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평화도 전쟁보다 낫다는 판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북한은 왜 고위급회담을 제안했을까. 지난 20일 오후 5시 총참모부 명의로 "48시간 내에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고, 시설을 철수하지 않으면 군사적 행동에 나서겠다"고 '최후통첩'을 했던 북한인데.

어쨌든 호전성을 보이는 북한도 전면전이든 국지전이든 전쟁은 부담스러움이 드러났다. 북한의 회담제안은 김규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제1차장이 전했다. 22일 오후 3시 쯤이었다.'최후통첩' 48시간을 두 시간 앞두고서였다.

전격적으로 국면이 바뀌었다.

회담전만해도 남북은 막다른 골목으로 치달았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21일 오후 8시 대국민 담화를 통해 “대북 확성기 방송은 지뢰도발에 따른 우리의 응당한 조치”라며 “만약 이를 구실로 추가도발을 해온다면 우리 군은 이미 경고한 대로 가차없이 단호하게 응징하여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방의 북한군은 이날 오후 5시를 기해 전시체제로 전환하며 방사포(다연장 로켓)와 장사정포를 사격진지로 옮기고 사격훈련을 했다.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는 중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북한 국방위 라인은 21일부터 물밑에서 긴박하게 움직였다. 북한은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담당 비서를 내세워 21일 오후 4시 전통문을 보내왔다. “21일 혹은 22일 판문점에서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1대 1 접촉을 갖자”는 제안이었다.

청와대는 2시간 만에 김관진 실장 명의로 북한군을 대표하는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만나자는 역제안을 했다. 북한 실세와의 회담제안이었다. 북측은 날짜가 바뀐 22일 오전 9시 35분쯤 황병서 명의의 전통문을 보내왔다.자신과 김양건 비서가 나갈 테니 김관진 실장과 홍용표 장관이 나오라는, '2+2'회담제안을 수정제안으로 내놓았다. 정부는 수용했다.

충돌 직전 양측은 결국 회담테이블에 극적으로 마주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수시로 "전쟁 중에도 대화는 하는 것"이라고 강조해왔다. 그런 것 처럼 대화 제안을 거절할 이유는 없다고 판단한 듯 하다.점을 감안하면 남북관계 분위기 전환을 위한 극적 타결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작용했다는 게 정부 당국자의 설명이다.

북한이 먼저 회담을 제안한 이유는 내부결속과 국제사회의 관심을 끌어낸만큼 이선에서 치고 빠지는 것이 낫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한미연합훈련인 UFG(을지프리덤가디언)연습 상황인 것도 실제 군사적 행동을 하기엔 무리였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애초부터 군사적 충돌보다는 대화재개를 염두에 둔 계산된 벼랑끝 전술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은 20일 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의 중앙군사위원회 비상확대회의 소집 이후 ‘준전시(準戰時) 상태를 선포하고, 전방지역 부대들은 ’불의 작전‘ 준비에 돌입했다. 천안함 폭침사건을 이끌었던 김영철 정찰총국장이 21일 평양주재 외교관들과 외신들을 대상으로 직접 나서 “확성기 방송이나 삐라 살포는 노골적인 심리전으로 남측의 무모한 도발은 기필코 값비싼 징벌을 받게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오히려 이런 모습들이 천안함이나 연평도 포격전 때와는 다르다는 분석이다. 도발을 실제 행동으로 옮길 때는 극도의 보안속에 진행해왔기 때문이다. 물론 아직도 북한의 도발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대화제의가 공격을 위한 명분쌓기일 수도 있다.

현재 북한은 목함지뢰 도발 뿐 아니라 서해 연천 포격마저 자신들이 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곤 남측에 긴장 고조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그래서 대화제안을 해서 명분을 축적시킨뒤 도발에 나서려는 수순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아직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인 까닭에 군은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 10일부터 시작한 전방지역의 대북 확성기 방송도 계획대로 진행했다. 북한군 역시 대피소에 해당하는 갱도에 머물며 각종 무기들에는 실탄을 장전하는 모습이 파악되고 있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