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손해만 계속 키우는 북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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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호 31면

지난 한 달간 북한 안팎에선 크게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하나는 중국 문제이고, 또 하나는 남북관계 냉각이다. 북한 정세 분석가의 입장에선 첫 번째 문제 때문에 두 번째 문제가 놀랍게 느껴진다.


중국의 문제부터 살펴보자. 중국은 이달 들어 수출이 급감했고, 증시가 폭락했으며, 위안화를 절하했다. 정치적인 문제로 비화할 조짐이 보이는 톈진(天津)항 폭발사고까지 일어났다. 이게 왜 북한에 영향을 미칠까. 북중 관계가 냉각기지만 북한은 외교적으로나 특히 경제적으로 중국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2013년 북한의 수입은 수출보다 16억 달러(1조9000억원) 많았다. 이렇게 적자를 낸지 꽤 오래됐고, 이 적자의 대부분은 중국이 메워주고 있다. 중국은 별도의 통계를 내지 않지만 중국이 북한에 쓰는 돈이 연간 2조원 가까이 된다는 얘기다. 중국 경제에 먹구름이 끼면서 중국의 전문가들은 점점 왜 이런 큰 돈을 북한에 퍼부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오랫동안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북한의 안정을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돈을 퍼부어도 북한이 이상한 짓을 하는 걸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중국은 이제 알게 됐다. 나는 최근 중국 학자들뿐 아니라 중국 정부 고위 관계자들까지 북한을 귀찮게 여기는 것을 보고 놀랐다.


이런 일이 중국의 정치적 난관 속에 벌어진다는 게 북한에 더 안 좋은 일이다.


톈진항 폭발사고는 중국 정부에 정치적 압박을 가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1976년 탕산(唐山) 대지진의 피해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한 것이 마오쩌둥(毛澤東) 사후의 권력, 즉 4인방(四人幇)의 몰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을 기억한다. 압박이 몰리면 중국 정부는 되도록 어려운 문제들을 버리고 핵심 사안에 집중하려고 한다. 북한은 그 어려운 문제 중 하나다.


이럴 때 북한의 합리적인 반응은 중국과 화해를 꾀하거나 새로운 파트너를 구하는 것이다. 북한이 중국과 화해하려는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9월 3일 전승 70주년 열병식에 중국의 유일한 동맹국인 북한군이 나타나지 않는다면, 또는 김정은이 참석하지 않는다면, 냉각기가 계속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과거 이 칼럼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북한의 새로운 파트너 찾기나 기존 관계 공고화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이란과 쿠바 모두 미국과 관계를 개선했다.


이제 내가 앞서 제기한 두 번째 문제로 넘어가자. 중국이 저런 상황이라면 북한은 대한민국 정부와 관계를 개선하는 게 합리적이다. 한국은 중국이 대북 지원을 거둬들일 경우 그 빈 부분을 메워줄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최근 이희호 여사의 방북은 북한이 그런 길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하지만 이희호 여사는 김정은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북한 지뢰 폭발 사건은 상황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인간적으로 나쁜 짓이고 정치적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사전에 준비된 도발이지만 한국이 군사적으로 강력하게 대응하기엔 충분하지 않은 수준의 도발이었다. 북한이 왜 광복 70주년을 맞는 시점에 이런 일을 벌였는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북한이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것만 봐도 상식 밖의 일이었다.


이게 다 통일과 관련된 일인지도 모른다. 최근 북한 외교관들의 연설을 들어보면 통일에 대한 언급이 부쩍 늘었다. 통일은 한민족의 숙원이며 다만 남북한이 대등한 관계에서 통일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3월 박근혜 대통령의 드레스덴 선언을 흡수통일의 준비로 인식하고 있다. 북한은 남한과 관계 개선을 하면 자신들이 천천히 소멸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지뢰 폭발 사건은 북한이 외부 정보를 차단하려는 시점에 남한으로 하여금 대북 확성기의 스위치를 다시 올리게 만들었다. 을지훈련도 예정대로 진행됐다. 이 두 가지 일은 북한이 지난 20일 남한을 향해 포격을 가한 이유일 수 있다. 이는 심각한 도발이다. 비무장지대(DMZ)를 관통하는 실제 포격은 드문 일이다. 단기적으로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대하기는 어렵게 됐다.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여기저기서 탐지된다. 북한의 고위관계자는 또 다른 미사일 발사를 계획하다고 있다고 한다. 북한의 선군절인 8월 25일과 인민정권 창건일인 9월 9일을 주시해야 한다.


이런 미사일 발사는 갈등 고조 상태에서 상황을 더 악화시킬 것이다. 남북의 긴장완화 가능성을 차단하고, 중국의 심기도 건드릴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이유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그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조짐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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