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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 공동선언 3주년] 봇물 터진 교류 … 北核에 막힐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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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라는 구절로 시작하는 6.15 공동선언은 지난 3년간 남북 당국 간의 대화와 경제협력.민간교류의 지침서가 됐다.

그렇지만 이행 과정에서 당국대화가 일시적으로 단절되는 난관도 있었고, 북핵 문제 등 걸림돌도 가로놓여 있다. 남북 정상회담 3주년을 맞아 남북관계를 점검한다.

◆봇물 이룬 남북 교류.협력=14일 남북한은 경의선과 동해선의 철도 궤도를 연결하는 행사를 갖는다. 반세기 동안 끊겼던 우리 민족의 철도망이 비무장지대와 군사분계선을 관통해 다시 이어지는 것이다.

물론 분계선의 철도 연결이 당장 상호왕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징적 의미는 적지 않다. 모두가 지뢰 제거와 비무장지대 내 공동관리구역 설정 등 군사당국간의 협의를 거친 산물이다.

지난 3년간 남북한은 정상회담을 시작으로 모두 77차례의 다양한 차원의 당국대화를 치렀다. 장관급 회담만 10회가 이어졌고, 굵직한 합의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실무접촉과 분야별 회담이 뒤를 이었다.

2000년 처음으로 4억달러대에 진입한 남북교역 규모는 지난해 6억4천만달러 수준으로 급증했으며, 위탁가공 교역을 포함해 총 4백32개 업체가 5백68개 품목을 취급하고 있다는 게 통일부의 집계다.

이산가족들도 2000년 8월 첫 상봉을 시작으로 지난 2월 6차 방문단 행사에 이르기까지 모두 6천2백10명(동반가족 포함)이 감격어린 재회의 기쁨을 맛보았다.

지난 4월 발생한 중증 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때문에 일시 중단상태이기는 하지만 1998년 11월 첫 출항 이후 해로와 육로로 모두 31만8천여명이 금강산을 다녀왔다.

남북간 인적교류는 금강산 관광객을 빼고도 10배 이상 늘었다. 주로 제3국에서 이뤄지던 민간교류도 서울.평양과 금강산으로 무대를 옮겼고, 지난해 부산 아시안게임 때는 북측이 대규모 여성 응원단을 파견해 민간화해 사절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최대 복병은 북핵=북한도 변화의 모습을 보였다. '은둔에서 해방됐다'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말처럼 북한은 당국대화와 교류.협력에 적극 나섰다.

클린턴 정부 시절에는 조명록 특사를 워싱턴에 파견했고, 지난해는 북.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유럽연합(EU)국가를 주축으로 서방세계와의 관계개선도 꾀했다. 지난해 7월 내부 경제개혁 조치인 '경제관리개선'을 시행했고, 신의주 특구와 함께 금강산.개성특구도 내놓았다.

그러나 핵개발에 대한 북한의 집착은 이런 긍정적 조치의 의미를 퇴색시켰다. 한.미.일 3국을 비롯한 한반도 주변국들은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강조하고 있지만 북한의 불안한 행보는 6.15 공동선언 이행의 전도를 위협하고 있다.

◆김정일 답방약속은=6.15공동선언의 끄트머리에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과 관련해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고 돼 있다.

김대중 대통령도 재임 중 金위원장에게 답방 약속을 지킬 것을 수차례 촉구했지만 뚜렷한 답은 듣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 정부는 金위원장의 서울방문과 2차 남북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핵문제와 북.미 관계 등이 풀리지 않는 상황에서 답방 성사는 무리라는 판단에서다.

정부 당국자와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도 金위원장의 서울행을 위해서는 6.15 공동선언이 상당한 수준으로 이행되는 등 진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부담을 느끼고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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