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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속으로] 소록도, 그 곳에서 5억원 주무르는 자치회장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전남 고흥군 소록도는 한센병 환자(한센인)들의 애환이 서린 섬입니다. 지금도 한센인 120여 명이 국립 소록도병원에서, 440여 명은 소록도 내부에 있는 병원 밖 주택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소록도에서 최근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이른바 ‘가짜 환자’논란입니다. 약 10명이 위조된 한센병앓이 증명서(병력지)를 근거로 소록도에 들어왔다는 겁니다. 실제로 소록도병원이 조사하고 경찰이 수사해 병력지가 위조된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2010년 1월 이후에 들어온 230여 명의 기록을 뒤져 가짜 병력지를 찾아냈습니다.

3, 4년 전 ‘원생자치회’란 단체의 간부 권모(47)씨가 서류를 꾸몄다는 게 병원과 경찰 판단입니다. 원래 병력지는 질병관리본부로부터 위탁을 받아‘한국한센복지협회’라는 민간단체가 발급하게 돼 있습니다. 병원 측은 후속 조치로 병력지를 꾸민 권씨와 당시 자치회장 김모(64)씨, 그리고 그 다음 자치회장인 안모(74)씨 등을 소록도 밖으로 쫓아냈습니다. 경찰은 가짜 문서를 만들어 사용한 혐의(사문서 위조 및 행사)로 이들을 사법처리하기로 했습니다.

사법처리 대상은 또 있습니다. 자치회 간부에게 가짜 병력지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해 소록도에 들어온 이들입니다. 경찰에 따르면 이들이 아주 ‘가짜 환자’는 아닌 것 같다고 합니다. 조사 결과 한 때 한센병을 앓았을 가능성이 높답니다. 친척 등에 한센병 환자가 있었습니다. 소록도엔 이렇게 한 때 한센병을 앓았다가 완치된 ‘과거 환자’들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하지만 증상이 없어 병력지를 정식으로 발급받기는 어렵습니다. 그래서 자치회에 부탁해 가짜 문서를 꾸몄다는 게 경찰 추정입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소록도에 들어오려고 했을까요. 생활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소록도에서는 집과 먹을 게 공급됩니다. 쌀과 함께 한 달에 1인당 닭고기 1마리, 돼지고기 1㎏, 쇠고기 500g, 생선 1㎏ 등을 받습니다. 생활비와 의류비 명목으로 연간 50만원 남짓한 돈도 받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사실 평범한 사건입니다. 한센병 완치 환자가 생활이 힘들어지자 서류를 꾸며 소록도에 온 겁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정작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가짜 환자’ 논란이 왜 빚어졌는 지입니다.

시점은 ‘원생자치회장’ 선거를 앞두고 였습니다. 당시 회장인 안씨와 전 회장 김씨의 출마가 유력했습니다. 그런 가운데 안씨 측이 “김씨가 회장일 때 일어난 일”이라며 병력지 위조를 폭로했습니다. 근거 없는 마타도어는 아니었습니다만, 자치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졌던 힘겨룸이었던 겁니다.

그렇게까지 자치회장이 되려고 했던 이유는 나름 막강한 자리여서입니다. 원생자치회는 환자의 입ㆍ퇴원 관리, 주거 지역 질서 유지, 공원 관리 등을 합니다. 회장은 웬만한 시장ㆍ군수 부럽지 않을 정도로 집기가 말끔히 갖춰진 사무실이 있습니다. 회장이 가진 가장 큰 권한은 원생자치회에서 일하는 조무원ㆍ보조원 120여 명을 임명하고 해임하는 권한입니다. 원칙적으론 회장이 추천하고 병원이 최종 결정하는 식이지만, 실제로는 회장이 뜻대로 임명된다고 합니다. 임명되면 매달 32만원가량을 받습니다. 이렇게 회장이 좌지우지하는 인건비 규모가 연간 4억7600만원에 달합니다.

그게 전부가 아닙니다. 회장은 외부에서 들어오는 후원금과 후원물품을 직접 관리합니다. 한 해 얼마나 많은 후원금과 물품이 들어오는지는 회장 말고 아무도 모릅니다. 병원이 여기까지 손을 대면 자치회가 불쾌해 할 수 있어 병원 측은 후원자를 자치회와 연결만 시켜주고 있답니다.

이런 권한을 가진 자치회장 차기 자리를 놓고 현임과 전임 회장이 맞붙은 과정에서 드러난 게 가짜 병력지입니다. 그 결과로 두 회장 모두 쫓겨났습니다. 병원 측은 또 2년씩 두 차례에 걸쳐 할 수 있던 회장 임기를 ‘2년 단임’으로 바꿨습니다.

회장 자리를 놓고 벌어진 싸움은 소록도에서 지내는 일반 한센인들 가슴도 멍들게 했습니다. 소록도에서 만난 한 환자는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대부분은 가족과도 생이별을 하는 등 가슴에 큰 상처를 갖고 있습니다. 원생자치회 일부 간부들의 행태가 소록도 한센병 환자 전체의 모습인 것처럼 비춰진다면, 여전히 외부의 불편한 시선을 피해 지내는 우린 또다시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을 겁니다.”

소록도=김호 기자 kim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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