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앞에서 냉정 잃은 문재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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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수감된 한명숙 전 국무총리를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검토해 보자고 제안해 논란이 일고 있다.

문 대표는 26일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전 총리에 대해 재심 청구가 가능한지, (추징금을 대신 내줄) 모금이 가능한지 검토해보자”고 말했다. 사실상 당 차원에서 ‘한명숙 구하기'에 나서자는 뜻이었다.

수감된 한 전 총리는 중소건설사 대표로부터 받았다는 8억8000만원을 추징금으로 내야한다.

하지만 문 대표의 생각은 내부에서 제동이 걸렸다. 최고위원들의 반대에 부딪쳤을 뿐 아니라 한 전 총리 변호인단도 원치 않았다.

26일 한 전 총리 변호인단 회의에선 “추징금을 내면 돈을 받은 사실을 시인하게 되는 것이라 추징금 납부를 거부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변호인단은 또 “재심을 하려면 우리가 새로운 증거를 찾아 검찰측 증인을 고소해야 하는데, 대법원 판결이 난 상황에서 검찰이 기소할 가능성이 없다. 재심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모금운동이나 재심청구는 없던 일이 됐지만 새누리당 김영우 수석대변인은 27일 브리핑에서 "법원에서 판결한 추징금을 모금한다면, 그것은 법의 기본 목적과 법원의 판결을 정면으로 뒤집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건설업자로부터 받은 불법자금을 그냥 이득으로 보장해주고 보호해주자는 건 법질서 파괴행위"라고도 했다. 그는 재심청구 검토 지시에 대해서도 "법은 만인 앞에 평등해야 한다. 대법원 판결까지 5년 1개월이나 걸린 사법절차도 문제지만 법원의 판결을 뒤집어 보겠다는 생각은 분명히 잘못된 정치적 행위"라고 지적했다.

당내에서도 “법조인 출신으로 침착하던 문 대표가 한 전 총리 문제엔 냉정을 잃고 있다”는 말이 나왔다. 문 대표는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난 20일 '신공안탄압저지 대책위원회’ 긴급회의에 한 전 총리를 참석시킨 가운데 “우리는 굴하지 않고 국민과 함께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말했다. 21일엔 긴급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표는 “도둑이 안마당에 들어와 있는데 집안싸움을 벌이면 이웃도 고개를 돌린다. 어느때보다 당의 단합과 실천이 절실하다”며 대법원 판결에 대한 당의 공동대응을 요구했다.

그러나 반응은 차가웠다. 의총에 참석했던 한 중진 의원은 “1억원짜리 수표가 한 전 총리 동생에게 건네졌고, 2억원을 한 전 총리 측이 되돌려준 사실까지 드러났는데 어떻게 공안탄압으로 몰고가느냐”고 되물었다. 또 다른 재선 의원은 “친노의 ‘대모’격인 한 전 총리 문제라 문 대표가 오버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 중진의원은 "또 다시 우리 스스로 국민의 뜻과 반대로 가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강태화·위문희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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