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기업이 체감 못하는 규제개혁으론 경제 못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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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정부의 규제개혁 노력에 대한 기업 체감도가 여전히 낮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300개 기업을 조사해 어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규제개혁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평균 2.92점을 기록했다. 일년 전(2.7점)보다 높아졌다지만 여전히 보통(3점)을 밑돈다.

 세부 항목별로도 높은 점수를 받은 분야가 딱히 없다. 규제개혁 시스템에 대한 만족도(3.04점)가 간신히 보통을 넘겼지만 규제 개혁 성과에 대한 만족도(2.87점)는 이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의 의욕에 비해 결과가 마땅찮다는 기업의 평가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후속조치 사후관리(2.79점) ▶기업과의 소통(2.75점) ▶공무원의 규제개혁 의식(2.58점)에 대한 평가가 낮다. 규제개혁이 강력하고 일관되게 추진될 수 있을지에 대해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는 신호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7시간에 이르는 규제개혁 끝장 토론을 한 게 지난해 3월이다. 1년4개월이 지났지만 규제의 주대상인 기업들이 그다지 좋아졌다고 느끼지 못하는 건 큰 문제다.

 한국 경제는 사면초가라 해도 좋을 만큼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밖으로는 중국 경제 불안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엔화 약세, 그리스 사태와 같은 불안요인들이 상존한다. 안으로는 수출과 내수의 동반 부진이 길어지고 있다. 앞으로 20~30년을 좌우할 장기 전망도 비관적이다. KDI는 현재 3% 수준인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앞으로 10년마다 1%포인트씩 낮아져 2035년 1.5%까지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구조적인 내수부진이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과 중진국, 중국과 일본 사이에 낀 기업들은 반도체와 자동차 이후를 담당할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한국 경제가 예전처럼 파이를 키워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규제개혁이 지금 중요한 게 이래서다. 파이를 키울 자원을 예전처럼 늘리기 어렵다면 있는 자원이라도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기업과 경제에 숨 돌릴 여유를 주고, 조금이라도 파이를 키워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데 투자해야 한다.

 정부는 애쓰고 있다고 강조한다. 실제로 정부가 운영하는 규제개혁포털에 등록된 규제 숫자(1만4688개)는 올 초보다 242개, 지난해 초보다 594개 줄었다. 하지만 숫자를 줄이는 게 규제개혁의 목표일 수는 없다. 기업과 가계가 불필요한 일에 힘을 낭비하지 않고 보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게끔 해야 한다. 경제주체들의 체감도에 규제개혁의 명운을 걸어야 하는 이유다.

 이런 면에서 이번 조사가 시사하는 바를 잘 새겨야 한다. 규제를 풀 의지가 없는 공무원, 기업과 소통하지 않는 탁상행정, 건수 위주의 성과주의는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 약속을 용두사미로 만든 주범들이다.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박근혜 정부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