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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공의 수련환경 개선...특별법으로 실마리 풀릴까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요즘 의료계에서는 의사협회와 병원협회가 최근 발의된 법안 하나를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이름도 참 깁니다. 지난 달 31일 새정치민주연합 김용익 의원이 발의한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안'입니다. 일명 '전공의 특별법'이라고도 하죠.

이 법안은 개정안이 아닌 제정안입니다.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이라는 화두는 어찌보면 의료계에서 해묵은 논제입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한 법안이 왜 이제서야 처음 발의됐을까요.

그 이유를 따져보면 이렇습니다. 몇해 전까지만 해도 수련환경 개선에서 수련시간을 줄여달라는 요구는 금기시 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제정안에서 수련시간을 주 80시간으로 제한하고 연속해 20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이 명문화된 것입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수련과 수련 사이 10시간의 휴식 보장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유급휴가 및 출산휴가 ▶야간·휴일 수련 시 50% 이상 가산금 지급 ▶전공의에 대한 폭행·폭언·가혹행위 금지 등이 의무조항으로 담겼습니다.

이들 조항이 지켜지지 않을 땐 이 사실을 전공의가 직접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신고할 수 있습니다.

처벌 조항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야간·휴일 당직 임금 가산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집니다.

일반적인 근로환경과 비교해보면 왜 이제서야 이 법안이 나왔나 싶을 정도로 당연해 보이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도입부에 언급했듯 법안에 대한 입장이 의협과 병협이 상반됩니다. 의협은 찬성이고 병협은 반대입니다. 의협은 주로 개원의 입장을, 병협은 병원의 입장을 대변해 온 단체로 알려져 있지요.

그러면 일반 의사들의 생각은 어떨까요. 또 수련병원에서 전공의를 가르치는 교수들은 어떨까요. 개인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찬성하는 입장을 보면 전공의, 특히 저년차의 업무가 과중하고 연속 당직 등 휴식이 부족한 무리한 일과가 실수와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 전공의 업무가 과중해지면 그에 비례해 의료사고가 증가한다는 조사결과도 있습니다.

반대 측의 시각은 좀 다릅니다. 선배의사, 교수 중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꽤 있는데요. 현재 전공의 근무환경이 힘들지 않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전공의 근무시간이 줄어들면 이로인한 업무공백이 생기고 자연히 대체인력이 생길 수 밖에 없다는 겁니다.

이렇게 되면 기존에 비해 수련의 경험, 배움의 기회, 업무 영역 등이 축소돼 결국 제살 깎아먹기가 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펠로우 제도가 생기면서 전공의의 실습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또 외과계열의 경우 수술장에 기존 전공의 역할을 PA가 대체하는 일이 벌어진 것도 사실이죠.

그런데 정말 우려할 일인가. 반론도 만만치 않습니다.

단적인 예로, 흔히 링거라고 하는 정맥주사를 놓는 업무는 옛날에는 인턴의 업무이자 영역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업무가 인턴의 업무를 가중시킨다는 지적에 따라 간호사의 업무가 됐습니다. 요즘 전문의를 딴 의사 중에는 지금까지 정맥주사를 놓아 본 경험이 전혀 없는 의사도 많습니다.

그러면 이것이 문제인 것이냐. 그렇진 않습니다. 보다 전문적인 영역인 동맥혈 채취는 여전히 의사의 업무입니다. 정맥주사는 필요한 경우 몇 시간만 배우면 되는 일입니다. 전공의 업무와 영역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의사에게 무조건 위기는 아니라는 얘기가 되겠죠.

다음 부분을 짚어보면, 병원 업무 특성상 전공의 업무 공백이 발생합니다. 대체인력이 필요하겠죠. 누가 가능할까요. 우선 전문의를 볼까요. 전문의로 대체하게 되면 의료질이 보다 높아질 수 있습니다. 국민이 환영하겠죠.

그런데 여기서 실패한 선례가 있습니다. 오래된 일도 아니죠. 바로 '응당법(응급실당직법)'입니다. 해당 개정안 초안은 응급실에서 요청할 경우 무조건 교수 등 전문의가 초진을 보도록 했었습니다. 교수가 야간 당직콜을 받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탁상공론이라는 비난이 거셌고, 결국 해당 개정안은 수정에 수정을 거쳐 누더기법안이 됐습니다.

굳이 수련병원의 경영상 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없습니다. 교수 이외의 전문의를 고용하는 부분도 현실성은 떨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해당 과는 전문의 수요가 늘어 좋은 일이겠지만 말입니다.

현 상황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은 전공의입니다. 전공의 공백을 전공의로 대체하는 것. 즉 해당과 전공의를 늘리는 겁니다. 인원이 많아지면 그만큼 시간을 나눠 근무할 수 있고 수련환경이 개선될 순 있겠지요.

근데 두 가지 문제가 생깁니다. 정원을 늘린다고 충원되는 것이 아닌데다, 설사 충원이 되더라도 전문의 취득 후 서로 경쟁하는 밥그릇싸움이 불가피합니다. '수련환경 개선한답시고 법안 만들면 너희만 손해'라는 논리가 여기서 나옵니다.

전공의로도 안되면 결국 PA 같은 대체인력인데, 그간의 PA논란에서도 보듯이 뾰족한 답이 안나옵니다.

굳이 수련병원의 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풀어야할 숙제는 산더미입니다.

근로기준법에 준하는 전공의 수련환경. 들여다보면 얽히고설킨 실타래입니다. 전공의 특별법은 현재 발의만 된 상황입니다. 과연 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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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장훈 기자 jh@joongang.co.kr <저작권자 ⓒ 중앙일보헬스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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