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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하세요] 배구 스타 마낙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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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현대차 구리 서부지점 전시장에서 만난 마낙길 지점장. 마 지점장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온 선수 은퇴가 오히려 현대차 지점장으로 ‘제 2의 인생’을 만들게 한 원동력이 됐다”고 말했다. [박종근 기자]

서른 즈음, 또래 친구들이 막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반퇴’ 위기에 몰린 운동 선수가 있었다. 국가 대표로 가슴에 태극마크까지 달았지만 그는 과감히 ‘영업맨’으로 변신했다. 20년 후, 쉰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자 이젠 친구들이 반퇴 위기에 처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회사 내에서 ‘1등 지점장’으로 불린다.

1990년대 실업배구팀 현대자동차 써비스 소속으로 뛰었을 당시의 마낙길 지점장. [중앙포토]

 마낙길(47) 현대자동차 구리 서부지점장은 1980~90년대 배구 스타다. 성균관대 87학번으로 80년대 후반 성균관대 배구부의 전성기를 이끌었고, 90년대에는 실업팀 현대자동차써비스와 국가대표팀에서 부동의 레프트 공격수로 활약했다. 특히 일본 도쿄에서 열린 91년 배구월드컵 독일전(3-2 승리)에서 선수 마낙길은 5세트 11-14로 뒤지던 경기를 17-15로 뒤집어 한국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진출시키기도 했다.

 하지만 전성기는 생각보다 짧았다. 대학 시절부터 이어진 혹사 때문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배구 선수로 19년 뛴 여파로 허리부터 어깨, 무릎까지 몸에 성한 곳이 없을 정도였다. 97년 회사는 선수 은퇴 후 관리직 전환을 권유했고, 그도 코트를 떠나기로 했다. 마 지점장은 “은퇴를 결심할 때는 마침 배구 슈퍼리그에서 고려증권에 우승을 내준 직후였다”며 “‘이른 은퇴’를 권했던 회사가 처음에는 야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배구로 다져온 승부 근성이 마 지점장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일과가 끝난 뒤 밤 12시까지 부하 직원에게 반년 간 ‘특별 과외’를 받으면서 그는 영업맨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 지금도 매일 일간지와 경제지 4개, 각종 잡지를 읽으며 소비자 동향을 파악한다.

 운동선수 특유의 적극성과 사회성, 그리고 강한 체력은 ‘지점장 마낙길’만의 차별화 포인트였다. 현대차에서 부장만 할 수 있는 서울 시내 지점장을 과장 시절부터 역임했다. 2004년 모교인 성균관대 앞 혜화 지점장으로 부임해 현대차 최연소 지점장 기록을 아직도 갖고 있다. 서울 혜화·문정, 남양주, 평택 안중 등 마 지점장으로 부임했던 4곳 모두 ‘최우수지점’ 타이틀을 달았다. 마 지점장은 “고려증권은 사라졌지만 현대차는 아직 프로배구에서도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면서 “특히 새로운 인생인 ‘지점장’을 만들어줬으니 직장이 고맙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이제는 ‘마 지점장’으로 더 자주 불리는 그는 25살짜리 큰 딸, 대학교 4학년인 둘째 딸, 이제 초등학교 6학년인 ‘늦둥이’ 막내 딸까지 세 딸의 아버지다. 그에게 “배구 코트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침 대학-실업 직속 후배인 임도헌 코치가 삼성화재 감독이 되는 등 선수 시절 그의 동료들이 프로배구 감독으로 활동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 지점장은 “당분간 배구계 복귀는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나는 배구인 이전에 현대맨이에요. 별(이사)은 달아야죠. 세 번째 인생으로 현대 배구단 단장도 한번 해보고 싶고요. 아 참, 차 필요하면 연락하세요.”

글=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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