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림의 '굿모닝 레터'] 여름 냄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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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비가 그친 뒤, 이 싱그러운 바람, 아직 마르지 않은 비의 향기, 투명합니다. 계절의 변화를 바람으로 느끼고, 그 옛날 마당에 멍석 깔고 먹는 밥이 맛있었듯 노천 카페 의자에서 마시는 카페라테. 흐음, 냄새 좋아예. 막 빵집에서 사온 찹쌀로 만든 바케트를 먹습니다.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운 감촉, 또 다른 인생이 전해옵니다.

축구경기가 있는 날이면 중계방송 보느라 카페엔 사람들로 가득하여 살 맛이 난답니다. 그 모습 보며 몽상 속으로 들락날락하면서 글도 다듬어요. 옛날엔 사귀던 사람과 헤어져 너무 외로와질 때 저는 카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을 구경하며 활력을 얻었지요. 몸저리는 안타까움과 슬픔을 안고 방안에 처박히면 병이 납니다.

이별의 미묘한 그늘에서 벗어나 시장이나 백화점 쇼핑도 좋지만 카페에 앉아 책 펴들면 차분해지고, 행인을 바라보면 사람들이 사랑스러워집니다. 먹구름처럼 낮게 깔린 우울함도 걷혀지구요. 시원한 옷을 입고 시원한 생각만 하고 싶어요. 여름이니까. 그러다보면 슬프고 괴로운 걱정들은 사라지니까.

신현림 <시인.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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