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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매거진 위크앤] 미2사단 리포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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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촛불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합니다. 안타깝게 숨진 효순이.미선이, 그리고 동맹국을 지키려고 이역만리로 날아온 내 미군동료들 모두를 위해."

닐랜드 베나비시(Kneeland Benabise) 준위(36). 주한 미군 2사단 소속. 의정부 캠프 레드클라우드 법무 참모부 근무. 한국인 어머니와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그녀에겐 지난 1년이 1989년 입대 이후 가장 길고 힘들었다.

막내동생 같은 여중생들의 죽음, '미군 물러가라'는 외침과 '누구 때문에 우리가 여기 있는데' 하는 배신감. 전쟁보다 무서운 증오, 병영생활의 어쩔 수 없는 외로움, 북핵.인계철선.재배치, 2사단.2사단….

주한 미군 2사단 1만4천여 장병의 한국 근무 기간은 평균 12개월이다. 짧다. 한국은 해외 파병 미군들에게 근무하기 힘든 '최전방'이기 때문이다. 베나비시 준위도 언젠가 한국을 뜬다.

그러나 물러가는 것은 아니다. 전쟁을 막아야 하듯 증오는 풀어야 한다. 그 증오와 마주서기 위해 베나비시 준위는 다시 촛불을 들었다.

주한 미군 2사단. 그들이 한국 언론에 문을 열었다.

1백여명의 지휘관.장병들이 처음으로 설문조사와 인터뷰에 응했다. 훈련받는 모습도, 속마음도 다 보여주고 털어놓았다. 2003년 6월의 주한 미군. 그들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또 우리는 그들에게 무엇인가.

"그 사고로 마음고생이 심했던 부대원들은 이제 대부분 한국을 떠났다."

지난해 6월 13일 여중생 신효순.심미선양 사망사고를 일으킨 2사단 산하 파주 공병여단(캠프 하우즈) 소속 엘로이 H 알치바 주임원사는 "문화차이 탓에 우리 마음이 한국인들에게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국 근무 3년째인 그는 "사고 며칠 뒤 철야 촛불 예배를 제일 먼저 드린 것은 우리 부대원들이었다"고 말했다.

여중생 참사로 "반미면 어떠냐"(지난해 9월 11일 노무현 대통령후보)로 상징되는 반미 정서가 증폭됐다. 덕분에 월드컵대회 때 붉은 악마 티셔츠를 입고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오 필승 코리아"를 외쳤던 미 2사단 장병들에게는 아직도 외출 주의령이 내려져 있다.

1917년 창설된 미 보병 제 2사단(The 2d Infantry division)은 1950년 한국전쟁에 투입된 이래 한국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사령부(캠프 레드클라우드)는 경기도 의정부에 있다.

#1 경기도 동두천의 미2사단 캠프 케이시 정문은 '인디언'이 지킨다. 그 앞엔 한국 전경이 경비를 서고 있다. 인디언 헤드(머리)는 2사단의 상징. 전경들은 여중생 사망사고 후 부대 주변에서 반미시위가 잦아지면서 배치됐다.

한 미군은 "부대에 화염병이 날아든 적도 있다"며 "우리는 그것을 '불 폭탄(fire bomb)'이라고 불렀다. 솔직히 겁도 났다"고 말했다. 2사단의 전투력은 한국군 1개 군단(3개 사단)보다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2 한 여군이 훈련에 앞서 얼굴을 위장하고 있다. 2사단 장병 열명중 세명은 여군이다. 2사단 항공여단 헬리콥터 부대(캠프 스탠리)에서 세명 뿐인 여자 조종사 중 한명인 헤스 리사(37) 준위는 미국 앨라배마주에 두 아이를 남겨두고 한국에 온 지 7개월째다.

그녀가 모는 헬기는'블랙호크(검은 매)'라는 별명을 가진 UH-60L. "아이들이 그립지 않냐"고 묻자 짤막한 한숨을 쉬면서도 "직업군인이라는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2사단에서 20여년간 태권도를 가르쳐온 김문옥 사범은 "애(사병)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향수와 외로움"이라고 한다. 장병의 90%가 단신 부임이며, 사병들은 17세에서 많아야 20대 중반 나이. 대부분 대학 학비를 벌기 위해 자진 입대했다.

#3 부대에 견학왔다가 작은 상처를 입은 한국인 여학생을 미군들이 차에 태워 의무실로 옮기고 있다. 여중생 사고의 '상처'에도 불구하고 부대원 열명 중 여덟명은 한국어와 문화에 관심이 있다고 응답했다.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과달루페 엘리아스(37) 중사는 얼마 전 한국근무 연장을 신청했다. "가족을 아끼고 친구를 형제처럼 여기는 한국인의 매력에 빠져서"다. 그는 요즘 부대 안팎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을 붙잡고 한국어 회화 연습을 하느라 여념이 없다.

#4 지난해 7월 부임한 존 R 우드 2사단장(소장)은 부친 역시 2사단 소속으로 한국전쟁에 참전했을 정도로 한국과 인연이 깊다. 그는 기자에게 "그 사건(여중생 사망)은 정말로 참담하고 미안한 일이다. 한국인과 미군 모두 자신들의 감정을 충분히 털어놓았다고 본다. 이제 중요한 것은 다시 화합을 다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드 소장은 2사단을 미식축구의 '중간 수비수(middle line backer.세 줄로 늘어선 수비 라인 중 가운데 수비수로 상대의 공격 루트를 차단하는 역할)'에 비유했다. "이전에는 우리가 최전선에 있었다면 지금은 방어 능력을 높이는 임무를 수행하는 라인 배커(중간 수비수)라고 볼 수 있습니다."

표재용 기자

권혁재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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