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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속에 ‘회전톱‘ 이빨 장착한 지구상 유일무이 생명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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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25면

1 헬리코프리온의 최종 복원도. 위턱에는 이빨이 없다. 헬리코프리온은 상어가 아니라 전두류에 속한다. 중생대에 거대 해양파충류가 등장하면서 멸종했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에게 무던히도 속고 살았다. “어이 시원하다”라는 동네 할아버지의 탄성에 속아 뜨거운 욕탕에 뛰어들었다가 혼비백산했고, 길거리에서 파는 불량식품을 먹으면 배탈난다는 할머니 말씀에 속아 초등학교 졸업 전까지 번데기 한 번 사먹어보지 못했다.
그런데 어른 말씀이 사실인 적이 있다. 아버지는 목재소에 가면 큰일 나니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고 하셨다. 하지만 목재소 담벼락을 지날 때마다 ‘윙’ 하는 날카로운 소리가 너무 궁금했다. 과감히 들어갔다가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소리의 정체는 회전톱이었다. 가만히 한 곳에서 돌고 있는 둥근톱을 향해 목재를 밀면 나무가 가지런히 잘렸다. 당시 좋아하던 TV 프로그램 ‘배트맨’에서 악당 조커에게 사로잡힌 배트맨이 컨베이어 벨트에 묶인 채 거대한 회전톱으로 밀려가는 장면이 생각났다. 내가 TV에서 본 가장 끔찍한 장면이었다. 물론 영화에서는 최후의 순간 로빈이 배트맨을 구해주지만 내겐 오히려 현실감이 없었다.
내게 회전톱은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끔찍한 장치다. 당연히 이 장치는 아름다운 자연에는 있을 리가 없고 조커 같은 나쁜 인간이나 만드는 장치로 생각했다. 하지만 인간이 처음 발명한 장치는 거의 없다. 모든 것의 원형은 이미 자연에 있다.

[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全頭類 물고기 헬리코프리온

2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 화석.

몸과 따로 떨어져 발견된 둥근 톱 화석
1899년 러시아 지질학자이자 광물학자인 알렉산더 페트로비치 카르핀스키(Alexander Petrovich Karpinsky)는 카자흐스탄에서 나선형으로 배열된 톱날 화석을 발견했다. 언뜻 보기에는 암모나이트나 앵무조개의 껍데기와 닮았지만 카르핀스키는 이 화석이 근처에서 발견된 길이 6m의 물고기 화석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이 물고기에 헬리코프리온(Helicoprion)이란 이름을 붙였다. ‘나선형 톱’이란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석이 그렇듯이 이 나선형 톱이 몸체와는 따로 떨어져서 발견됐기 때문에 도대체 이 신체의 어느 부분인지 알 수 없었다. 이럴 경우에는 현재 살고 있는 생물에서 그 답을 찾는 게 가장 합리적이다. 카르핀스키는 현생 톱가오리에서 답을 찾았다. 톱가오리의 위턱은 나무를 자르는 톱처럼 생겼다. 실제로 위턱을 몇 번 휘저으면 먹잇감이 잘게 분해된다(우리가 알고 있는 톱상어는 대부분 톱가오리다. 톱상어는 몸통 옆에 아가미가 있고 톱날 중간에 수염이 있지만 톱가오리는 아가미가 배 쪽에 있으며 톱날에 수염이 없다).
카르핀스키는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톱이 섭식(攝食)장치라고 여겼다. 구조적으로 적합한지에 대한 확신은 없었지만 이빨처럼 생긴 나선이 위턱에서 이어진 주둥이의 끝이며, 몸의 단단한 장식 역할을 했다고 보는 게 최상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이듬해 세기가 바뀌어 20세기가 되자 전 세계의 과학자들은 다른 생각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미국의 고생물학자 찰스 로체스터 이스트먼(Charles Rochester Eastman). 이스트먼은 이 거추장스러운 장치가 얼굴에 붙어 있었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1900년 논문에서 나선형 톱이 몸 등쪽 어딘가에 붙어 있으며 방어용 무기 역할을 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많은 과학자들이 여기에 동조하자 카르핀스키조차도 1902년에는 나선형 톱이 꼬리 끝에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고생물학에서는 아무리 화려하고 근사한 추론이라도 보잘 것 없는 화석을 이길 수는 없다. 1907년 나선형 톱이 얼굴 앞에 놓인 화석을 미국 어류학자 올리버 페리 헤이(Oliver Perry Hay)가 발견하자 나선형 톱은 카르핀스키가 처음 생각했던 대로 다시 얼굴로 돌아왔다. 하지만 단 몇 개의 화석만으로 나선형 톱이 위턱인지 아래턱인지, 아니면 위 아래에 모두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선형 톱이 먹이를 먹는 데 쓰이는 게 아니라 방어용 무기라는 이스트먼의 주장은 여전히 공감을 얻었다.

레이 트롤이 정리한 헬리코프리온 옛 복원도

학부생과 교수 논쟁이 본격 연구로 이어져
이때부터 거의 50년 동안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과학적 논의는 전혀 진척되지 않은 채 온갖 상상도만 난무했다. 여기에는 한 고생물학자의 무심함도 한몫했다.
덴마크 출신의 고생물학자 스벤 에리크 벤딕스-알름그렌(Svend Erik Bendix-Almgreen)은 1950년에 미국 아이다호의 몬트필리어 인근에 있는 인(燐) 광산에서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을 발견하고 IMNH 37899라고 목록에 기록했지만, 16년 후인 1966년에야 이 사실을 밝혔다. IMNH 37899는 심각하게 부서진 상태였지만 톱니 모양이 선명하게 남은 이빨 117개가 지름 23센티미터의 나선에 얹혀 있었다. 벤딕스-알름그렌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나선형 톱이 아래턱 끝에 붙어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IMNH 37899는 특별한 화석이었다. 윗턱과 두개골에서 떨어진 작은 연골 조각도 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벤딕스-알름그렌은 여기에 특별히 주목하지 않았다. 표본이 관절에서 빠져나와 있고 부서져 있어 헬리코프리온을 재구성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시 30여 개의 턱 화석과 함께 박물관 수장고에 처박아 뒀다.
1907년 이후 50년 동안 헬리코프리온에 대한 상상도는 크게 발전하지 못했다. 과학자들은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이 입 안에 혀가 있을만한 자리 또는 목구멍 쪽으로 더 깊은 곳으로부터 시작해 아랫입술을 지나 턱 아래쪽을 향해 엉성하게 말려 있다고 생각했다.
2008년 아이다호 자연사박물관의 지구과학부 학예팀장이자 아이다호대학 지구과학과 교수인 레이프 타파닐라(Leif Tapanila)는 학부 졸업 논문을 준비하고 있는 제스 프루이트(Jesse Pruitt)와 함께 헬리코프리온 화석을 뒤지고 있었다. 프루이트는 헬리코프리온의 턱을 들추면서 질문을 쏟아냈다. 프루이트는 나선형 이빨이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라기보다는 죽은 다음에 생긴 형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지도교수인 타파닐라는 살아 있을 때의 모습이라는 게 과학계의 일반적인 생각이라고 알려주었다. 학부생에 불과한 프루이트가 지도교수의 주장에 수긍하고 또 지도교수가 학생의 생각을 무시했다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과학기술과 예술의 ‘협업’으로 해답 찾아
타파닐라와 프루이트는 세밀한 조사를 하기로 했다. 다행히 자세히 볼 수 있는 기술이 발달했다. 예전 같으면 돋보기나 현미경을 통해 보는 것이 전부였지만 이제는 CT 스캔 기술을 사용해 더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타파닐라는 네 명의 과학자와 고생물학 아티스트인 레이 트롤(Ray Troll)을 연구팀에 합류시켰다. 연구팀은 텍사스 오스틴 대학의 고해상도 엑스레이 CT 장치를 사용해 3D 모델을 추출한 후 3D 프린터로 헬리코프리온의 턱을 복원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결정적인 모습 두 가지가 새로 밝혀졌다. 우선 수십 년간 생각해 왔던 것처럼 얼굴 앞으로 길게 튀어나온 턱은 없었다. 턱을 길게 표현한 대부분의 복원도와 달리 헬리코프리온의 나선형 이빨은 전체가 아래턱을 채우고 있었다. 턱관절은 바로 뒤에 있으며 양쪽 턱 연골이 나선형 이빨을 받쳐주고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따로 있었다. 헬리코프리온의 위턱에는 이빨이라고 할 만한 게 없었다. 이것은 이 물고기가 상어가 아님을 말해 준다. 헬리코프리온은 대백상어(great white shark)나 배암상어(tiger shark)의 선조가 아닌 것이다. 헬리코프리온 두개골의 연골에는 매우 특이한 이중 연결부가 있는데 이것은 흔히 은상어라고 알려진 전두류(全頭類)의 전형적인 특징이다. 전두류는 4억 년 전에 상어에서 갈라져 나왔다. 헬리코프리온의 이빨 구조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전두류와 일치했다.
타파닐라는 헬리코프리온이 은상어 그룹의 선조 멤버였다고 생각한다. 타파닐라 연구팀은 재빨리 물고기의 가계도를 다시 그렸다. 현재 헬리코프리온은 상어에서 갈라진 전두류 가지 쪽에 배치돼 있다. 1899년 발견된 이후 상어로 알려졌던 헬리코프리온이 2013년에야 제대로 분류된 것이다.
115년 만에 헬리코프리온의 괴상한 나선형 이빨의 수수께끼가 풀렸지만, 아직도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는 남아있다. 헬리코프리온은 단지 한 개의 톱날만으로 어떻게 먹이를 잡아먹었을까? 타파닐라는 레이 트롤의 복원도에서 영감을 받았다. 레이 트롤은 수백 장의 복원도를 그렸다. 타파닐라는 모든 복원도에서 나선형 이빨 모양이 목재소에서 사용하는 회전톱과 완벽하게 닮았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이빨이 단지 톱날처럼 생겼다는 것이 아니다. 턱을 닫으면 나선형 이빨은 회전톱날이 도는 것처럼 뒤쪽으로 향해 이동했다. 이런 방식으로 2억7000만 년 전 바다에 살았던 오징어를 비롯한 해양 연체동물을 먹었을 것이다.
헬리코프리온의 수수께끼는 과학과 기술, 그리고 예술이 결합해 풀었다. 그리고 어린 학부생의 끊임없는 질문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렇다. 과학은 질문과 논쟁으로 시작해 협업을 통해 발전한다. 아직도 의문은 남아있다. 왜 이렇게 희한한 이빨 배열이 하필 페름기 말에, 지구 생명의 역사에 유일하게 등장했느냐는 것이다. 이 질문이 해결되지 않으면 목재소에 대한 내 악몽은 끝나지 않을지 모른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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