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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바쁜 게 부러운 시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38호 22면

“많이 바쁘시죠?”

몇 년 사이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이다. 이 말을 들으면 뭐라 답할지 난감하다. 내가 바빠 보이는 건 사실이니까. 대학교수라 강의하고 논문 쓰고, 의사라 진료를 한다. 계속 책을 내고, 연재 글도 쓴다. 책도 읽고 영화도 보러 다닌다. 가정도 있는데 어떻게 사는지 궁금할 만했다. 그런데도 “네, 바빠요”라고 답하기 어려운 건 익숙한 삶이라 힘들지 않기 때문이다. 웃으면서 “적당히 지내요”라고 대답하며 속으로 생각한다. 바쁜 게 나쁜 건 아니잖아. 고마운 것이지.

나도 남에게 같은 인사를 한다. 사람들은 곧잘 “어이구 바쁘시죠”라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회의를 가도 “바쁘신 와중에 와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한다. 어이쿠, 나만 두고 한 말이 아닌 것이다. 조금 민망해졌다. 언제부터 서로 얼마나 바쁜지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일상이 되었을까.

이에 못지 않게 흔히 쓰는 전통적 인사말은 “안녕하세요”와 “식사하셨어요”다. 두 말은 슬픈 과거를 반영한다. 전쟁과 난리 통에 밤새 안녕했는지, 밥은 먹고 다니는지 염려하는 것이다. 이런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들은 처음 우리말을 배울 때 왜 사람들이 밥 먹었냐고 묻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이젠 바쁘냐고 묻고 대답하는 게 일상이다. 굶지 않고 안녕한 사람이라면 바빠야 한다는 의미다. 바빠야 사회적으로 안녕한 것이다. 일이 많아 숨 쉴 겨를이 없어야 한다. 또 그걸 서로가 서로에게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생활어 사전 ‘어번 딕셔너리’에서는 바쁘다(busy)를 이렇게 정의했다.“중요해 보이려 하는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 그만큼 이제 우리는 바쁘다는 사실을 통해 사회적으로 살아 있음을 증명한다. 시간에 쫓기고 바쁜 사람은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고, 바쁜 사람은 곧 성공한 사람이고 중요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게으름을 죄악으로 여기는 산업사회에서 바쁜 사람은 존재 자체가 의미 있다. 그는 충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으로 평가된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누가 누가 더 바쁜지 경쟁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살짝 여유가 생기면 숨통이 트이거나 기분이 좋은 게 아니라 겁이 난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기 때문에 여유는 붕괴의 조짐인 빈틈이라 여겨진다. 더 이상 바쁘지 않고 시간이 많아졌다가는 아예 일이 없어지기 쉬운 것이 지금 사회이기 때문이다.

‘1’ 아니면 ‘0’ 이다. 그래서 바빠 죽을 것 같은데도 일을 놓지 못하고 자전거 페달을 열심히 밟아 나간다. 이 자전거가 서면 넘어지고, 넘어지면 다시 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일은 한 쪽으로 몰리고 바쁜 사람은 계속 더 바빠지는데 다른 더 많은 사람들은 자전거에 한 번 올라보지도 못한다. 바쁜 이들의 반대쪽에는 잉여의 자조가 넘친다. 언제부터인가 바빠 볼 기회도 갖지 못한 사람과 바빠서 죽을 것 같은 사람으로 양극화돼 둘 사이에 높은 벽이 쳐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요새 바쁘시죠”는 이전의 “안녕하세요”와 “식사하셨어요”와 같은 맥락의 인사말인 것이다. 바쁘지 않으면 살아 있다고 하기 어려운 세상이니까.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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