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한 화요일] 무한확장, 기업들의 뇌 비즈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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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어른 주먹 2개 크기에 무게는 1.4㎏, 하루 약 450㎉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우리 몸의 기관. 바로 뇌(腦)다. 이런 뇌를 연구하고 그 성과를 사업화하는 ‘뇌 비즈니스’가 활발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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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8일 고려대 뇌공학과 이성환 교수팀은 뇌 신호로 움직이는 ‘하지 외골격 로봇제어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걸어 다닐 수 없는 하반신 마비 환자들이 시선 조절만으로 자유롭게 보행할 수 있도록 돕는 국내 최초의 뇌파 시스템 제어 기술이다.

고려대 이성환 교수팀이 개발한 생각으로 움직이는 로봇을 한 연구원이 시연하고 있다. 5개 전구에 이동 방향을 입력해 전구를 바라보는 것으로 보행할 수 있다. [사진 고려대]

 이 교수는 “예컨대 사람이 11㎐(헤르츠)로 반짝이는 시각시설을 보면 사람의 뇌 뒷부분의 후두엽에서 이에 반응하는 신호가 발생하는데 이를 활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하반신에 로봇을 착용한 사람의 눈높이에 발광다이오드(LED) 전구 5개를 좌·우·위·아래·가운데에 둔 제어판을 설치했다. 각각의 LED는 뇌파의 명령에 따라 로봇을 작동하도록 했다. 가령 ‘왼쪽으로 이동하라’는 명령이 입력된 왼쪽 전구를 사용자가 바라보기만 하면 뇌파를 인지한 로봇이 왼쪽 방향으로 움직이는 방식이다.

 이 교수는 “뇌 연구로 밝혀진 것을 정보통신과 같은 공학기술을 활용해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시도가 국내에도 최근 10년 새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운전 중 갑자기 멈춰서야 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을 때를 대비한 자동 브레이크 시스템도 그런 것 중 하나다. 사람의 눈으로 상황을 판단해 발로 브레이크를 밟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도록 도로 위 주행 상황에서의 사람의 인지 반응과 뇌 활동으로 브레이크를 제어하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타이어가 시연회를 연 ‘생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도 대표적인 뇌 비즈니스의 산물이다. 한국타이어는 2011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출범한 뇌파분석기술 전문회사인 ‘이모티브’의 기술을 사용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뇌파에 반응할 수 있도록 각각의 타이어에 엔진과 제어장치를 연결해 미래형 타이어의 일환으로 대중에게 선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모티브는 뇌파 분석이 가능한 헤드셋도 판매하고 있다. ‘이모티브 EPOC 뉴로헤드셋’으로 불리는 이 제품은 뇌파를 감지하는 14개 센서를 부착해 개인별로 집중력은 물론 스트레스를 측정할 수 있으며 눈 깜빡임과 윙크, 미소를 뇌파로 인지해 분석할 수 있다. 이 헤드셋의 출시로 ‘생각으로 하는 게임’도 등장했다. 오스트리아의 게임 회사인 스틸 얼라이브 스튜디오는 2013년 소셜 펀딩사이트인 킥스타터에 ‘선 오브 노르’라는 게임을 공개했다. 이모티브가 만든 EPOC 헤드셋을 쓰고 하는 게임으로 게임 이용자는 ‘생각(뇌파)’만으로 게임 속 캐릭터를 통해 불로 적을 태우는 마법 기능을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돼 올 초 게임이 출시됐다.

일본 혼다의 교통사고 줄이는 오토바이(왼쪽). 화난 얼굴을 본떠 주행 중인 오토바이 인지 확률을 전보다 43% 높였다. ‘뇌파’ 연구를 통해 시세이도가 내놓은 ‘마키아주’ 색조 제품(오른쪽). [사진 각 사]

 일본에선 일찌감치 기업들의 뇌 비즈니스 연구가 시작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일본 혼다의 오토바이(ASV-3)다. 2005년 혼다는 화난 사람의 얼굴을 연상하게 하는 오토바이를 출시했다. 사람 얼굴을 본뜬 오토바이를 만들면 도로 위에서 차량 운전자가 오토바이의 존재를 빨리 인식할 가능성이 전보다 43%나 높아져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게 혼다의 설명이었다. 혼다는 그 근거로 당시로선 낯선 뇌과학을 들었다.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뇌엔 얼굴을 인식하는 신경회로인 ‘얼굴 뉴런’이 있는데, 이 뉴런은 얼굴과 유사한 형태에 특별히 민감한 반응을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fMRI)로 실험해 보니 얼굴 모양 디자인을 본 사람의 뇌는 사람의 실제 얼굴을 본 것과 같은 뇌 반응을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한국타이어가 지난해 시연한 ‘생각으로 움직이는 자동차’. 닛산의 1인용 전기차와 한국타이어 제품을 결합했다. [사진 한국타이어]

 렌즈 회사인 도카이광학은 2008년 뇌과학을 상품 개발에 응용한 누진다초점렌즈로 매출이 전보다 4배 늘고 점유율(일본)도 5%에서 15%로 늘었다. NTT데이터경영연구소와 함께 안경을 쓰고 있는 사람의 뇌파를 측정해 초점이 잘 안 맞을 때 느끼는 스트레스와 불쾌감을 정량화하고, 이를 낮추는 렌즈 각도를 찾아내 상품에 적용하고 있다.

 화장품 회사인 시세이도는 사람의 뇌가 얼굴을 인식하는 순간이 단 0.2초라는 점에 착안해 실험을 했다. 한 명의 여성에게 한 번은 짙은 화장을, 또 한 번은 자연스러워 보이는 옅은 화장을 하도록 한 뒤 사람들의 뇌파를 측정했다. 실험 결과 사람들의 뇌는 후자를 더 아름답게 느끼는 것으로 드러났다. 시세이도는 이런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선보인 ‘마키아주’ 색조 제품(립스틱·아이섀도 등) 시리즈에 사람들이 직관적으로 “아름답다”고 느끼는 색감을 넣었다.

 이처럼 뇌 반응을 연구하고 활용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게 된 건 뇌 과학의 발달에 기인한다. 뇌에 대한 연구가 의미 있는 발전을 한 건 1900년대부터의 일이다. 이탈리아의 내과의사였던 카밀로 골지는 동물 뇌를 연구하다 실수로 조직을 질산은용액(염색용 화학용액)에 빠뜨렸다. 그는 현미경으로 뇌조직을 살펴보곤 깜짝 놀랐다. 어느 세포는 염색돼 있었지만 일부는 전혀 염색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이 실수를 기반으로 뇌세포가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와는 전혀 다른 모양을 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뇌과학이 다시 한 번 약진하게 된 건 50년대의 유전자 판독과 뇌를 촬영해볼 수 있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 같은 기술 개발 덕이었다. 이런 뇌과학의 발달은 인간의 행동과 의사결정이 어떤 원리에서 일어나는지를 연구하는 ‘신경경제학(neuroeconomics)’부터 뇌의 반응을 기업의 브랜드나 제품 마케팅, 상품 개발에 활용하는 뉴로마케팅(neuromarketing)으로 확장되는 것은 물론 인간의 사고방식을 본뜬 ‘인공지능(AI)’ 개발까지 이어지고 있다.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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