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다…" 1등석 타고 귀국한 신동빈 회장, 기자 질문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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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 낮 12시 20분. 신동빈(60) 롯데그룹 회장이 잔뜩 굳은 표정으로 비행기에 올랐다. 도쿄 하네다 공항을 출발해 김포공항으로 가는 대한항공 KE2708편 비행기다. 이륙 직전 마지막 탑승자였다. 롯데그룹 관계자 1명이 동행했다. 광윤사와 일본 롯데홀딩스 이사진, 종업원 지주회(우리사주) 등을 잇따라 접촉하며 우호세력 확보에 나선 지 8일만이다. 그의 서울행을 본지 이정헌 도쿄특파원이 동행 취재했다.

신 회장은 35도 안팎의 무더위 속에서도 쥐색 양복에 넥타이까지 맸다. 양복 저고리 왼쪽엔 롯데그룹 마크가 선명한 배지를 달았다. 비행기 맨 앞쪽 퍼스트클래스의 오른편 창가 자리인 1J석에 앉았다. 미리 탑승하고 있던 한국특파원들이 인사를 건네자 엷은 미소를 지을 뿐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인터뷰 요청도 거절했다. 자리에 앉자마자 금색 테두리의 안경을 끼고 중앙일보 등 한국 신문들을 읽기 시작했다.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 관련 기사들을 쭉 훑어봤다.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당초 지난달 31일 한국으로 돌아오기 위해 2편의 비행기를 예약했던 신 회장은 사흘 뒤에야 귀국길에 올랐다. 친형인 신동주(61)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 서울에서 아버지 신격호(94) 총괄회장의 영상 메시지까지 공개하며 ‘반 신동빈’ 여론전을 펼치는 동안 주주총회 준비에 주력했다.

그는 이날 오전 9시 15분 대한항공 비행기도 예약했지만 타지 않았다. 동행 취재를 준비한 기자들은 막판까지 신 회장의 탑승 여부를 확인하느라 바삐 움직였다. 첩보 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신 회장은 오전 11시 50분쯤 하네다 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권 창구엔 직접 들르지 않았다. 별도의 VIP 통로를 이용해 탑승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곧장 들어왔다. 특파원들이 “아버지를 만나실 건가요?” “주주총회 준비는 다 하셨습니까?” “서울에 가면 무슨 일부터 챙기실 겁니까?” 등 질문을 던졌지만 “여기서는 좀...” “서울에서 다...”라고만 짧게 답했다.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VIP 라운지에 홀로 머물렀다.

친형과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신 회장은 기내에서도 극도로 말을 아꼈다. 특파원들이 수 차례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끝내 응하지 않았다. 기내식으로 제공된 비빔밥은 절반 가량 먹은 뒤 줄곧 신문만 읽었다. 오후 2시 30분쯤 비행기가 김포공항에 도착하자 신동빈 회장은 역시 입을 굳게 다문 채 맨 먼저 비행기에서 내렸다. 그리고 입국장으로 들어선 뒤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 들 앞에서 고개를 깊게 숙였다.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하다”고 말했다.

도쿄=이정헌 특파원 jhleehop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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