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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즐겨읽기]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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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공지영 지음, 푸른숲, 316쪽, 9500원

신파극이란 게 있다. 한 마디로 통속적인 연극이다. 여기서 통속이라면 뻔한 인물이 지어내는 뻔한 사건을 말하고, '뻔하다'는 건 예상한 대로 이야기가 흘러간다는 뜻이다. 사형수 남자와 대학교수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이 나왔다. 주인공 얘기만 듣고선 신파란 말이 떠올랐다. 전형적인 혹은 선정적인 캐릭터란 혐의를 두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딱한 삶의 사형수와 남 부러울 것 없는 집안의, 그러나 내상(內傷)을 안고 사는 막내딸. 이 둘이 우연히 만나 결국은 화해한다.

인기 작가 공지영씨가 11년 만에 발표한 이 전작 소설은 다분히 신파적이다. 사형수(윤수)와 교수(유정)의 사연을 다른 형식으로 배치하고 중간중간 격언을 끼워넣은 수고에도 불구하고 그렇다.

그러나 소설이 신파인 이유는 따로 있다. 신파라고 불리기 위해선 소설이 주는 재미에 대한 대중의 호응이 전제돼야 한다.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소설은 신파다. 여러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재.미.있.다.

작가는 "석달 동안 폭풍처럼 썼다"고 했다. 그래서인가. 소설은 폭풍처럼 읽힌다. 누가 옆에서 말을 걸더라도 눈 떼기 어렵고, 지하철 옆자리에 누가 앉아있더라도 쏟아내리는 눈물 감추기 버겁다. 한달음에 다 읽어버린 지금 마법같은 흡인력에 새삼 놀란다. 얼얼하고 숨가쁘다. 작가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왜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인가

"사형수 소설을 구상한 10년 전에 정한 제목이다."

-'나'가 아니라 '우리들'이다

" 불우한 윤수나 상처받은 유정이나 잠시나마 행복하지 않았나. 나도 작품 쓰는 내내 행복했다. 지금 전화하는 기자는 행복하지 않은가?"

오랜만에 소설 속에 빠져봤다. 그래서 지금 행복하다.

손민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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