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 공천 민주화 등 선거 개혁 우선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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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흔히 국회의원 정수 확대론자들은 의원당 국민 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가 평균보다 많고, 정수 확대가 대표성과 다양성을 강화하고 기득권은 축소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의원 정수 문제는 이와 별 관계가 없고 출산율, 자살률 등이 OECD에서 나쁜 순서로 1위를 다투고 있음을 감안하면 사회적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한참 아래에 있어야 마땅하다. 또 공무원연금 조정, 지방세와 담뱃세 인상에 이어 소득세와 법인세 인상을 놓고 줄다리기 하게 될 정치권이 제 몸집은 불리겠다고 나서는 것은 염치없는 일이다.

 의원 정수 확대론자들은 의원 1인당 국민 수가 줄어들면 의원으로부터 받는 서비스, 즉 대표성이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옳지 않다. 이러한 주장의 전제는 대리인인 의원이 주인인 국민을 위해 일한다는 것인데 현실은 다르다. 선거 때만 되면 살려 달라고 하지만 평상시는 정당의 대리인일 뿐 국민은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다양성을 강화한다는 주장도 옳지 않다. 의원 정수가 늘어나면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의원도 늘어나겠지만 문제는 한국 정당의 강한 기율로 인해 의원의 다양성이 의정활동의 다양성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책적 소신에 따라 행동했다는 이유로 당원 자격이 정지되기도 하고,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했다는 이유로 대다수 의원이 찬성했던 법안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게 우리 정당의 현주소다.

 의원수가 늘면 의원의 기득권이 축소된다는 주장 역시 옳지 않다. 영국 의회와 같이 의원 수가 늘어도 의사당을 신축하지 않고 일부 의원은 서서 회의를 진행하는 경우라면 n의 증가가 n분의 1을 축소시킨다. 그러나 무급 의원이 어느새 유급 의원이 되고 유급 보좌관까지 두게 된 지방의회에서 보듯이 대리인이 셀프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곳에서는 옳지 않은 주장이다.

 물론 의원 정수 확대 반대가 현행 선거제도를 유지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지난 19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부산에서 51.3%를 득표했지만 의석은 단 2석을 제외한 16석을 얻은 데에서 보듯이 현행제도는 지역구도를 지나치게 증폭시킨다. 또 비례대표제 포럼에 따르면 13~19대 총선 결과 지역구 선거에서 당선자에게 간 표는 평균 987만 표였지만 낙선자에게 간 표는 1023만 표였다고 하는데, 이는 현행 제도가 심각한 대표성의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탈 3김 시대 정치제도의 틀을 만들었던 박관용 국회의장 산하의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가 지역구 200대 비례대표 100을 권고했던 것도 바로 이러한 문제를 치유하기 위함이었다.

 비례대표가 전국구(錢國區)로 비난받았던 것은 후보에게 직접 투표하지 않는 점을 이용해 당 지도부가 옥과 돌을 섞는 공천을 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권역별 정당명부제에서는 5개 권역을 상정하는 경우 평균 20명의 짧은 명부가 되기 때문에 유권자의 감시가 훨씬 더 철저해질 수 있고 정치 지망생의 서울 집중을 막는 장점도 있다. 동시에 지역구 수의 감소는 지역구당 인구 수를 늘려 헌법재판소가 제시한 인구편차 2:1 기준을 맞추는 것도 용이하게 한다.

 권역별 정당명부제 도입은 지금과 같이 지역구와 비례대표가 병립하는 혼합다수제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새정치연합 혁신위가 제안하는 혼합비례제는 정당투표에 정확하게 비례해 전체 의석을 배분하는 장점은 있지만 초과 의석의 문제, 지역구에서 좋은 후보를 발굴한 정당이 비례대표 의석은 적게 배분받는 문제가 있다.

 아울러 선거제도 개혁은 공천민주화와 동반할 때 제대로 된 효과를 낸다. 당원경선과 오픈프라이머리는 이론적으론 어느 것이 낫다고 할 수 없지만 현역의원이 잠재적인 도전자 측 당원 가입을 막는 상황에서는 당원경선의 부작용은 명약관화하다. 마침 새누리당은 오픈프라이머리를, 새정치연합 혁신위는 권역별 정당명부제를 제안하고 있으니 한국 민주주의의 업그레이드를 위한 양당의 제대로 된 주고받기를 기대해 본다.

김민전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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