고 한다. 음주 정책의 전반에 개선이 필요함을 말해 주는 성적이다.

 전통주를 제외한 국산 술 가격은 절반 이상이 세금이다. 특히 서민 술의 상징인 희석식 소주 출고가격 961원 중 세금은 52%가 넘는 508원이다. 주세는 소매가격에 포함돼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우리나라 주세법은 원료와 포장재료비 등의 제조원가는 물론 광고·영업비용·인건비 등의 판매관리비가 모두 포함된 판매원가를 과세표준으로 주세를 부과하는 종가세제다. 반면에 미국과 유럽연합(EU)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는 알코올 도수와 생산량에 따라 주세를 부과하는 종량세제를 채택하고 있다.

 맥주와 희석식 소주를 생산하는 독과점 기업은 가격에 세금이 붙는 종가세제 때문에 저가의 원료를 사용해 낮은 제조원가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 이들의 병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즉 국민들은 종가세라는 세금체제에 갇혀 저급한 원료로 만들어져 늘 똑같은 병에 담긴 ‘서민주’를 마신다. 전 세계에서 우리나라만큼 자국 술의 가격이 싼 국가도 없다. 저렴한 가격은 주류에 대한 장벽을 낮추어 ‘부어라, 마셔라’ 음주문화를 가져왔다. 우리 술이 흥청망청 마시고 취하는 술이 돼버린 것이다.

 이제라도 가격을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가세 대신 알코올 도수를 기준으로 과세하는 종량세를 도입해야 한다. 먹는 양은 줄이고 품질은 높여야 하는데 종가세를 하다 보니 품질은 떨어지고 음주량은 많아지도록 과세 구조가 돼 있다. 만일 종량세로 전환된다면 저도주에는 저세율을, 고도주에는 고세율을 매겨 기존보다 ‘서민주’의 가격이 다소 올라간다. 이를 놓고 일부에서는 서민들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세법 개정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주머니 속에 1만원을 가진 소비자가 자신이 가진 금액만큼 술을 마신다고 가정했을 때 기존에 5병을 마시는 것이 가능했다면, 종량세로 바뀌었을 경우 2~3병 정도만 마실 수 있게 되는 것이다. 1~2병의 차이가 서민 경제를 뒤흔들지 않는다. 또한 1~2병을 덜 마시게 되고 절제함으로써 국민의 주량은 줄어들고 과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비로소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건강에 좋을 리 없는 저가의 원료로 만든 술을 서민들이 즐겨 마신다고 방치해 두는 것과, 조금이라도 덜 마시도록 하고 ‘서민주’의 품질을 올리기 위해 제도를 고쳐 보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국민을 위한 길인가.

 종량세 전환으로 인한 ‘서민주’ 가격 상승에 대한 우려는 근시안적이다. 주세로 거둬들이는 세금이 연 3조원가량 된다. 이에 반해 과음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은 연 20조원에 달한다. 이토록 명확한 명분이 있는 주세 개혁을 놓고 공무원들은 당장 손에 걷히는 세금만 생각하고 정치인들은 표만을 의식해 망설이고 있다.

 일제 통치로부터 벗어난 지 70년이 지났는데도 일제가 식민지 재정 조달을 위해 만든 주세법의 골격이 지금까지 유지돼 국민의 과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통탄할 일이다. 과음으로 인한 폐단에 비춰보면 현 주세법은 일제가 시행했던 주세법보다 더 고약한 제도다. 일본은 이미 오래전에 주세법을 종량세로 바꾸어 사케와 쇼추(일본식 소주)의 세계화를 추진하고 있다.

 종량세로 전환되면 필연적으로 술의 품질 경쟁이 발생하고 이는 주류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지게 된다. 전 세계 주류시장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일본과 중국은 이미 앞서 나가고 있다. 우리도 열심히 뛰어야 한다. 서민들이 저급한 술로 건강을 해치며 애환을 달래는 것이 아니라 좋은 품질의 술을 적당히 즐기며 건전하게 스트레스를 푸는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임재희 원광대 경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