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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마저 공무원 응시 길 막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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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명문대에서 정치학 석사학위까지 받은 高모(31)씨는 올초부터 예전에 포기했던 행정고시를 다시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취업하려 했으나 연령제한에 걸려 원서조차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대졸은 27세, 대학원졸은 29세 이하로 응시연령을 제한해 원서를 낼 수 있는 곳은 영업직이나 계약직뿐이었다.

그는 결국 접었던 고시에 다시 도전하고 있다. 하지만 고시마저 32세 이하로 응시연령을 제한하고 있어 내년에 반드시 합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심하다. 요즘엔 시험에 떨어지는 악몽을 자주 꿀 정도다.

高씨는 "잘못한 점이라면 대학 졸업 당시 외환위기로 취업할 데가 없어 고시로 방향을 튼 것"이라며 "열심히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많다고 원서조차 받는 곳이 없으니 이젠 절망만 남았다"고 말했다. 취업연령 제한은 나이를 기준으로 조기 퇴직시키는 것과 같은 성격의 연령 차별이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체 두곳 중 한곳은 취업연령 제한을 두고 있다. 제한연령은 사무직의 경우 평균 28.6세, 판매.서비스직은 29.6세로 집계됐다.

신입사원 채용 때 학력 차별마저 없앤 삼성그룹도 신입사원 모집시 '20~29세인 자'로 나이를 제한하고 있다. 심지어 차별을 없애는 데 앞장서야 할 정부도 공무원 채용 때 연령제한을 둔다. 행정.외무.기술.지방고시는 32세 이하, 7급은 35세 이하, 9급은 28세 이하로 응시연령을 제한하고 있다.

중앙인사위원회 관계자는 "나이든 사람이 신규로 들어왔을 때 조직에서 일처리가 어려운 부분도 있다"고 해명했다. 특히 결혼과 함께 직장을 그만둔 여성은 능력이 있어도 취업연령 제한에 걸려 재취업이 어렵다.

결혼 전 대기업 구내식당에서 영양사로 일했던 張모(45.여)씨는 아이들이 어느 정도 성장한 4년 전부터 다시 직장을 구하러 다녔지만 지난해에야 겨우 임시직을 구할 수 있었다.

張씨는 "결혼 후 컴퓨터 자격증을 따는 등 재취업을 위해 노력했지만 나이가 많다며 원서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고 말했다.

한국여성단체협의회가 지난해 6월 서울지역 성인남녀 5백10명을 조사한 결과 여성 응답자의 90%가 연령제한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으며, 연령제한으로 불이익을 겪은 경험도 남자(38.7%)보다 높은 57.8%로 나타났다.

중앙일보 특별취재팀= 정철근.장정훈.하현옥.권근영 기자(정책기획부), 최지영 기자(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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