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대한민국” 표현 하루 만에 “괴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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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앙TV 등 북한 관영매체들이 지난 22일 남북 고위급 회담 소식을 전하며 이례적으로 ‘대한민국 청와대 김관진 안보실장’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평소 한국을 ‘괴뢰패당(미국의 꼭두각시라는 뜻)’ 또는 잘해야 ‘남조선’이라 부르던 것과는 다르다. 한때 통일부에선 “북한이 한국을 존중하면서, 어쨌든 회담에 대한 의지와 기대를 드러내려 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하지만 경남대 김근식(북한학) 교수는 이날 “북한은 최근 남과 북이 별개의 국가로 가자는 ‘투 코리아’ 전략을 쓰고 있다”며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사용했다고 앞으로 한국을 더 존중할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서강대 김영수(정치외교학) 교수도 “북한이 대한민국이란 국호를 쓴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고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전략적 이해에 따라 사용해왔다”며 “호의로만 받아들이기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런 예상대로 북한 관영매체들은 하루 만에 안면을 바꿨다. 조선중앙TV는 23일 오후 5시(평양시 기준) 뉴스에서 다시 대한민국 대신 ‘괴뢰’라는 표현을 썼다. “‘괴뢰군’의 무모한 군사·정치 도발로 조선 반도에 긴장이 조성됐다”고 주장하면서다. 이날 조선중앙TV 기자들은 군복을 입고 방송에 나왔다.

 북한은 2013년 9월 평양 유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아시안컵 및 아시아 클럽역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 선수들이 우승하자 태극기를 게양하고 애국가를 연주한 적도 있다. 2008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 아시아지역 예선 때는 “평양에서 태극기 게양과 애국가 연주는 안 된다”고 버텨 당시 남북 축구팀 대결 장소를 중국 상하이(上海)로 바꾸게 한 것과 다른 태도였다. 익명을 원한 대북 전문가는 “2013년 9월 역도대회 직후 베이징(北京)에서 북측 내각 관계자를 만나 애국가 연주 등에 대한 태도 변화의 배경을 물었더니 그가 ‘국제관례를 따른 것뿐인데 남조선은 너무 기뻐한다’고 어깨를 으쓱하더라”며 “북한은 언제든지 태도를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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