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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상(盤上)의 향기] 오늘과 내일 승부 사이에 인간·공간이 들어가는 封手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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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26면

1963년 제2기 명인전 도전 7국에서 승리한 사카타 9단(왼쪽)과 후지사와 9단이 종국 후 대국 감상을 표하고 있다. 가운데는 우칭위안 9단. [사진 일본기원]

1982년 10월 14일 일본 제7기 명인전 도전 4국. 오후 5시가 가까워졌을 때다. 오타케 히데오(大竹英雄) 9단이 “슬슬 때가 된 거 아냐”고 말하자 상대인 조치훈 9단이 찬동하고 다음 수를 봉(封)하기로 결정했다. 1국부터 4국까지 네 판을 모두 오타케가 둘 차례가 되었을 때 오타케가 봉수(封手)를 했다.

이틀걸이 대국

 이틀째도 날씨는 쾌청했다. 보도진 외에도 첫날 둔 것을 복기하고 봉수를 뜯는 이틀걸이 바둑 특유의 세리머니를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모여들어 대국실은 초만원이었다. 입회인 가토 마사오(加藤正夫) 9단의 재촉으로 첫날 둔 수순을 천천히 늘어놓았다. 가토가 신중한 표정으로 봉투에 가위질을 하고 “봉수는 5의 六이요” 하고 읽었다. 이를 기다렸다가 오타케가 어제 봉한 수를 반상에 착점했다. 이상이 당시의 관전기 내용인데 ‘5의 六’은 착점 자리를 좌표로 표기한 것이다.

1995년 5월 서울에서 열린 혼인보전 도전 5국에서 가토 9단(왼쪽)이 입회인 오타케 9단에게 봉수를 기록한 용지를 건네고 있다. 오른쪽 앉은 이는 조치훈 9단. [사진 일본기원]

상수나 연장자가 먼저 일어서면 휴식
바둑은 긴 시간을 요하는 놀이. 하루 이틀에 끝나지 않는다. 일본 중세에서 한 판 대국은 서너 번에 걸쳐서 열흘씩 두는 게 보통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몇 날 며칠 계속해서 두면 문제가 일어난다. 누가 먼저 일어날 것인가. 당시엔 상수나 연장자가 일어섰다. 집에 돌아가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시작했다. 하수가 불리했다.

 바둑은 놀이. 현실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하지만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사회나 문화가 개입하지 않는 경우는 없었다. 승부의 틀은 문화가 짜는 것이다.

 20세기 초 ‘통조림 대국’이 바둑에 들어왔다. 통조림 대국은 일본기원이 시장경제를 만나면서부터다. 한 여관에 두 대국자가 함께 묵었다. 여관은 공간. 그러므로 은유적으로 통조림이다. 슈사이(秀哉) 명인과 기타니 미노루(木谷實) 7단의 은퇴 기념기가 첫 번째 사례다. 그런데 첫날 언제 끝마치고, 또 누가 첫날의 마지막 수를 두는가. 그것이 문제로 떠올랐다.

 봉수 제도가 채택되었다. 첫날 마칠 시간을 정해둔다. 5시라고 하자. 그러면 5시가 되었을 때 둘 차례가 된 대국자가 다음 수를 기보에 적는다. 그 마지막 수는 1시간을 생각하든 2시간을 생각하든 두어야만 한다. 그러곤 입회인에게 기보를 전하고 입회인은 기보를 금고에 넣어둔다. 다음날 아침에 금고를 열고 모두에게 공개한다.

 봉수는 일본 바둑 이야기다. 우리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승부의 뒤안을 많이 알려주는 현상이다.

대국 중 신경전도 자연스런 현상
바둑은 싸움. 신경전이 자연스럽다. 대국 중 상대의 심리를 조급하게 만드는 일은 예부터 있었다. 좌하귀를 노려보며 생각하면 그쪽에 부채를 갖다 대고 퍼덕퍼덕 부친다. 오른쪽으로 눈길을 보내면 이제는 오른쪽에서 부친다. 결국엔 화가 나서 조바심을 낸다. 불리해도 신경전을 펼칠 수 있다. 중얼중얼하면서 신경질적으로 빨리 두어 상대를 흔들기도 한다.

 1950년 제5기 혼인보 도전기 때다.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 8단은 2국이 끝난 직후 도전자 사카타 에이오(坂田榮男) 7단에게 정식으로 항의했다. 대국 중 엄숙을 요구했다. 사카타는 몰입하면 머리를 쥐어뜯으며 혼자 욕설을 뇌까리는가 하면 부채를 폈다 접었다 했다.

 사카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와 후지사와 슈코(藤澤秀行)의 신경전은 특히나 유명하다. 1960년 제1기 명인전 리그에서 후지사와는 사카타의 대마를 잡고나선 “사카타가 아니었다면 대마를 잡자고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크게 떠들었다. 두 기사는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았다.

 63년 2기 명인전 도전기 때다. 신경전은 극에 달했다. 사카타는 주최 측에 후지사와 구라노스케(藤澤庫之助) 등 후지사와와 가까운 기사의 출입을 막아달라고 요청했다. 구라노스케는 후지사와의 여섯 살 손위 조카다.

 사카타가 2대3으로 몰렸다. 집안에 틀어박힌 사카타는 노이로제 상태였다. 옛 명인들의 기보를 보며 마음을 달랬다. 가문의 성쇠가 좌우되는 쟁기(爭棋)에서 명인들의 준엄한 수법은 공감되는 바가 컸다. 위로를 얻은 사카타가 6국을 이겨 7국을 맞았다.

 사카타는 식사 휴식 직전이나 봉수 직전에 두는 버릇이 있었다. 더욱이 6국에서는 오후 4시부터 약 1시간을 장고한 끝에 시계를 보면서 정각 2분 전에 두었다. 후지사와는 약이 올랐다. 7국을 기다렸다.

기보 제2기 명인전 제7국에서 후지사와가 봉수한 흑63이 패착이었다. 가만히 65에 둘 자리. 중앙 돌은 가벼워 버려도 좋았다. 실전은 무거워졌다.

 7국 때다. 후지사와가 5시 30분 직전에 두었다. 5시 30분에 둘 차례가 되는 사람이 봉수를 해야 하는 규정이다. 사카타가 “나머지 몇 분?” 하고 물었다. 입회인 무카이(向井一男) 7단이 서서히 시계를 본 다음 “남은 시간은 10초”라고 알려줬다. 사카타는 “아슬아슬한 때에 두었군” 하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후지사와가 봉수를 상대에게 넘기기 위해서 둔 흑63이 패착이었다(기보). 봉수에 신경 쓰느라 그만 반상에 대한 주의가 부족했던 것이다.

 바둑을 두다 보면 긴장이 지속되고 집중이 고조되는 때가 온다. 그러면 계속해서 싸우고 싶은 기분이 든다. ‘돌의 기세’라는 것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봉수 시간을 지키지 않고 그냥 두게 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리 되면 밤을 새울 수도 있다는 데 있다.

 대국자들은 그런 낌새를 느끼면 일찌감치 중단하고자 한다. 선배가 동의를 구한다. “지금 어때?” 봉수 시간을 미리 앞당기기도 한다. 심지어 네 시간이나 앞당겨 1시에 봉수하는 경우도 있다. 어차피 승부는 이틀째 밤에 날 테니 첫날은 쉬자는 계산이다. 일찍 중단하면 정각까지의 시간은 반(半)씩 나눠 각자의 소비시간에 가산하는 것이 보통이다.

봉수한 기사는 밤새 잠 못 이루며 고민
봉수한 쪽은 신경이 쓰인다. 악수는 말할 것도 없고 호착인 경우에도 봉수한 수가 마음 한 구석에 걸리게 마련이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한다. 후지사와가 말했다. “나의 경우 선악에는 신경이 쓰이지 않지만 혹시 잘못 적지 않을까 하고 걱정할 때가 많다. 가능하면 상대가 봉수를 해주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진심이다. 중단할 시간이 다가오는데 상대가 생각에 잠겨 있으면, 상대가 봉수를 하려니, 지레짐작하고 오늘은 이걸로 끝, 내일 또 열심히 두자고 마음을 풀어버린다. 그런데 중단 직전에 딱 하고 두어오면 그때는 마음이 해이된 때문에 흔들린다.”

 태연하게 상대가 보는 앞에서 봉수를 기록하는 기사도 있다. 다카가와 가쿠(高川格) 9단이 대표적이다. 상대를 괴롭히는 걸까.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비겁자 게임(chicken game)이란 게 있다. 승부를 피하는 대국자가 지는 놀이다. 미국에선 초기에 이랬다. 서로 마주보면서 차를 몬다. 가만 두면 부딪친다. 겁을 먹는 자는 핸들을 옆으로 돌려 충돌을 피하게 마련이다. 그러면 진다. 그러면 어찌하는가. “나는 몰라. 너 알아서 해.” 상대가 보는 앞에서 핸들을 뽑아버린다. 이젠 상대가 겁먹는다. 비켜야만 한다. 이런 경우를 예상한 상대는 어찌하는가. 미리 수건으로 눈을 가리면 된다. “네가 무슨 짓을 하든 난 몰라.” 정보는 모르고 있는 게 더 좋을 때도 있는 법이다.

 바둑의 승부에는 반응이 중요하게 작용한다. 예를 들어 조치훈이 1분 초읽기로 100여 수 이상 두어오면 상대는 질린다. 상대가 1분 초읽기에 몰린다 해서 자신이 유리하다고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초시계를 누르는데 상대가 신경질적으로 누르면 짜증난다. 대국 날 아침 상대의 냉랭한 얼굴에 밀리면 그 바둑은 이기기 힘들다. 대국 당일 서로가 얼굴을 피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그래서 기사들은 정신력을 단련한다. 우칭위안(吳淸源)이 수도자처럼 폭포수를 맞거나 종교에 열중한 것에는 그런 배경도 있었다.

한국은 당일 대국 … 점심시간 없는 대회도
시간과 공간은 문화적 선택이다. 봉수가 일본바둑에 있는 이유는 그들의 이틀걸이 바둑 문화 때문이다. 일본의 바둑문화가 풍성한 이유의 하나인데, 이틀걸이는 오늘의 승부와 내일의 승부 사이에 인간과 공간이 들어간다. 그 공간 속에서 인간이 다채롭게 드러나고 이야기도 많아져 문화가 풍요로워진다.

 20세기 한국 바둑은 ‘하루’였다. 전통이 없었고 돈도 부족했다. 이틀걸이 바둑은 숙박비, 여비, 입회인 비용 등 돈이 많이 들어간다. 한국은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대국자 둘 다 일어섰다. 친구 사이라도 이때는 따로 상대를 구해 나간다. 대개 혼자는 안 간다. 이런저런 대화를 하지만 바둑 얘긴 안 한다. 점심을 하지 않고 그냥 의자에 앉아 연구해도 된다. 이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12~1시는 무조건 초시계를 멈춘다.

 요즘은 점심시간이 없는 대국도 많다. 삼성화재배와 LG배 세계대회도 그리 한다. 제한시간이 길어야 3시간이다. 점심 대신에 대국장 한켠에 과일과 다과 등을 준비해둔다.

 바둑의 제한시간은 근대 시장경제의 산물이긴 한데 사실 한국과 중국, 일본은 모두 다맥락적 사회요 문화였다. 예컨대 일을 할 때엔 전화도 받고, 옆 사람과 대화도 하고, 방문객도 가리지 않았다. 그러니 제한시간은 동양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어려운 문화였다. 봉수 싸움은 그 단선적인 문화에 대한 반발이랄까. 이틀걸이 바둑은 방 하나에 두 대국자가 있는 통조림 속이라 두 사람이 하나의 선분 위에 서 있는 것과 같다. 이 때문에 봉수 싸움에는 단선적인 시간에 대한 반발을 상대에게 투사하는 측면도 들어 있는 듯하다.



문용직 서강대 영문학과 졸업. 한국기원 전문기사 5단. 1983년 전문기사 입단. 88년 제3기 프로 신왕전에서 우승, 제5기 박카스배에서 준우승했다. 94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는 『바둑의 발견』 『주역의 발견』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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