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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거장이 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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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여름엔 역시 소설입니다.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 하는 ‘이달의 책’에서는 최근 연이어 출간된 거장(巨匠) 작가들의 신작 소설을 모아봤습니다. 공쿠르상 수상작가인 미셸 우엘벡의 새 장편소설, 미국 문단을 들썩이게 한 앤서니 도어의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작, 노벨문학상 수상작가인 앨리스 먼로 등 32명의 작가가 함께 쓴 단편소설집입니다. 늦은 휴가를 계획 중이라면, 이 중 어떤 책을 여행 가방에 챙겨넣어도 후회하지 않을 겁니다.

이슬람 테러로 관심 집중, 문제의 그 소설

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문학동네
376쪽, 1만4500원

짜임새 있는 구성, 도발적인 내용, 알기 쉬운 문장. 좋은 소설에 필요한 삼박자 같은 게 있다면 그걸 두루 갖춘 작품이다.

 저자 우엘벡(57)은 『소립자』 등 이전 작품들에서 현대 서구사회를 꿰뚫어 보는 문명사적 식견을 선보인 바 있다. 여섯 번째 장편소설인 이번 작품에서도 그런 면모가 여전하다. 프랑스는 물론 세계적으로 가장 민감한 주제인 종교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소설 속 논의가 단순히 종교 테두리 안에 갇히지 않는다.

 소설은 기독교 신앙 전통이 뿌리 깊은 프랑스에 이슬람 정당이 등장해 결국 정권을 잡는다는 파격적인 설정을 품고 있다. 도저히 현실 세계에서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상황이지만 그럴싸하게 이야기를 밀어붙인다. 프랑스의 현실 정치에 대한 치밀한 분석, 사회 풍속을 건전하게 유지하는 ‘기관’으로서 제 기능을 상실한 기성 교회에 대한 우회적인 비판, 오일 달러를 앞세워 이슬람 종교 수출에 여념이 없는 중동 국가들에 대한 묘사 등을 통해서다.

2022년 프랑스에 이슬람 정권이 탄생하는 내용의 소설 『복종』을 쓴 작가 미셸 우엘벡. 가상 소설 안에 현실비판을 담았다. [사진 문학동네]

 워낙 내용이 자극적이어서 올초 프랑스에서는 소설 출간을 앞두고 내용 일부가 인터넷에 유출되는 소동이 있었다고 한다. 게다가 비극적인 일이지만, 소설이 출간된 1월 7일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이슬람 테러 사건이 발생해 소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폭발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만 55만 부가 팔린 기록적인 성적은 다분히 그런 요소들이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하지만 핵심 줄거리를 알고 읽기 시작해도 소설은 손에서 놓기 어려울 만큼 매력적이다.

 주인공은 소르본대에서 문학을 가르치는 마흔네 살의 남성 교수 프랑수아다. 이슬람 정당의 집권 영향으로 무신론자였던 프랑수아가 결국 이슬람 신자가 되는 과정이 소설의 뼈대다. 우엘벡의 시선은 도발적인 내용 만큼이나 거침이 없고 신랄하다. 프랑수아는 남녀간의 사랑에 염증을 느낀다. 남성이 느끼는 사랑의 감정은 여성으로부터 선물 받은 쾌락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 상태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경쟁력 있는 예술 장르로서 수명을 다한 것처럼 보이는 문학의 위상에 대한 평가도 박하기 그지 없다. 대학의 문학 전공 졸업장은 어쩌다 취업에 도움이 되는 부차적인 수단에 불과하다. 프랑수아는 새 학기가 시작하면 신입생 중 하나를 애인으로 삼은 다음 1년 후 바꿔버리는 과정을 반복한다. 그 중 2학년생 미리암과의 성애 장면은 도색영화 뺨칠 정도로 노골적이다.

 소설 제목 ‘복종’은 프랑수아가 정치사회 현실의 변화에 굴복해 이슬람으로 개종한다는 의미다. 과거 우엘벡의 이슬람 혐오 발언 등으로 미뤄볼 때 소설 전체가 프랑스의 이슬람화에 대한 경고라는 점은 명백해 보인다. 행복하게 개종하는 프랑수아를 앞세운 소설은 그런 점에서 하나의 반어법이다. 다만 소설에서 이슬람 정당이 집권한 프랑스 사회가 부정적으로만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래서 더 사실적으로 느껴진다. 이슬람 집권은 프랑스 국민들에게는 재앙이겠지만, 이슬람교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눈먼 소녀, 고아 소년이 겪은 ‘2차대전 10년’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
앤서니 도어 지음
최세희 옮김, 민음사
1권 324쪽, 2권 464쪽
1권 1만3500원
2권 1만4500원

2차대전 이야기라니 새로울 것 있을까, 라는 의구심은 금세 사라졌다. 단숨에 읽다가 문득 숨 고르고 한 자 한 자 아끼며 공들여 읽고 싶어졌다. 우아하고 단정한 문장들 때문이다. 그만큼 번역도 유려하다.

 2015년 퓰리처상과 카네기 메달상을 받았고, 60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오른 화제작이다. 눈먼 프랑스 소녀 마리로르와 독일의 고아 소년 베르너가 전쟁을 전후로 겪는 10년간의 이야기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상황에 소녀의 아버지가 보관한 의문의 보석을 둘러싼 추격전, 20세기초 발화한 라디오 통신 이야기 등이 겹쳐진다. 촘촘한 스토리와 생생한 묘사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하다. 소년소녀의 이야기가 3~4쪽씩 번갈아 전개되는 교차편집식 구성, 시점이 앞뒤로 오가는 플래시백 구성 등도 영화적이다. 실제 소설 출간 직후 ‘트루먼 쇼’ ‘소셜 네트워크’ 등을 제작한 스콧 루딘 감독이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를 계획 중이다.

 마리로르는 문학과 언어를 사랑하고, 영특한 베르너는 히틀러 유겐트(나치 청소년 조직)에 선발된다. 해안 도시 생말로로 피난간 마리로르는 저택에 혼자 남겨지고, 때마침 생말로에 도착한 베르너는 나치즘에 의문을 갖는다. 소녀는 매일 밤 라디오로 누군가를 향해 『해저 2만리』를 읽어주는데 소년이 그걸 듣게 된다. 서로를 모른 채 한 도시에 머물며 소녀는 자신의 목소리를 송신하고, 소년은 유일한 수신자가 된 것이다.

 2차대전 당시 쓰인 일기와 편지 등 자료를 바탕으로 집필에 10년이 걸렸다. 모두가 눈 감은 시절에 우리가 볼 수 없는 모든 빛을 본, 두 어린 영혼에 대한 이야기다. 우아한 문장으로 두 캐릭터가 고결함의 힘을 얻은 것이 소설의 가장 큰 강점이다. 생말로 저택에서 책을 읽는 마리로르에 대해 작가는 “그녀를 번쩍 들어 올려 어딘가 다른 곳으로 데려가 주는 문장들을 만끽하는 기분은 황홀하기 그지 없다”(207쪽)고 썼다. 독자들도 마찬가지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작가 32명이 들려주는 ‘일하는 이에 대한 위로’

일은 소설에 맡기고
휴가를 떠나요
앨리스 먼로 외 지음
강경이 외 옮김, 760쪽
홍시, 1만9000원

책은 일을 주제로 한, 보기 드문 단편소설 모음집이다. 저자만 32명인데 줌파 라히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제임스 설터 등 세계적인 작가들의 이름이 차례에 빼곡하게 적혀 있다. 이 책의 편저자인 소설가 리처드 포드는 서문에서 “이 책이 정시에 출근하고 일을 끝내야 하며 일거리를 집에 가져가고 어떻게든 고용되어야 하며 때로는 해고되고 (…) 돈벌이를 해야 하는 복잡하고 곤혹스런 문제들에 대해 문학에서 위안을 얻으려 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라고 기획의도를 전한다.

 대다수 사람이 기획의도에서 벗어날 수 없는 삶을 살고 있다. 우리는 일을 한다. 일하는 사람은 그 일로 인해 캐릭터가 규정되기도 한다. 리처드 포드는 이런 노동의 초월적인 의미에 주목했다. 직업이 사람의 신분 뿐 아니라 도덕적 가치까지 거의 결정하는 시대다. 일은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단어이지만, 일이 삶과 함께 버무려질 때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다. 그래서 편저자는 픽션을 통해 좀 더 자유롭게 우리의 일과 삶을 들여다보려고 했다. 책의 원제는 ‘블루 컬러, 화이트 컬러, 노 컬러(Blue Collar, White Collar, No Collar)’다.

 제프리 유제디니스의 단편 ‘위대한 실험’에서는 작은 출판사에서 일하는 편집자와 회계사가 나온다. 회계사는 미국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으로 해체된 컨설팅 전문회사에 다녔었다. 그는 직장에 다녔고, 해고당했고, 유죄판결을 받았다고 생각한다. 개인의 정직함과 별개로. 한 때 촉망받는 인재였다고 자신을 생각하는 편집자는 건강보험 혜택도 받지 못하는 직장에 다니면서 돈 벌 궁리만 한다. “지식인이란 뭘까, 돈이라는 작은 세계에 머리를 쓰는 건가”라는 생각과 함께. 이렇듯 한 편 한 편 골라 읽으며 삶을 돌아보기에 좋은 책이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S BOX] 휴가 때 읽으면 좋은 소설 3권

● 김연수(소설가) : 『스포츠와 여가』 (제임스 설터 지음, 김남주 옮김, 마음산책, 268쪽, 1만2000원)

“‘여름이 끝났다. 정원은 시든다 ’로 시작해 ‘나를 거칠고 엄하게 대해도 좋아. 다만 떠나지만 말아줘, 다른 여자에게 하듯 나를 대해줘’로 끝나는 소설. 젊고, 매력적이다.”

● 손미선(민음사 외국문학팀장) : 『칠드런 액트』 (이언 맥큐언 지음, 민은영 옮김, 한겨레출판, 296쪽, 1만3500원)

 “때로는 너무 진지한 작가 이언 매큐언의 최신작. 그러나 그런 작가만이 가장 첨예한 주제에 대해 섬세하고 우아한 작품을 써 낼 수 있다.”

● 구환회(교보문고 소설MD) : 『미스터 메르세데스』 (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황금가지, 612쪽, 1만5000원)

 “스티븐 킹은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과소평가되고 있는 대표적 작가다. 그에게 제 몫을 찾아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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