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학교 앞 호텔’ 허용하라는 법원의 전향적 판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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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끼칠 우려가 없다면 학교와 가까운 곳에 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행정법원 제14부는 서울 종로구 이화동에 관광호텔을 지으려던 사업자가 중부교육지원청을 상대로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지난 16일 밝혔다. 호텔이 객실 위주로 설계돼 유해시설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지 않고 주 통학로와도 떨어져 있어 학생들의 학습환경과 보건위생에 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법원은 호텔 부지가 인근 학교들에서 50~200m 이내인 상대정화구역에 있다는 이유로 건축을 불허한 교육지원청의 처분은 재량권을 남용한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학습권을 침해하는 유해시설인지를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학교 앞 호텔’을 무조건 막는 경직된 규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안 그래도 ‘학교 앞 호텔’이 들어서지 못하게 하는 학교보건법은 대표적인 ‘손톱 밑 가시’ 규제로 지적돼 왔다. 관광업계에선 “한 해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방문하는 서울 면적의 70%에서 이 법 때문에 호텔을 지을 수 없다”고 하소연한다. 전국 15곳에서 이 법에 묶여 호텔 신축이 가로막혀 있다는 통계도 있다. 정부는 ‘학교 앞 호텔’ 규제가 풀리면 7000억원의 투자와 1만7000명의 고용 창출 효과가 있을 것으로 내다본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풀기 위해 2012년 10월 국회에 제출된 관광진흥법 개정안은 아직 상임위 법안심사소위 문턱도 넘지 못하고 있다. ‘특정 대기업에 대한 특혜’라는 주장과 ‘호텔에 유해시설이 따라 올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학교 반경 50m 이내는 호텔 신축을 금지하고 호텔이 유해업소를 운영하면 곧바로 허가를 취소한다는 내용을 수정안에 추가하면서 이런 우려는 대부분 사라졌다.

 호텔은 관광산업의 핵심 인프라다. 서비스업 활성화와 내수 증대, 고용 확대에도 큰 역할을 한다. 학습권은 반드시 지켜야 하지만 호텔을 퇴폐와 불륜의 온상으로 보는 것도 낡은 편견이라는 게 이번 판결의 메시지다. 국회가 더 이상 관광진흥법 개정안 처리를 미뤄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