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안부 삶 뮤지컬로 … 일본이 지우려 해도 지울 수 없어야 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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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컴포트 우먼’의 제작자인 김현준씨가 뉴욕 오프브로드웨이의 세인트 클레멘츠 극장앞에 섰다.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다룬 ‘컴포트 우먼’은 31일부터 다음달 9일까지 공연된다. [사진 김현준]

“수많은 사람이 알고 있어 일본이 역사를 지우려고 해도 지울 수 없게 하고 싶습니다.”

 일본군 위안부의 참상을 소재로 한 뮤지컬 ‘컴포트 우먼(COMFORT WOMEN)’이 미국 뉴욕 무대에 오른다. 공연은 31일부터 8월9일까지, 오프 브로드웨이의 세인트 클레멘츠 극장이 무대다. 기획·제작·연출은 한 대학생에 의해 이뤄졌다. 뉴욕시티칼리지 연극학과 4학년에 재학중인 김현준(24)씨다. 그의 꿈은 ‘컴포트 우먼’을 브로드웨이 무대에 올리는 것, 나아가 많은 나라에서 공연해 위안부 문제를 전 세계인에게 알리는 것이다. 위안부에 대한 역사가 잊히지 않게 하기 위해서다. 모두가 알게 되면 일본 정부도 과거의 만행을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고, 사과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그는 뮤지컬을 만든 계기에 대해 “2012년 아베 신조 정권이 들어선 뒤 일본 정부가 역사를 부정하는 것을 보면서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주위의 미국인들에게 물어봤는데 아무도 위안부 문제에 대해 모르더라. 설명해줬더니, 왜 ‘성 노예’라고 하지 않고 ‘컴포트 우먼’이라고 하느냐고 되묻더라. 빨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출연 배우 48명은 12개국 출신의 다국적 연합군이다. 지난해 11월 오디션에는 800여 명이 넘게 몰렸다. 일본계 배우도 100여 명이 지원했다. 김씨는 위안부의 역사를 부정하는 이들은 모두 돌려보냈다. 선발된 일본계 배우는 8명. 김씨는 그들이 “역사를 바로 알려 한일 양국이 평화롭게 지내는데 일조하고 싶다”며 각오를 다졌다고 전했다.

  준비 과정에서 김씨는 일본 우익단체로부터 항의와 협박에 시달리기도 했다. “왜 거짓말을 하느냐”는 비난은 예사였고, “일본에 오면 죽이겠다”는 섬뜩한 내용도 있었다.

 제작비 마련도 힘들었다. 대학생의 창작 뮤지컬에 투자비를 대려는 이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국내 대기업들의 후원을 받지는 못했다. 김씨는 “대기업들에 e-메일을 보냈지만 회신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김씨가 접촉한 미국 내 한국계 업체들은 “거래처 중에 일본인들이 있다”며 발을 뺐다.

 개인 투자자와 후원자로부터 어렵사리 모은 돈이 약 1억원. 오프브로드웨이 작품의 통상 제작비의 5분의 1이었다. 각계의 도움도 있었다. 한인 옷감 가게에선 4분의 1 값으로 의상 제작에 필요한 옷감들을 제공했다.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기로 했다. 스태프들 역시 보수 없이 참여한다.

 김씨와 주연 배우들은 이달 초 워싱턴에서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89)할머니를 만났다. 그 만남은 뮤지컬의 전환점이 됐다. 김씨는 “이후 배우들의 연기가 달라졌다”고 소개했다. 배우들은 다른 설명 없이도 배역에 몰입하게 됐다.

 뮤지컬의 마지막 장면도 바뀌었다. 위안소를 탈출한 위안부 소녀들이 돌아온 조국엔 광복의 환희가 넘쳐난다. 그러나 소녀들은 무대 뒤로 사라진다.

 김씨는 “정작 우리 사회에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위로와 관심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뉴욕=이상렬 특파원 is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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