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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 감세 소리 들을 만한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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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

선물을 안겨도 입 나오는 사람은 있기 마련이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면 그렇다. 최근 정부의 자동차 개별소비세 인하를 두고서도 고운 소리만 나온 것은 아니었다. 김모(33)씨는 내년 초 쏘나타를 사려다 세금 인하 소식에 올해 안에 사기로 마음을 바꿨다. 김씨는 분명히 혜택을 봤는데도 불만이다.

 “수입차는 200만원 가까이 할인해준다는데 국산차는 수십만원 할인해 주는 게 고작이라니 아쉽네요. ‘부자 감세’가 이런 것 아닙니까.”

 실제 그런지 따져봤다. 메르세데스-벤츠는 마이바흐 S600 440만원, E220 블루텍 아방가르드 80만원을 각각 내렸다. BMW는 760Li 190만원, 520d 60만원을 인하했다. 렉서스도 플래그십 세단인 LS600h 모델 가격을 200만원 깎았다.

 국산차는 상대적으로 인하 폭이 작았다. 현대차는 제네시스 3.8 111만원, 그랜저 3.0 61만원, 쏘나타 2.0 47만원, 아반떼 32만원을 내렸다. 르노삼성차도 SM7 RE35 69만원, SM5 2.0 LE 50만원, SM3 PE 29만원을 인하했다. 인터넷 자동차 카페에선 수입차 업체에 대한 국산차 ‘역차별’ 주장까지 나온다.

 이렇게 된 것은 정부가 승용차값 대비 개소세를 30% 일률 감면했기 때문이다. 판매가격이 비싸면 세금 감면 혜택이 커지는 식이다. 자동차세는 배기가스량에 따라 매기면서 개소세는 배기가스량과 무관하게 일률적으로 낮췄다. 국산차에 비해 수입차·중대형차의 감면 혜택이 커진 이유다.

 세금은 늘릴 때건, 깎을 때건 세심하게 배려해야 한다. 정부가 개소세를 인하하며 기대한 건 ‘소비 진작’ 효과였다. 진짜 소비를 확 끌어올리려 했다면 가격에 덜 민감한 고소득층이 값비싼 수입 대형차를 살 때 내야 할 개소세보다 한 푼에 민감한 서민이 국산 경차·소형차를 살 때 내야 할 개소세를 확 깎아주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세수 부족까지 감수하면서 세금을 깎아주겠다고 나선 정부가 ‘부자 감세’ 소리를 듣는 게 아쉬워서 하는 얘기다.

김기환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