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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무 정당 된 제1야당 …‘ 경제+안보’ 앞세워 반전 모색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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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호 11면

“내일 한명숙 총리가 수감됩니다. 하지만 국민정서상 당 대표인 제가 (현장에) 나가는 게 부적절하다는 여론이 있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남북 고위급 접촉이 한창이던 지난 23일 오후에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 상황점검회의. 취재진이 ‘스케치’(사진촬영)를 마치고 빠져나간 뒤 비공개 회의석상에서 문재인 대표가 꺼낸 말이다. 몇몇 의원들까지 “대표가 현장에 나가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거들었다. 당초 이 회의는 북한 포격 도발에 따른 한반도 긴장 고조와 판문점 고위급 접촉에 대한 상황점검이라는 간판을 걸고 열렸다. 하지만 남북대화 추진상황에 대한 변변한 정보가 없다 보니 대신 한명숙 의원의 구치소 수감을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만 이어졌다. 당 관계자는 “정보가 없으니까 논의할 것도 없었는데 회의를 왜 열었나 싶었다”고 말했다. 당 안팎으로 심란한 새정치연합의 모습이 여실히 드러난 현장이었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이 흔들리고 있다. 반복되는 계파 갈등으로 상호 신뢰가 사라진 지 오래고 도덕성은 물론 정국 주도력마저 사라졌다는 평가다. 소속 의원들의 잇따른 구속과 갑질 논란으로 여당보다 우월하다고 여겨졌던 도덕성이 땅바닥으로 떨어진 데다 최근 남북 간 군사적 대치와 대화 정국에서도 ‘햇볕정책’을 주도했던 정당으로서의 존재감도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집안 단속 문제가 이미 불거진 지 오래다. 4·29 재·보궐선거에서 새정치연합의 텃밭 광주를 차지한 천정배 의원이 신당 깃발을 들어 올리면서 당 안팎이 흔들리고 있다.


민주화운동 때와 지금은 상황 달라 도덕성 문제는 여야를 막론하고 제기되지만, 상대적으로 야당에는 기대수준이 더 높은 만큼 실망감도 더 크다. 이런 현상은 결국 ‘여당이나 야당이나 똑같다’는 정치 불신의 원인이 되고 있다.  박기춘 새정치연합 의원에 이어 한명숙 의원까지 전직 국무총리 최초로 수감됐고 윤후덕 의원은 한상범 LG디스플레이 사장에게 딸의 취업 청탁을 한 것이 논란이 됐다. 과잉처벌 논란도 있었지만 “공안탄압”이란 야당의 호소가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도 예전과 달라진 상황이다. 이철희 두문전략정치연구소장은 “야당만 특별히 도덕성이 떨어진다고 볼 수는 없지만 ‘야당 탄압’이란 반민주시대에 통용되던 철 지난 논리를 지금 같은 시대에 주장하는 것으론 국민들의 공감을 얻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번 남북 위기와 대화 국면에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것도 새정치연합으로선 뼈아픈 대목이다. 과거 김대중 정부에서 대북정책에 참여했던 한 야당 고위 인사는 “정권을 잡았을 때 당시 가동됐던 대북 채널도 다 없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처지를 반영하듯이 한국갤럽이 28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근혜 대통령은 남북대화 성과로 지지율이 전주 대비 15%포인트나 오른 49%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 반면 새정치연합 당 지지율은 오히려 소폭 하락했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야당이 남북 문제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없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도발과 대화를 오가는 상황 속에서 어떤 시점에 어떤 의제를 내놓을지에 대해선 실패했다”고 규정했다.  고질적인 계파 갈등도 문제다. 당내에서 상호간 신뢰가 사라지고 ‘한솥밥’을 먹었던 식구들마저 이미 신당의 깃발을 들어 올렸다. 천정배 의원은 다음달 초에는 신당 추진 로드맵을 공식 발표한다는 방침이며, 정동영 의원도 측근 인사들과 전주에서 재기를 모색하고 있다. 당내에서는 신당의 파괴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지만 호남 의원들에게는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현재 잠시 봉합된 양상인 친노-비노 간 계파 갈등은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비노계의 한 핵심 인사는 “혁신위가 활동을 마무리할 때쯤 목소리를 내려 한다”고 말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당내에 친노나 문 대표에 대한 불신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형준 교수는 “혁신위가 활동을 마무리하고 20% 컷오프 문제가 본격화되면 야당이 분당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반재벌 이미지 불식 나선 문재인 이 같은 위기 속에서 정권 교체의 가늠자가 될 총선은 이제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문 대표는 ‘총선 승리’를 기치로 내세워 당 대표에 당선된 만큼 일찌감치 총선 준비에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야당이 새누리당에 비해 열세에 있던 ‘경제’와 ‘안보’ 분야에서 경쟁력을 키워 유능한 수권정당의 면모를 과시한다는 복안이다. ‘정권심판론’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문 대표가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경제’다. 취임 초 정립한 당 기조도 ‘유능한 경제정당’이었다. 이에 따라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를 구성해 중장기적 총선·대선 공약 준비에 돌입했다. 특히 ‘반재벌’ 이미지를 불식시키기 위해 대기업 정책에 변화를 도모하는 게 눈에 띄는 대목이다. 강희용 당 부대변인은 “당이 그동안 재벌 개혁을 강력하게 주장해 왔지만 세계적 추세에 맞춰 기업 규제를 어느 정도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도 매주 경제분야 전문가를 섭외해 강연과 토론을 하는 경제정책심화과정을 꾸준히 진행하고 있다.  ‘안보’ 행보도 돋보인다. 문 대표는 지난 16일 8·15 광복 70주년을 맞아 경제통일을 핵심으로 하는 ‘한반도 신경제지도’를 제시했다. ‘안보’ 이슈에 ‘평화’와 ‘경제’를 결부시켜 새누리당 정권과 차별화를 도모한 것이다. 문 대표는 26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우리의 안보는 그저 평화를 지키는 안보가 아니라 적극적으로 평화를 만들면서 경제 활로를 개척하는 안보라는 점에서 새누리당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이를 현실화하기 위한 외교 보폭도 커지고 있다. 문 대표는 26일 추궈훙 중국 대사와 마크 리퍼트 미국 대사를 잇따라 면담하는 등 외교·안보 관련 일정만 5개를 소화했다. 오는 10월에는 취임 후 처음으로 중국을 방문한다.  당내 주요 인사들도 총결집했다. 인지도가 높은 의원들을 앞세워 각종 국면에서 존재감을 부각시키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세균 의원이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 공동위원장으로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고, 안철수 의원은 국가정보원 해킹의혹 정국에서 국민정보지키기 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섰다. 박지원 의원은 남북 대치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안전보장 특별위원장을 맡았고, 박영선 의원이 롯데 사태를 기점으로 재벌개혁특위를 맡아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개혁에 맞불을 놨다.  이를 놓고 정책 초점을 상실한 보여주기식 조치라는 비판도 제기된다. 사공만 많았지 정작 야당이 할 일을 제대로 하고 있느냐는 지적이다. 경제정당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유능한 경제정당위원회는 반재벌 이미지를 바꿔보겠다고 만든 것인데, 갑자기 재벌개혁특위를 만든다고 하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모 위원장의 보좌관은 “당 위원회는 ‘이슈’를 제기한다는 측면에서 출범 자체만으로 의미를 갖지만 실상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 새정치연합은 내부적으로는 혁신위가 내놓은 혁신안을 바탕으로 공천을 둘러싼 잡음을 최소화하고, 외부적으론 ‘유권자 의식조사’를 통한 정책 우선순위 선정 작업에 착수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관련, 민주정책연구원은 다음달 1일 고위전략회의에서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고할 예정이다. 최재성 총무본부장은 “혁신위가 제안한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를 토대로 9월 중에 더 구체적인 공천 혁신안을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민병두 민주정책연구원장은 “유권자 의식조사 결과가 나오면 경제민주화를 포함해 복지, 남북관계 등 각 분야에 대해 유권자들이 갖고 있는 생각과 요구를 반영한 정책 공약과 전략을 수립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추인영 기자 chu.i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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